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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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책을 읽을 때마다 난 감탄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또 그 상상력이란 얼마나 치를 떨게 하는지. 누군가 마르케스의 <백 년동안의 고독>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적은 것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백 년동안의 고독>따윈 머리가 아플 것 같아 읽을 생각도 안했으니 당연히 이 책도 읽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눈에 띄인다. 어떤 이는 읽은 뒤에 무척 우울했다하고 어떤 이는 읽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던 차에 거짓말같이 이 책들이(3권) 내 앞에 나타났으니 안 읽을 수 없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에 근거한 '허구'일 수 있지만 어쨌든 '소설이잖아' 할 수 있기에 읽고나서도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다.

 세 권으로 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한 권씩 따로 읽어도 그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어차피 세 권이 묶여서 나왔으니 가능하면 연작으로 읽어주는 것이 좋겠다. 첫 번째 이야기인 <비밀노트>는 두 아이 즉,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의 이야기다. 알파벳의 위치만 다른 똑같은 이름인 쌍둥이 두 아이는 전쟁으로 잠시 외할머니댁에 맡겨지는데 '마녀를 닮은 할머니'가 아닌 '마녀라 불리는 할머니' 밑에서 온갖 고생을 한다. 그 중 하나인 '최악의 상황을 이겨내는 훈련'은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너무나 천연덕스런 그 아이들의 모습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그 어린 것들이 정말 그랬단 말이야? 하다가 그래 소설이지 했다가 sbs의 그 기막힌 프로그램을 떠 올리며 아냐 가능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하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치와 해방군이 등장하는 현실의 상황들이 루카스와 클라우스에게 도덕성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절실히 보여주기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들의 폭력적이고 작은악마같은 행동들에는 이해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책을 놓지 못하고 읽었는데 내가 나머지 두 권의 책을 읽은 이유 역시 이 <비밀노트>에 있다. 그들의 끝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비밀의노트>가 나온 후 2년 뒤에야 나온 두 번째 이야기 <타인의 증거>는 둘이면서 한 몸이나 다름없는 두 아이가 자신들의 아이덴디티를 극복하고자 헤어진 후의 이야기다.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어 남의 나라로 떠나고 고향엔 루카스만 남게 된다. 첫 이야기에서 존재하지 않던 아이들의 이름이 나오고  클라우스를 떠나보낸 고통이 마음에 남아 있지만 여전히 죽은 할머니의 집에서 야채밭을 가꾸고 밤엔 카페에서 하모니카를 불면서 생활하는 루카스의 이야기다. 전쟁은 끝났지만 국경에 접해있는 루카스의 마을은 폐허나 다름없고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다. 그 속에서 루카스는 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여자를 데려와 살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자식처럼 키운다. 또 남편의 죽음으로 방황하는 도서관 여직원 클라라에게 마음을 주고, 서점주인과 동성애자인 당 간부,그리고 불면증을 가진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타인의 증거>에선 이 모두가 주인공이다. 루카스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갖고 산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장애를 가진 마티아스가 자살하고 클라우스가 나타나면서 <타인의 증거>는 갑자기 미궁속으로 빠진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다. <50년간의 고독> 마르케스의 제목과도 닮은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클라우스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화자는 '나'다. 루카스인지 클라우스인지 헷갈리고 어리둥절하다. 그러다 큰 제목이 생각난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말인지 중반으로 갈수록 점점 꼬이지만 그제야 우린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진실? 두 아이의 엇갈린 운명과 루카스가 클라우스이고 클라우스가 루카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말이다. 그 진실을 드디어 알게되면서 <비밀의 노트>와 <타인의증거>가 뒤죽박죽되고 결국은 <50년간의 고독>이란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이 나온다.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책을 덮으면서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것도 조용히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알 것 같다.

 매번 소설을 읽으면서 난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가 나온다. 이 책 역시 루카스와 클라우스 곁에서 그들의 엇갈린 인생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두려워했다. 하필 <비밀의 노트>를 읽고 그 무거움에 마음 졸이고 있을 때 sbs에서 하는 <야생의 아이들>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 아이들을 보면서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마음을 이해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이 책은 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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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콤플렉스
다이 시지에 지음, 용경식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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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자크와 바느질 하는 소녀>를 읽고 받은 감동이 사라질 무렵 이 파란바탕의 빨간 신발이 돋보이는 표지를 마주하고 그 감동을 이어가길 바랐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야 책을 펼쳤다. 늦지 않았다. 다이 시지에가 보여 준 그 유머가 여전했고 이야기 하나마다 이어지는 엉뚱한 결론엔 웃음이 나왔다. 블랙유머의 진수를 보여 준 작품이라 하겠다.

 여기 뮈오라고 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일찌기 쓰레기 냄새와 기름 섞인 물 냄새, 인스턴트 국수 냄새가 코를 찌르는 대학 기숙사에서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에 넋을 잃는다. 불꺼진 기숙사 침대 위에서 회중전등의 떨리는 희미한 노란 불빛 아래 난해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만무한 프로이드의 이론에 길고 긴 미로에서 길을 잃듯이 헤매다가 창문에서 던진 벽돌에 일격을 당한 사람처럼 프로이드에 빠져 <프로이드 뮈오>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난 후 중국에서 지독하게 어렵다는 시험에 통과하여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얻어서 화려하게 파리에 입성했는데...

 중국 최초의 정신분석가로 탄생하기까지 박사 논문을 얻기 위해 4년간 라캉식 정신분석을 받아야 했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도 벌어지고 불어를 제대로 못했기에 중국어로 더구나 자신의 고향인 쓰촨성의 사투리를 쓰며 이따금 긴 독백 중에 '초자아'에 압도되어 문화혁명에 대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곤 했으니 뮈오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 지 말해 무엇하리. 그런 그가 정신분석가를 꿈해몽가 정도로 알고 있는 중국에 돌아와야만 한 이유에는 첫사랑의 여자가 있었다. 후찬. 그녀다.

 중국 감옥에서 자행되는 고문 사진을 찍어 외국에 팔아 먹었다는 죄목을 가진 그녀는 곧 사형에 처해질 운명이다. 자신의 첫사랑이 그런 지경에 빠져 있는 걸 그냥 넘길 사람이 아닌 뮈오는 그녀를 구해올 방법을 찾는다. 나름대로 조사하고 알아본 바 그녀를 구할 방법은 오로지 판사를 구워 삶는 법. 내일 사형에 처해진다 해도 판사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었을 경우 최소한 형량이 줄어들기는 한다하니 뮈오가 뭔들 못하리오. 결국 알아낸 방법은 처녀구하기. 판사 디는 마작에 미쳤지만 처녀에도 미쳤다. 이제 뮈오의 '처녀구하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다이 시지에는 블랙 유머를 사용하며 현대 중국의 생활상이나 정치의 부패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한다. 판사에게 원하는 것만 해 주면 아무리 법을 어긴 사람이라도 감형이 되고, 여러가지 돈키호테식 행동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중국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하나의 이야기마다 유머와 익살스러움이 가득하고 마지막 스토리의 반전은 그야말로 백미다. 그러니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이 재미난 소설을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면 '불행'이라고 감히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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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 신경과의사 올리버 색스의 병상 일기
올리버 색스 지음, 한창호 옮김 / 소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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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주변엔 유별나게 간호사가 많다. 나름대로 다들 임상 경험이 있는지라 병원엘 가면 아는 것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 병원에 입원을 해서 병문안을 가면 그때부터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의사의 지시나 간호사의 설명이 올바른 건지 또는 같은 간호사로서 환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제대로 된 건지 등등 관찰하기 바쁘다. 병문안가서도 저 정도인데 정말 입원이라도 하면 얼마나 까탈스럽고 아는 척(?)이 많을까? 라는 생각이 안든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여기 신경과에서 알아주는 교수님 올리버 색스가 등산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다. 여태껏 환자들의 신경학적 심리만 관찰하고 진찰하다가 본인이 바로 그 환자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다리를 다쳐 온갖 희망과 좌절과 고통속에서 허우적대다 구사일생(?) 구조되어 최고의 외과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올리버.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그러나, 그가 산에서 다리를 다쳤을 때 어떠했는가부터 알아보자.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교수다. 사고를 당한 후 고통이 오자 그는 침착하게 자신이라는 환자를 두고 의사 입장에서 그 다리를 관찰해본다. 침착하게 결론을 내리고 환자를 보는 순간, 그 환자가 자신임을 깨닫고 어쩌면 내가! 불구의 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그 후로 그의 머릿속은 온갖 상상들이 날개를 단듯 날아다닌다. '2년 전에 이곳에서 사고가 난 멍청한 영국인이 일주일 후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 되었다더라''해질녘까지 무슨일이 있어도 나는 사람들 눈에 띄어야 한다''아냐, 내려갈 수 없을 거야''아! 내게 우산이 있어 그걸로 부목을 만들면 돼. 그래 난 구조될 수 있어'그러다가 톨스토이도 생각나고, 칸트의 음악도 들리며, 급기야는 저녁 어스름에 들리는 교회의 미사곡이 자신을 위한 장송곡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물론, 올리버 색스가 아니라 나라고 해도 그런 상황에선 온갖 상상들이 날 괴롭혔으리라. 하지만 신경과 교수인 올리버 색스는 얼마나 많은, 그동안 보아왔던 그런 경험의 사람들이 생각났을 것인가?
 
수술 후 올리버 색스는 이제껏 자신이 관찰만 해 오던 그런 환자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그의 다리가 <형식적이고 사실적인 의미에서 그곳에 존재했다. 시각적으로 거기에 있었지만, 생명력을 지니고, 알맹이 있게 현실적으로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다리는 실제 다리가 아니었으며, 결코 현실성을 갖는 다리는 아니었다. 내 앞에 놓여있는 단순한 겉모습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실을 빼내어도 고통이 없었고, 걷고자 생각해도 자연스럽게 걸어지지가 않았다. 내 다리는 이곳에 있는데 남의 다리가 내 몸에 붙어 있는 듯한 느낌! 그런 뜻하지 않은 경험도 놀라운데, 끔찍한 간호사를 만나고  병원시스템의 불합리화, 회진이라는 시간에만 나타나는 담당의, 더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도 그대로 들어주지 않는 의료진들...등등 의사로서 환자를 대할 때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환자가 되면서 경험하게 된 것이다.
 
다리가 있으되 다리가 없는 사람인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의사답게 모든 예를 들면서 철학적으로 혹은 꾸밈없는 일기형식으로 임상기록을 써내려 간다. 그가 수술 후 느낀 많은 경험들, 고통과 불안과 희망과 좌절의 반복 속에서 소생하고 회복하고 이해하는 순간까지 철저히 환자가 되어 환자로서의 절차를 그대로 밟은 것이다. 그러한 임상 기록이 나중에 올리버 색스라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고는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의료진들이 한번쯤 환자가 되어 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환자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다리를 다쳐보지도 않았고 더구나 깁스 같은 것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올리버 색스의 경험이 전혀 낯설고 설마?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올리버 색스가 예로 든 다른 사람들을 봐서는 틀림없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라는 느낌! 조금 끔찍해지지만..올리버 색스가 그 사건(?)을 해결하고 여행이 끝난 느낌으로 철학적 사상의 본질을 운운하며 써내려간 이 책은 가히 올리버 색스다운 임상기록이라 하겠다. 
 

그래서 우리 탐구의 모든 끝은,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도달하는 일이며
그곳을 처음 보는 것처럼 인식하는 일이다.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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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여우 여우비
이성강 원작, 하은경 글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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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년여우 여우비는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그 사랑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줍니다. 어쩌면 식상할 이야기에 작가는 영혼이 머물다 환생하는 카나바의 세계라든가 영혼이 없는 그림자를 등장시켜 판타지와 여우비의 모험을 그려 냅니다. 그래서 이 책엔 우리가 전설로만 들었던 무서운 구미호가 나오지만 전혀 무섭지 않으며 오히려 여우비가 보여주는 사랑에 감동하게 된답니다. 그럼 여우비를 만나러 가 볼까요? 

흰눈으로 뒤덮인 숲속에 여우비란 이름을 가진 여우가 살았습니다. 엄마 여우가 죽은 줄도 모르고 마냥 기다리던 여우비에게 저 먼 별에서 온 요요친구들이 찾아왔지요. 물론 요요들은 여우비를 만나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여우였던 여우비를 보는 순간 지구를 떠날 생각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직 어려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 영원히 이별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여우비는 갑자기 없어진 엄마를 기다리면서도 곧 요요들과의 생활에 적응을 했습니다. 이들은 오순도순 때로는 티격태격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느 날 산중턱 마을이 끝나는 자리에 있는 폐교에 캠프 온 아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우비가 사랑하게 된 금이도 만나게 되지요. 그러나 여우가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겠어요? 더구나 여우비는 천 년을 산다는 구미호였는데 말예요. 금이를 만난 다음부터 요요들은 갑자기 짜증을 부리는 여우비에게 사춘기라고 놀려댔지만 그게 뭔지 여우비는 몰랐어요. 하지만 금이를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얼굴이 발그스레해졌지요.

 금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던 여우비는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답니다. 여우가 어떻게 학교엘 가며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느냐고요? 여우비는 구미호랍니다. 구미호는 둔갑술에 능하므로 인간으로 변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지요. 다행히 금이도 여우비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러나 주희는 그게 못마땅했지요. 갑자기 나타난 여우비가 금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아 심술이 났어요. 여우비를 혼 내 줄 궁리를 하다가 잠을 설치던 주희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여우비가 얄미워 이불을 가로채다가 여우비의 꼬리를 보고 말았어요. 놀란 주희가 소리를 쳤지만 그땐 이미 여우비가 꼬리를 감춘 뒤였답니다. 이제 주희는 여우비를 의심하게 되고 여우비는 조심하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구미호 사냥꾼이라는 남자가 나타났어요. 그가 지니고 다니는 부적은 여우비를 아프게 하여 둔갑술을 풀리게 만든답니다. 여우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여우비가 인간이 되려면 누군가의 영혼을 가져야만 한답니다. 여우비가 영혼을 가지면 그 누군가의 생명은 사라지고 말게 되지요. 드디어 그런 순간이 왔답니다. 과연 여우비는 그 사람의 영혼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여우비는 인간에게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여우든 사람이든 그 사랑을 지닌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여우비는 깨닫게 해 주었지요. 여우비를 통해서 내 어린시절의 일들이 생각나고,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지금 내 주변에 '진실된 사랑'을 주는 친구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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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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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다른 이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노발리스

난 원래 노벨문학상을 탄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라고 이야기해봤자 이유같지도 않지만 아무튼 난 노벨문학상을 탔다고 하면 읽을 생각도 안한다. 분명 여러날 동안 그 책에 빠져 정신없이 그 책에만 몰두하여 머리를 쥐어뜯어리라는 걸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읽을 수 없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은 상당히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는 마음의 양식은 아니더라도 일단은 책을 읽고 뭔가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을 잡는데다가 재미와 흥미도 원하는 것이므로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책들은 몇 장 읽지도 못하고 포기해 버리고 만다. 사실 이런 성격은 뭐든 쉽게 쉽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아무튼...

 오르한 파묵은 달랐다. 그가 <내 이름은 빨강>의 저자이고 그 책은 읽는 사람들마다 강추하는 작품이었기에 그런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뿔싸! 너무 믿었나보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 멋진 도입부와 함께 흥미를 보이며 몇 장을 읽다가 난 좌절해버렸다.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다. 읽고 또 읽으면서도 머릿속은 뒤죽박죽. 그래,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인데..그렇지 뭐..역시. 어쩌고 하면서 장장 일주일이 넘도록 책을 들고 있었다.(아..그 시간이면 최소한 다섯 권의 책을 읽을 기간이다.) 그런데, 그런데말이다. 그 지겨운 앞부분을 넘어서자마자(나린박사 등장!!!) 난 이 책에 빠져 들었다. 오! 이럴수가, 아, 그렇구나!

 읽는 사람마다 자신이 느끼는 주제는 각각 다르다고 생각한다.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소설에서 사랑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고, 공포소설에서 인간미를 엿볼 수도 있으며, 연애소설에서 인생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 <새로운 인생>에서 오스만이 자난을 만나고 그녀가 들고 있던 책을 읽게되면서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인생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만 결국 이 책의 요점은 자신의 삶, 그 삶이 주는 의미. 그게 새롭든 아니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오스만의 인생 여행을 읽을 수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되는 우연들, 인생을 바꾸게 한 책의 저자가 아버지의 친구이며 철도공무원이던 르프크 아저씨이고, 자신과 결혼한 아내가 사실은 그 책을 처음 읽었던 그때, 자신의 집 맞은 편 빈 아파트에 새로 이사온 집의 그 딸이었다는 것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과 <새로운 인생>이라는 카라멜의 우연성. 그외 그 여러가지 우연들 속에 오스만의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난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며 우연 속에 들어 있는 인생을 읽었다. 그러나 오르한 파묵은 그것이 옳은 해석이었다거나 틀렸다고도 하지 않는다. 즉, 내가 이 책에서 인생을 읽었듯이 이 책의 해석과 해결은 이처럼 독자인 내 맘인 것이다.

 또, 오르한 파묵은 이 책에서 1980년대 터키의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오스만이 겪고 보는 터키의 시골마을에 침투해 있는 '거대 음모'들은 전통적인 가치들을 겨냥한 서구문명으로 인한 터키 근대의 상처들을 꺼집어내면서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터키의 지역적 특성을 이용해 방황하는 그들의 삶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일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오르한 파묵의 의도에 굉장히 호감을 가졌다.

 오르한 파묵의 이 책은 아주 주의깊게 정독을 해야만 하는 책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생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말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단서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어버린다면 오르한 파묵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으로 이 책은 내게 다독이 아니라 정독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 책이 되겠다. 그리고 이 책은 이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한번 제대로 정독해야 할 책으로 남았다. 아마도 유명 문학작품이란 그래서 인정을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스만은 <새로운 인생>을 비유할 데 없는 순간에(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맛 볼 수 있는 행복(죽음)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새로운 인생이란 무엇일까? 현재의 내게 그것은 '비유할 데 없는 순간에(좋아하는 작가의 리스트에 한 사람의 작가를 추가하게 되었음을 깨달을 때) 맛볼 수 있는 행복(충만)'이라고 말하겠다. 넘 쌩뚱맞은가?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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