조르주 페렉에 홀릭하여 『사물들』『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을 사려고 했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은 먼저 구매를 했으나 『사물들』은 한 권만 사면 배송료가 들기에 다른 책도 검색했다. 며칠 전에 사고 싶은 책을 다 사서 사실, 더 이상 주문할 책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배송료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열심히 검색을 했다. 하다 보니 알라딘 서재에 올라온 『인간과 말』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당겨 찾아보니, 이 작가의 전 작품에 작가들의 찬사가 많았단다. 그래서 이 책 말고 전 작품 『침묵의 세계』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장바구니에 담고 보니 『사물들』이 다음 주 월요일에나 발송 가능하단다. 헐, 난 오늘 당장 받고 싶다고!! 망설였다. 급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내 마음 나도 모르겠지만, 할 수 없이 『사물들』을 보관함에 넣고 다른 책을 골랐다. 그 사이에 『침묵의 세계』가 무척이나 궁금해졌기때문에 당일배송으로 꼭! 받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창비세계문학에서 나온 라틴시선집. 한데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열쇠』였다. 빙~고!! 그리하여 사겠다고 마음 먹은 책은 보관함에 넣어두고 엉뚱한 두 권의 책을 질렀다는 이야기.

 

 

 

다니엘 페낙의『산문팔이 소녀』는 이름만 들었고 살 생각이 없었는데, 며칠 전 누군가의 댓글에서 『산문팔이 소녀』에 관한 찬사를 듣게 되었다. 그 댓글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봐야지, 했다. 아니아니, 소설인데 가격이 왜 이래? 투덜거리면서도 샀다. 다니엘 페낙의 소설은 오래 전에 '말로센 시리즈' 때부터 알았다. 알았지만 내 스탈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소설이었다.

 

한데 소설이 내 맘에 들어오는 것도 다 때가 있는지라, 이상하게 읽어내지 못한 소설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이런 게 다니엘 페낙에게 있었다. 그런 찰나에 『산문팔이 소녀』에 대한 추천의 글을 읽게 된 것.

 

나를 다니엘 페낙의 세계로 이끌어준 그 친구에게 일단 감사! 설마 재미없진 않겠지? 하긴 다니엘 페낙이니!

 

 

이제는 워낙 나이를 많이 먹어서(응?) 내 나이가 몇 개인지 솔직히 관심도 없다. 결혼을 안 한 탓에 아직도 마냥 청춘인 것처럼 생각하고, 하는 짓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이상하게 이 책엔 관심이 생겼다. 

 

민담, 전설, 신화, 이런 것 좋아하는데 그기에 '여자'와 '나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 있다. 단연 호기심 자극. 더구나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니 이 책을 보는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여자로 나이든다는 것』. 책소개를 보니 여성의 나이듦에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을 했다는데 민담, 전설, 신화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것들을 선별해 그 속에 감춰진 상징을 풀어냈단다. 펼쳐보니 스토리 중심으로 나이들어가는 여자들의 심리를 들려주는 것 같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기대중!

 

 

김영하 작가의 신간 소식이 들렸다. 나온다더니 어제 드디어 예판이 떴다. 『살인자의 기억법』, 어쩐지 아멜리 노통브의 책 제목이 생각나지만,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인 듯.

 

이 책의 주인공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란다. 이런, 살인범이, 그것도 연쇄살인범이 알츠하이머라니! 그 발상부터 흥미롭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가 죽인 사람들에 대해 기억을 못 하거나, 기억이 뒤죽박죽이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거나. 뭐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책소개를 보니 제일 눈에 들어오는 추천사는 권희철 평론가의 말이다. '누구도 이겨낼 수 없는 인생이 던진 악마적 농담' 알츠하이머와 연쇄살인범. 이번 여름 왠지 오싹하며 스릴 넘칠 것 같은 예감. 툭툭 던지는 잠언, 돌발적인 농담과 위트,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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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흙 2013-07-1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달인스러운 사람같으니라고.^^

readersu 2013-07-12 17:51   좋아요 0 | URL
우힛, 이거슨 칭찬?^^

그렇게혜윰 2013-07-1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런식이죠..전 시집한권 기다리다 시집은 출간도 미뤄지고 그사이 장바구니는 터지고ㅠㅠ 우리 이제 읽어요...자신없다는...ㅠㅠ

readersu 2013-07-12 17:52   좋아요 0 | URL
담주에 또 지를 생각을 하니(-.-)
네네 우리 이제 읽어요. 자신은 없지만 읽어요!!;;

감은빛 2013-07-12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기로 맘 먹었던 책은 보관함으로 가고,
다른 책을 두 권 사셨군요!
그렇죠. 늘 예상과는 다른 전개를 맞이하게 되더라구요. ^^

readersu 2013-07-12 17:52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나쁜 예상은 물리치고 좋은 전개 맞이하길 바랄게요!^^
 

일단, 이전에 나온 『인생 사용법』보다 책이 얇다는 '얄팍한' 잔머리로 읽기 시작한 조르주 페렉의 새 책『잠자는 남자』, 얇아보이지만 펼쳐보면 와우, 소리가 나온다. 이것은 결코 얇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2인칭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처음엔 낯설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그다음은 정신 없이 읽힌다. 이 책, 완전 내 스타일이구나! 속으로 외치면서 밑줄을 긋느라 정신 못 차린다. 그리고 이 책 읽고 나면 그 두꺼운『인생 사용법』을 기필코 읽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읽기 아까워서 밑줄 몇 개 공유~~

 

 

생로크 교회의 종탑에서 두시 종이 울린다. 너는 눈을 치켜뜬다. 너는 독서를 멈춘다. 그러나 너는 벌써 오래전부터 더이상 책을 읽고 있던 게 아니었다. 너는 펼쳐진 책을 장의자 위, 네 바로 옆에 내려놓는다. 너는 손을 내뻗는다, 너는 재떨이에서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는 담배를 짓이겨 끈다, 너는 네스카페 잔을 마저 비운다: 겨우 온기가 느껴질 뿐이고, 지나치게 달며, 약간 쓰다.
너는 땀에 흠뻑 젖어 있다. 너는 몸을 일으킨다, 너는 창문을 닫으러 간다. 너는 초소형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튼다, 너는 젖은 목욕 장갑으로 네 이마며, 네 목이며, 네 어깨를 닦아내린다. 양팔과 두 다리를 웅크린 채, 너는 폭 좁은 장의자에 모로 눕는다. 너는 두 눈을 감는다. 네 머리는 무겁고, 두 다리는 저릿저릿하다.

 

너는 앉아 있으며 너는 오로지 기다리기만을, 단지 더이상 기다릴 것이 남지 않게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원한다: 밤이 오고, 시간이 울리고, 세월이 흘러가고, 추억들이 희미해지기만을.

 

너는 습관을 갖고 있지 않으며 너는 무언가를 향해 진단을 내릴 마음도 없다. 너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 너를 뒤흔드는 것, 너를 겁먹게 만드는 것, 그렇지만 이따금씩 너를 흥분에 빠지게 하는 것, 그것은 너의 변신에서 오는 갑작스러움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변신이 아니라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네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네가 지금처럼 항용 그러했다는, 바로 그 막연하고도 무거운 감정이다: 금 간 거울에 비친, 새로운 네 얼굴이 아니라, 땅바닥에 떨어진 가면들이다, 네 방의 열기가 그 가면들을 녹여버렸다, 무기력이 그것을 벗겨버렸다, 라고 하는 식의. 정도를 걷는 가면들, 저 지독한 확신에 찬 가면들. 스물다섯 해 동안, 오늘이 벌써 냉혹하다는 사실을 너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인가? 너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것들 속에서, 단 한 번도 너는 실패를 목도한 적이 없는가? 죽은 시간들, 헛돌고 마는 순간들. 더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는, 더이상 보지 않으려는, 침묵하며 꼼짝하지 않은 채 그저 머무려는, 폐부를 찌르며 사라져버리는 저 욕망들. 미치광이 같은, 고독의 저 망상들. 맹인의 나라에서 방황하는 건망증 환자: 드넓고 공허한 거리들, 냉랭한 불빛들, 네 시선이 훑어내렸을 법한 저 침묵하는 얼굴들. 네가 감염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너는 이따금 밤을 새어가면 책을 읽기도 한다. 너는 네 방이나, 다락방에서, 옷장의 저 깊숙한 구석에서, 열다섯 살 무렵의 네 책들, 알렉상드르 뒤마의, 쥘 베른의, 잭 런던의 그것을, 그리고 머물 때마다 가져오곤 했던 추리소설들을 다시 찾아내었다, 마치 네가 이 책들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마치 네가 단 한 번도 이 책들을 온전히 읽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너는 한 줄도 빼놓지않고 이 책들을 공들여 다시 읽는다.

 

비가 들이닥친다. 너는 집에서, 네 방에서조차, 더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너는, 하루 종일, 아이들처럼, 노인들처럼, 손가락으로 텍스트를 한 줄 한 줄 짚어내려가면서, 낱말들이 제 뜻을 잃게 될 때까지, 가장 단순하다 할 문장이 엉성해지고 혼란스러워질 때까지,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저녁이 온다. 너는 불을 켜지 않고, 너는 꼼짝하지 않은 채, 집의 소음을, 들보와 마루가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네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장작 아궁이 벽에 걸어놓은 주물받침대의 소리를, 빗물받이 아연통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멀찌감치 도로 위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를, 일곱 시 차가 언덕 부근을 돌며 울리는 경적을 들으면서, 책을 더 읽지 않으면서도, 그 책을 양손에 든 채, 창문 가까이의 작은 탁자에 앉아 있다.

 

 

너는 여전히 이따금씩 산책을 나간다. 너는 똑같은 길을 되풀이 해서 걷는다. 너는 흙을 갈아엎은 밭을 가로지르고, 그래서 네 장화 밑창에는 두툼한 진흙이 들러붙는다. 너는 오솔길 늪의 진창에 빠진다. 하늘은 잿빛이다. 널찍이 드리워진 안개가 전경을 가리고 있다. 몇몇 벽난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너는, 네 방수 점퍼와, 네 신발과, 네 장갑에도 불구하고, 한기를 느낀다; 너는 어설프게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시도한다.

 

너는 파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너는 네 방을, 네 침묵을 되찾는다. 물소리를, 인파들을, 거리들을, 교각들을; 천장을, 분홍색 플라스틱 대야를; 폭 좁은 장의자를. 네 얼굴의 특징들을 빚어내며 비추고 있는 금 간 거울을.

 

네 방의 침묵 속으로, 시간은 더이상 스며들지 못한다. 시간은 언저리에 있고, 영원히 휩싸고 도는 것이며, 네가 쳐다보지 않을 수도있는, 그러나 경미하게 삐뚤어지고, 흰색의, 더러 수상쩍기도 한 자명종 시계의 바늘보다, 더 자주 나타나고, 끈질기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고로,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너는 결코 몇 시인지도 알지 못하며,

 

네 방은 사람이 살지 않는 섬 가운데세서도 가장 아름다운 섬이며, 파리는 어떤 사람도 그 무엇도 결코 횡단하지 않은 사막이나 다름 없다. 너는 이 고요, 이 잠, 이 침묵, 이 무기력 이외에 그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시작되고 하루하루가 끝난다, 시간이 흐른다, 네 입이 다물어진다, 네 목덜이의, 네 입 주위의, 네 아래턱의 근육들이 완전히 이완되어버린다, 오직 네 흉부의 오르내림만이, 네 심장의 박동만이, 여전히 네 끈질긴 생존 여부를 증명해줄 뿐이다.

 

그 무엇도 원하지 않기. 기다릴 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기. 늦장 부리기, 잠가기. 인파에, 거리에 휩쓸리게끔 너 자신을 방치하기. 도랑을, 철책을, 배를 따라 물가를 좇기. 강둑을 따라 걷기, 벽에 찰싹 붙어 지나가기. 네 시간을 허비하기. 온갖 계획으로부터, 모든 성급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욕망 없이, 원한 없이, 저항 없이 존재하기.

 

시간이 지나면, 고비 없는, 혼란 없는, 꼼짝 않는 어떤 삶 하나가, 네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 어떤 껄끄러움도, 그 어떤 불균형도 업는 그런 삶이. 일 분 일 분이 지나가고, 시간과 시간이 지나가고,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계절과 계절이 지나가면, 끝이라고는 없을 무엇인가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까, 식물 같은 네 삶이, 파기된 네 삶이.

 

작품해설까지 포함하면 164쪽. 위에 뽑아놓은 문장은 겨우 45쪽까지의 글 중에서 뽑은 거다. 근데 와우~ 사실, 너무 길어 빼 놓은 부분도 많다. 적고 보니 진짜, 한 장 건너 밑줄이라며. 조르주 페렉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의 책을 다 사모아야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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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_윤성택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는 건 그때 내가

오늘 내리는 이 빗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

우산 없이 걸었던 수많은 장면이

환등기 안처럼 환해지고

그 빗소리에 음(音)이 흐른다

 

그곳에 있어서 생은 비릿하다

습관에 빗소리를 오버랩시킨다는 것은

빗속 너머 시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거기로 나를 지나게 하는 것이다 빗소리는

빗방울의 부서짐이라기보다는

흩어지면서 이루는 하나의 공명이다

무언가 채워져 있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통로

 

그 안에는 반복되는 리듬이 들어 있다

빗소리가 음유에까지 읽히면, 비는

기온과 풍경에 따라 톤을 달리하면서

제자리를 찾아 시간을 열어간다

떠올리는 사물, 그때의 습기까지 조용히 복원해낸다

생각이 생각 위에 떨어져

마음에 왕관 같은 문양이 이는 것이다 

구름의 전원을 사용하여 누군가의 순간을 재생한다

거기에는 조용히 머리를 기대고 있는

창문과, 문득 잠에서 깬 의식이 수록되어 있다

 

 

봄비

    _함민복

 

 

양철지붕이 소리 내어 읽는다

 

씨앗은 약속

씨앗 같은 약속 참 많았구나

 

그리운 사람

내리는 봄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개가

가죽 비틀어 빗방울을 턴다

 

마른 풀잎 이제 마음 놓고 썩게

풀씨들은 단단해졌다

 

봄비야

택시! 하고 너를 먼저 부른 씨앗 누구냐

 

꽃 피는 것 보면 알지

그리운 얼굴 먼저 떠오르지

 

 

비를 맞는 저녁

               _이승희

 

당신의 살냄새 같은 앵두꽃을 데려가는 바람의 뒤에 서서 나는 비가 오길 기다린다. 한때 그것은 내 몸을 살다 간 구름의 입자들. 불의 이마를 닮은 짐승처럼 바람이 불어 간 방향으로 떠나갈 것들. 빗방울이 맨살에 떨어진다. 스미듯 집의 불빛이 꺼졌다, 앵두꽃이 진 자리마다 물고기들이 꼬리를 감추며 나무 속으로 사라졌다. 허기가 들끓는 지상에서 상처 난 짐승들이 제 눈을 파내려는 듯 자주 울었고, 핏물이 배어나오는 그리움으로 버텼다는 기별. 다시 앵두꽃은 피겠지. 바람이 솜털을 부드럽게 누이며 말했다. 몸속에 새겨넣은 지도 한 장이 낡아가는 저녁 당신은 피 묻은 바닥을 닦아내며 물처럼 그렁거렸지. 항상 구석의 풍경이었던 시간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며 구석을 지워낼 때 바람의 지워진 문장을 읽어주던 당신. 그 문장 속에서 꽃들의 한생이 다시 시작되고 내 몸이 기억하는 빗방울의 무늬 속으로 걸어가는 저녁이었다.

 

 

우산의 반대말

                    _유희경

 

고이면 좋겠어

잠든 도시의 가슴팍에

의심이란 거지 우리가

찾아볼 수 없는 흔적

 

이렇게 끝내주는 소리는

천년 전의 것

용서하라 모든 이빨을

비가 내일을 잡아 뜯고

눈썹을 파르르 떨어

써놓은 문자를 내놓는다

 

쏟아져 내리는, 입말

놀라는 눈과 감기는 물

 

비가 내리는 만큼

입을 다문 사람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날씨 앞에서는

누구나 넓고 너무 투명하다

 

떠오른다 침묵하지 않는,

하고 싶은 말 지우고,

젖어간다 모서리부터

 

 

비 내리는

           _도종환

 

빗방울은 창에 와 흐득이고

마음은 찬 허공에 흐득이다

바위 벼랑에 숨어서

젖은 몸으로 홀로 앓는 물새마냥

이레가 멀다 하고

잔병으로 눕는 날이 잦아진다

별마저 모조리 씻겨내려가고 없는 밤

천 리 만 길 먼 길에 있다가

한 뼘 가까이 내려오기도 하는 저승을

빗발이 가득 메운다

 

 

한낮의 먹구름

                   _김수복

 

악견산을 넘어가다

유방산에 닿았네

 

슬슬 몸속 뼈가 스멀거리기 시작했네

 

피라미떼가 제 미색에 빠져

개울 물살을 즐기듯이

 

격정도 뭉게구름이 되어 불어나는 한낮

섬섬옥수로 산정에서 스윽슥,

 

한평생 살다가

 

햇살 넘치는 계곡 사이로

소낙비 되어 쏟아졌네

 

마른 옥수숫대 서걱이는

비탈밭에 내리꽂혔네

 

 

폭우

     _김시라

 

곡비(哭婢)처럼 서럽게 우는 비를 버릴 수 없는

조그만 섬처럼

거친 등을 지니고 잔뜩 웅크린 사람들이

용산역에서 하릴없이

계단 밑을 파고드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멀리 따듯한 손을 놓고 온

깍지 낀 손이

갈래갈래 낯선 길처럼 갈라져 있고

그사이로 철로가 선명하다

하중을 견디는 침목 따라 살아온 이들이 아는 밤들

무수히 비가 쏟아지고

가슴팍으로 물이 고이다가 넘치고

옹이처럼 마디마디가 슬픈 관절이 된다

 

이 비 개면

무지개 뜨는 행운은 다시 비껴가고

두 눈에 보이는 낡은 것들은 더 낡아가고

두 눈을 벗어나며

날아오른 것들은 더 높게 날아오르겠지

 

한참을 울던 사람들에게는

등뒤에서 언제나 감당 못할 비가 온다

떠나면 되는 일처럼 그렇게 날들은 가고

 

한때를 푹 적셔본 사람은

잠결에도 비가 온다

 

 

비가 내리니까, 기분이 가라앉는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책을 읽는 게 제일 좋겠다. 책 중에서도 시집. 시집 중에서 시가 나오는 풍경들만 골라서. 지금 현재 내 책상에 있는 시집 중에서 골랐다, 집에 가면 더 좋은 시들이 많을 텐데, 안타깝다. 그래도 이 정도의 시를 고른 것은 어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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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연애사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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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연인이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연애는 연인 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 사랑이 발전하면 연인이 되고 연인이 되면 연애를 하게 되는 것. 여기 그런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있다. 나, 너, 혹은 그 여자, 그 남자, 그들의 연애사!

 

내가 아는 사랑은 달달하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드라마와 연애 소설로 다 보았으니 등장하는 남자는 당연 멋진 남자. 여자는 아름답거나 그렇지 못하면 귀엽기라도 한 캐릭터. 그리고 그들은 달콤하다 못해 손발이 오그라드는 행동과 사랑 놀음으로 연애를 이어간다. 비록 비극적이고 슬픈 결말이어도 아, 부러워. 이런 사랑 언제 해보나, 보는 사람을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슬픈 일은 아무리 주변을 돌아봐도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그런 사랑이라는 것. 그걸 진짜, 사랑이라 믿는다는 사실.

 

그 믿음이 깨졌다. 알고 보니 사랑은 어떤 한 사람의 살아온 삶의 궤적이었는데, 그동안 그걸 몰랐던 것.

 

가려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 갔어야 했어. 그 생각만 수백 번 하면서 나이들어버렸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늙었기 때문에 그녀는 어제 떠나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것은 오늘 머뭇거린 것을 후회하기 위해 내일이 필요한 것과도 같다. 희망과 좌절은 손바닥 앞과 뒤다._「그 여자의 연애사」

 

사랑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같이 살게 되었고 자식까지 낳는다. 살다 보니 이게 아닌데, 하는 후회의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녀의 말처럼 '조금이라도 젊을 때' 떠나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 아쉬울 뿐이다. 떠나지 못한 것을 사랑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아마도 '삶'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후회가 되어도 살아'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삶.

 

『그 남자의 연애사』에 나오는 그들의 사랑은, 평범하다 못해 이게 정말 사랑이라고? 의문이 드는 사랑들이다. 늘 보아 왔듯이 운명과도 같은 사람을 만나 첫 눈에 반하고, 그 사람 없으면 죽고 못사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삶에 찌들고 힘들지만 그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보듬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라 생각하고 살아'지'는 그런 '사랑'. 

 

외로운 남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지고 그 남자들을 거부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이게 사랑인가보다 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고 사랑이 삶이 되어 버리고 나면 그제야 아차, 이건 뭐지? 잠깐 떠올리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버렸고 모든 것은 과거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모르고 지나온 그것을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랑은 어떤 형식으로든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어린 시절 아련했던 추억으로(「내 사랑 개시」), 흘러흘러 섬으로 들어와 외로운 총각에게 마음주고 살림을 꾸린 여자의 삶에서(「애생은 이렇게」), 인간인지 아닌지 어디선가 나타나 마음만 가지고 떠나버린 그녀를 못 잊어 애타게 찾는 외로운 총각에게도(「뭐라 말 못 할 사랑」). 다시 태어나고 싶지만 또 다시 그렇게 살아'질'까, 두려워하는 창녀(「판녀」)나, 찌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중년의 부부에게도(「그 여자의 연애사」).

 

달해서 평생 그것만 먹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이, 결국은 "같이 밥 먹고 잠 잘" 사람이면 족한 것으로 끝나 버리는 일은 씁쓸하지만 그런 깨달음이 있으므로 우린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인지도 모르지. '같이 밥 먹고 잠 잘 '사람을 찾기 위해. 그게 비록 사랑이고 연애의 끝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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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은 흔히 이야기하는 임기웅변이 아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순수하게 그 무대만의 무언가를 조성하는, 까마득히 잊혀진 기법의 이름이 '즉흥'이었다. 특별히 크고 미적인 동작은 없다. 손은 머리 위를 안 넘고 어깨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걷지 않은 길을 걷는 낯섦과 긴장감 도는 고도의 몰입이 있었다. 오로지 펼쳐지느 선율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었다. 기록되지 않는 길에 대한 탐닉이었고, 크지 않은 동작에서 나오는 무한한 무늬였다.
(……)
가르치기 위해 춤이 존재하는 오늘, 추기 위한 춤이 존재함을 알린 것이다 동작이 없으면서 춤이 될 수 있는 춤, 존재조차 모르는 춤의 존재가 바로 '즉흥'이었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무의식에 도달해 저절로 움직이는 순간을 조성한 것이었다.

 

아침에 1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눈 뜨고 한 시간이면 몰입도가 최고!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노름마치』를 잡았다. 매일 아침, 마치 글이 춤추는 기이한 모습을 본다. 그들의 춤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 아름답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굽이치며 휘몰아, 꺾이고 여울지는 옥섭이 글' 그의 사무침이 그대로 전달된다. 나도 딴따라(!) 기질이 있는 걸까? 이런 공감이라니!!

 

 

"난 저 사람이 좋은데 저 사람도 날 좋아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하던 차에 내가 찾아왔다. 그런 내게서 사랑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날은, 당신도 그랬군요. 이제 나를 가져도 좋습니다. 그리고 나도 당신을 갖습니다. 그동안은 망상병 환자처럼 짝사랑만으로 달려들 순 없었다. 상대를 가질 어떤 자격도 없는 것, 자신의 사랑으로 상대가 불편하면 안되는 것, 그것이 짝사랑의 예의니까. 영재는 우리가 연인이 된 그 설레고 행복했던 첫날을 이렇게 날려버리지 말라고 했다."

청소년 소설만 쓴 김려령 작가의 19금 소설?! 개천에서 용이 된 남자, 신기(!) 다분한 여자, 감초 같은 또 다른 남자. 흥미로운 것은 그들 인물 설정이 작가와 편집자라는 사실!!!! 문단의 뒷담화, 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그건 은희경 쌤의 작품이 갑이었음),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호기심이 당기긴 했음. 그러나 역시 이건 소설! 연애 소설인데.... 휘리릭~~~~넘어가긴 잘 넘어감. 아쉬운 것은 에필로그. 없었어도 좋았을 것을. 그리고 너무 어른처럼(!) 보이려고 했던 성묘사,

 

 

그동안 여행했던 도시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 도시에서 알았고 만났던 남자들이 생각나."

서른번째 여름,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좋아했습니다.
침대 위에서 만났던 남자들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그러자 이야기 어딘가에 상처투성이로 웅크린 내가 보였습니다.
나는 이제 나를 안아주러 갑니다.

어젯밤에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아, 가볍게 읽어보자며 이 책을 읽었다. "침대 위에서 만났던 남자들의 이야기"라는 조금은 노골적인(!) 문구 때문이기도 했다. 독특. 그동안 여행서를 읽을만큼 읽었지만 기존의 여행서하고 달랐다.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대범하다고 해야 하나. 픽션이 아니고 논픽션인데 이렇게까지! 그 바람에 나는 밤을 꼴딱, 새고 말았지만.

 

 

"나는 독자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주고 싶다.
기진맥진해버릴 만큼의 강렬한 정서와 인생의 다른 의미
경험하게 하고 싶다."_정유정

예판하자마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구매했다. 가끔은 그런 작가가 있는데, 부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든다. 구입한 책은 친구가 잠시 보겠다고 하더니 다시 준다는 걸 잊고 들고 갔다. 그래서 잠시 보류중. 지금은 『솔로몬의 위증』도 있고 하루키도 있으니 괜찮아.

 

 

 

제목도 무진장 길어서, 외우기 힘들지만 이미 읽은 사람이 말하길, 제목이 내용을 다 말해준다,고 했던 하루키의 책. 하루키를 억수로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댄스댄스 댄스』까지 좋았다가  『1Q84』를 다시 읽으며 좋아하게 되긴 했지만도), 도대체 이 책이 뭐기에? 라는 조금 고약한 심보로 예판했으나 사인본은 아니었고, 이 책은 첫 날에 선물 공세로 독자들을 줄까지 서게 만들었다는데.. 아, 우리 작가는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툴툴대다가 부디 누구든 독자 줄 세우는 작가 한 명 나오면 좋겠다, 상상하고~ 그렇다고 내가 나가서 줄 설 일은 만무하지만, 또 모르지.. 애정하는 작가님 책을 줄 세워 팔게 한다면야...

 

아무튼 책을 받자마자 읽은 감상은, 아직은 괜찮다는 것. 처음 이 세계, 저 세계 할 때는 『1Q84』 가 바로 떠올랐는데, 아직까지 그런 말이 나오기 전의 이야기라서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색채가 없는' 쓰쿠루에 대해선 알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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