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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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다른 이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노발리스

난 원래 노벨문학상을 탄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라고 이야기해봤자 이유같지도 않지만 아무튼 난 노벨문학상을 탔다고 하면 읽을 생각도 안한다. 분명 여러날 동안 그 책에 빠져 정신없이 그 책에만 몰두하여 머리를 쥐어뜯어리라는 걸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읽을 수 없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은 상당히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는 마음의 양식은 아니더라도 일단은 책을 읽고 뭔가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을 잡는데다가 재미와 흥미도 원하는 것이므로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책들은 몇 장 읽지도 못하고 포기해 버리고 만다. 사실 이런 성격은 뭐든 쉽게 쉽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아무튼...

 오르한 파묵은 달랐다. 그가 <내 이름은 빨강>의 저자이고 그 책은 읽는 사람들마다 강추하는 작품이었기에 그런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뿔싸! 너무 믿었나보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 멋진 도입부와 함께 흥미를 보이며 몇 장을 읽다가 난 좌절해버렸다.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다. 읽고 또 읽으면서도 머릿속은 뒤죽박죽. 그래,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인데..그렇지 뭐..역시. 어쩌고 하면서 장장 일주일이 넘도록 책을 들고 있었다.(아..그 시간이면 최소한 다섯 권의 책을 읽을 기간이다.) 그런데, 그런데말이다. 그 지겨운 앞부분을 넘어서자마자(나린박사 등장!!!) 난 이 책에 빠져 들었다. 오! 이럴수가, 아, 그렇구나!

 읽는 사람마다 자신이 느끼는 주제는 각각 다르다고 생각한다.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소설에서 사랑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고, 공포소설에서 인간미를 엿볼 수도 있으며, 연애소설에서 인생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 <새로운 인생>에서 오스만이 자난을 만나고 그녀가 들고 있던 책을 읽게되면서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인생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만 결국 이 책의 요점은 자신의 삶, 그 삶이 주는 의미. 그게 새롭든 아니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오스만의 인생 여행을 읽을 수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되는 우연들, 인생을 바꾸게 한 책의 저자가 아버지의 친구이며 철도공무원이던 르프크 아저씨이고, 자신과 결혼한 아내가 사실은 그 책을 처음 읽었던 그때, 자신의 집 맞은 편 빈 아파트에 새로 이사온 집의 그 딸이었다는 것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과 <새로운 인생>이라는 카라멜의 우연성. 그외 그 여러가지 우연들 속에 오스만의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난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며 우연 속에 들어 있는 인생을 읽었다. 그러나 오르한 파묵은 그것이 옳은 해석이었다거나 틀렸다고도 하지 않는다. 즉, 내가 이 책에서 인생을 읽었듯이 이 책의 해석과 해결은 이처럼 독자인 내 맘인 것이다.

 또, 오르한 파묵은 이 책에서 1980년대 터키의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오스만이 겪고 보는 터키의 시골마을에 침투해 있는 '거대 음모'들은 전통적인 가치들을 겨냥한 서구문명으로 인한 터키 근대의 상처들을 꺼집어내면서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터키의 지역적 특성을 이용해 방황하는 그들의 삶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일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오르한 파묵의 의도에 굉장히 호감을 가졌다.

 오르한 파묵의 이 책은 아주 주의깊게 정독을 해야만 하는 책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생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말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단서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어버린다면 오르한 파묵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으로 이 책은 내게 다독이 아니라 정독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 책이 되겠다. 그리고 이 책은 이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한번 제대로 정독해야 할 책으로 남았다. 아마도 유명 문학작품이란 그래서 인정을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스만은 <새로운 인생>을 비유할 데 없는 순간에(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맛 볼 수 있는 행복(죽음)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새로운 인생이란 무엇일까? 현재의 내게 그것은 '비유할 데 없는 순간에(좋아하는 작가의 리스트에 한 사람의 작가를 추가하게 되었음을 깨달을 때) 맛볼 수 있는 행복(충만)'이라고 말하겠다. 넘 쌩뚱맞은가?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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