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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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젠가 TV에서 아프리카 어느 지역의 분쟁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내준 적이 있다.(기억으론 시에라리온인 듯) 그칠 줄 모르는 지역 분쟁에서 고통당하고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당연히 여자와 어린이들이었다. 먹을 것도 제대로 없어 굶주림에 있는 아이들이 손목이 잘리기 전에 혹은 죽임을 당하기 전에 복수의 총을 들고 악에 바쳐 소리 지르는 모습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도대체 저 아이들을 전쟁으로 내몰고 제 키보다도 큰 총을 메도록 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저 아이들이 그 전쟁의 의미를 알고 총을 든 것일까? 씁쓸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배후에 부패한 관리들과 종족간의 갈등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부를 위해 나라를 망치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면서 정작 국민들은 기근에 걸려 죽든지 병에 걸려 죽든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국민을 위해 개혁을 하는 지도자를 외국 세력의 조종으로 살해해버리고 지옥 같은 생활에서 겨우 벗어난 국민들을 또다시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그들은 기아를 무기로 삼고, 국제기업에 악용하며, 테러의 도구로까지 이용한다. 또 도와죽겠다고 평화유지군을 보내고 국제 적십자사나 난민 구호단체에서 구호품을 보내어도 그들을 죽여 버리는 곳이 아프리카였다. 그러니 아프리카에서 굶주리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물론 기근이 아프리카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강대국에 속하는 러시아에서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다. 콩고 같은 나라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 또 브라질에서는 살인적인 금융 과두제가 물품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브라질 북동부에서 굶주림으로 인해 영양실조가 만연하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기근은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어쩌면 이런 모든 일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유럽 강대국의 이기적인 지배에서 생겨났을 수도 있는데, 토머스 맬서스의 ‘자연도태설’을 핑계로 삼아 심리적 기능으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화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유럽의 많은 지배층 계급에서 그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그러나 유럽뿐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경우 이라크나 다른 중동지역에 비해 거둬들일 자원이 없으니 미국이나 다른 강대국에서도 관심을 두지도 않는 점도 있다. 그들이 만약 아프리카에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어떤 자원들이 충분하다면 미국이나 강대국들이 모른 채 하고 나두었을까 싶기도 하다.


나라마다 자국의 이익과 각 나라와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서 피해를 받는 사람은 가난하고, 자원도 풍부하지 못하고, 매년 가뭄과 홍수로 기근에 허덕이는 나라다. 구호품을 공급해도 정말 도와줘야 할 사람들에겐 그것들이 공급되지 않는다. 북한을 두고 생각해도 그렇다. 그러니 세계 어느 나라든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베르툴트 브레히트가 주장하는 식량권을 국제 법규로 도입을 하든지 전지구적인 민간단체가 하루빨리 탄생하여 ‘워싱턴 합의’와 인권 사이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란다. 저자는 기아와의 투쟁이 이런 대립을 언제 끝낼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기근의 심각함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있었다고 해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는 게 좀 더 정확하겠다. 저자가 이야기 하듯이 학교에서 기근으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린다고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간혹 구호단체들이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물에 비쩍 마른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저 쯧! 하고 혀만 찼지 고개 돌리면 잊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죄스러움에 할 말이 없었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는데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어죽고 있다니, 이런 아이러니는 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이다. 그만큼 아이들도 이해할 수 쉽게 글을 적었다. 이제 기아문제는 아이들에게도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고 그 진실을 알게 해주어야 할 일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와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관심이다. 쯧! 하고 혀를 찰 일이 아니라 기아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새롭게 잡는 것만이 옮긴이의 말처럼 작은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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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08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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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성석제가 바뀌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좋다는 사람도 있고 싫다는 사람도 있다. 나? 난 잘 모르겠다. 성석제가 마지막에 이야기 하듯이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인데 그게 나아지는 건지 나빠지는 건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예전처럼 똑같은 글을 쓰면 나태하다 할 것이고, 이번처럼 바뀌면 바뀌었다고 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많은 사람들이 성석제의 글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니 좋은 소리든 나쁜 소리든 소설가로서는 행복한 일일거란 생각이 든다.


그의 책은 작년에 나온 산문집『소풍』을 읽고 처음이다. 그 전엔 아마도 『즐겁게 춤을 추다가』를 읽었었던 것 같고, 성석제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은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오는 책마다 나름대로 찾아 읽었으니 나도 성석제의 글에 대해선 좀 안다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성석제는…하고 평을 할 정도의 독서 수준이  아니다. 죽 그래왔듯이 난 그저 책 읽는 것이 좋아서 읽는 편이지 분석을 하기 위해 읽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가 변했느니 아니니 뭐 그런 이야긴 할 수도 없다. 그저 읽어볼 뿐이다. 읽고서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아닌 거고. ^^;;;


참말로 좋은 날』엔 7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대체로 성석제의 위트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좀 우울하다. 제목처럼 ‘참말로 좋은 날’이 오길 기대하고 썼는지 이야기들마다 ‘참말로 무겁다.’ 특히, 작가도 그 무거움을 인정한 두 편은 읽고서도 꽤 꿀꿀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니었다」의 맨날 술 처먹고 주정하고 애들 패는 아버지나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의 졸업하기 전에 이미 민관의 공모전에 숱하게 이름을 올려 후배들에게 거의 선생의 대접을 받았으나 지금은 너무나 무능력한 가장인 불운한 화가 종호는 드라마에서 혹은 뉴스에서 이미 우리 주변에 숱하게 보아온 인간군상 중에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니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어쩌면 그게 너무나 현실을 닮아 있어 무겁고 꿀꿀한 지도 모른다. 소설인데, 어차피 소설인데 왜 소설 같지 않고 이웃집 이야기 같은지 말이다. 뭐 그래서 작가는 고마워하기도 한다. 소설을 쓰게 해주는 존재들, 실재하는 또 실재하지 않는 존재들에게.


법을 바로 잡기 위해 일어선 순간, 그 법의 재물이 되고 만 「집필자는 나오라」는 액자식 역사소설로 인현왕후의 폐비가 잘못된 것임을 진언한 박태보의 고문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고문에도 지만하지 않는 박태보의 잘못된 일을 바로 잡으려는 인간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결국 끝없이 계속되는 고문에 뼈와 살이 다 타고서야 고문은 멈춘다. 독한 왕에 독한 신하. 그 외에 같은 동네에서 같은 추억을 가진 친구로서 동생으로, 아내로 한 여인을 두고 가지는 전혀 다른 기억을 무덤덤하게 보여 주는「고욤」, 어쩐지 결말이 눈에 선했지만 그럼에도 그 삶이 궁금해서 끝까지 빠질 수밖에 없었던 「고귀한 신세」,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악어는 말했다」그리고 작가의 여전한 위트와 입담이 보였던 「환한 하루의 어느 한때」까지 대부분 무겁고 어두운 결말을 보여 준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의 화두는 ‘인간’인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 오빠와 동생으로서의 관계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대접 받기를 원하지만 후배에게도, 법에서도 인간 대접을 못 받는 인간(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좋은 음식에, 좋은 환경에서 정말 인간답게 살았으나 결국엔 인간처럼 죽지 못한 인간(고귀한 신세), 그리고 선배니 형이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상은 적의로 가득한 인간들(악어는 말했다), 인간으로서는 하기 힘든 고문을 하고 그 고문을 그대로 받은 독한 인간(집필자는 나오라). 그래서 소설이잖아 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많았던 『참말로 좋은 날』은 작가의 문체가 바뀌었든 말든 내겐 인간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많은 물음표를 던져 주었다.


집필자는 나오라」에서 외삼촌은 말한다. “허허, 나 겉은 늙은이가 시골에 꿩처럼 숨어 살면서 뭘 알겠느냐마는 옛날에 죽은 사람들도 요새 젊은 사람들하고 생각하는기 크기 다르지 않았을 기다. 사람은 변할 기 없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성석제는 나이가 들었어도 사람은 그대로라고. 변한 게 없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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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성석제의 『참말로 좋은 날』중 첫 번째 이야기인 ‘고욤’을 읽다가 사향 냄새나는 여자 향지를 만났다. 읽다보니 엊그제 읽은 살만 루슈디의 『분노』에 나오는 닐라가 향지처럼 사향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이 정신을 놓고 빠진다는 것이 동일하여 그 둘을 비교해봤다.(할일도 참 없지. - -;)


먼저 닐라를 말하자면, 솔랑카가 ‘닐라효과’라고 칭할 만큼 닐라가 거리에 나타나면 일대 소동이 일어난다. “교통을 마비시켜버리는 여자, 실제 본 적 있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백이면 백, 어김없이 차들이 우뚝 서게 만드는 여자? 닐라가 바로 그런 능력을 가졌다구. 그 여자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승용차 다섯 대와 소방차 두 대가 끼익 급정거를 하더라니까. 멀쩡히 걸어가던 사람이 가로등을 들이받기도 하지. 그런 일은 맥 세넷(주:헐리우드의 무성영화를 대표하는 미국 영화배우 겸 감독. ‘슬랩스터 희극의 아버지’ ‘코미디의 제왕’등으로 일컬어진다.)의 슬랩스틱 코미디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날마다 그런 놈들을 보게된다구.” p300 솔랑카의 친구인 잭이 솔랑카에게 전화하여 닐라에게 마음이 빼앗긴 이야기를 하면서 전해주는 ‘닐라효과‘이다. 더욱더 가관인 것은 그 재미에 잭이 닐라를 만나면 일부러 화장실을 가게 한다나? 닐라가 테이블과 테이블을 지날 때마다 매 맞은 개처럼 풀이 죽는 꼴을 하는 남자들을 보면 재미있어 죽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향지는 어떠한가? “나 낳고 나서 엄마가 죽었어. 외할머니가 나를 씻어주었는데 씻은 물에서 사향 같은 냄새가 났대. 이상하게 동네 개들이 내가 누워 있는 방 앞에 모여 들었대. 그 물을 거름더미에 뿌렸는데, 그러면 또 개들이 코를 들이밀고 늑대처럼 모여서 울고.” p 27 닐라 만큼 고상해보이진 않지만 향지는 나름대로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묘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자라면서 그 묘함은 닐라 못지않았다. 닐라는 외모도 아름답고 남자들이 처음 보는 순간부터 혹하지만 시골 촌구석에 사는 조금 예쁜 정도의 평범한 외모를 가진 향지도 어딘지 모르게 남자를 끄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래서 향지를 처음 본 남자들은 파리처럼 향지주변을 맴돌았다. 향지에겐 ‘성인의 초상 뒤에 그려지는 후광, 부처의 원광(圓光) 같은 미의 여신’이 부여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은 여자로서 닐라나 향지 같은 여자를 보면 약간의 샘이 난다. 도대체 쟤들이 뭔데, 내가 보기엔 그다지 매력적인 것 같지도 않은데 왜 남자들은 끔뻑 넘어가는 건지….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그런 친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아이야 말로 향지 같은 아이였다. 좀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지만 촌아이였고, 공부를 그다지 잘 한 것도 아니었는데 주변에 남자아이들이 많았다. 어린 나는 그게 무척 궁금했었던 것 같다. 도대체 저 남자아이가 내가 아닌 저 아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 -;; 물론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내가 그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그걸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남자들의 마음을. 그래서 여태 혼자인지도 모른다.^^;; 쓰잘데기없는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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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된 할아버지
킴 푸브 오케손 글, 김영선 옮김, 에바 에릭손 그림 / 한길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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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른이나 아이 모두에게 무척 힘든 일이다. 더구나 나하고 친했거나 혹은 나를 많이 보살펴주던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아픔을 줄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어른보다 아이가 받는 충격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이 책 『유령이 된 할아버지』는 길을 가다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 있는 아이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 준다.


에스본은 할아버지와 단짝 친구라고 할 만큼 가까웠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슬픔이 너무 컸고,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엄마의 말에도 마음이 안 놓인다. 관에 들어가 땅속에 묻히시는 할아버지를 아빠가 말씀하신대로 할아버지는 흙으로 변하실거야 하고 상상을 해도 쉽지가 않다. 에스본은 천사 이야기도, 흙 이야기도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걱정에 잠이 들었는데 난데없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에스본의 방에 나타나신 거다. 유령이 되셔서 말이다. 에스본은 유령이 나오는 책을 보고 할아버지가 진짜 유령이 되셨는지 실험해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벽속을 마음대로 드나들지 않는가? “우와!” 에스본은 재미있어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닌 할아버지는 슬프다.


아침에 일어나 아빠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자 아빠도 할아버지 꿈을 꿨다며 에스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치원을 하루 쉬라고 말한다. 유치원에 가지 않는 이유를 에스본은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다시 오신다고 하셨으니 그런 것쯤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다시 찾아온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뭔가를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유령이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숨을 쉬며 그게 무엇인지 걱정하시는 할아버지를 돕고자 에스본은 할아버지와 함께 빠뜨린 것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기로 한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사셨던 집으로 가서 사진들을 둘러보며 많은 추억들을 생각한다. 또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시는 동안 있었던 많은 일을 이야기 해준다. 그럼에도 무엇을 빠뜨렸는지 찾지를 못하신다. 그런 다음 날 드디어 할아버지는 그 빠뜨린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며 에스본에게 이야기 해준다. 그건 바로 에스본과 할아버지의 작별 인사였다.


이 부분에서 나는 살짝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하는 조카 생각이 나고, 조카를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내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 둘도 에스본과 할아버지처럼 그런 슬픈 일을 경험할 테고, 유치원을 다니면서 부쩍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조카가 ‘할아버지들은 다 죽지? 그럼 하늘나라로 가?’하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의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둡지 않다는 거다. 자연스럽게 아이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어른이면서도 아이처럼 나도 “.” 숨을 내쉬며 손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슬픔의 강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령이 된 할아버지』는 ‘죽음’이란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누구나 나이가 들면 죽는다는 자연의 이치를 무겁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은 깨달음을 보여준다.


이제 할아버지와 작별한 에스본은 유치원에 갈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와의 추억도 마음에 다시 새겼고, 가끔 서로를 생각하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안심하고 “.” 내쉬는 큰 숨 속에 그 슬픔만큼 부쩍 성장한 에스본이 보인다. 덩달아 나도 “휴.” 큰 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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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풍경 2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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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내가 찾았던 이름나지 않은 조용한 곳들이 내 모습이 변하는 만큼 그곳의 풍경도 점점 변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인적도 없고 새소리만 들리던 적막한 곳이었지만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최고였던 곳이 드라마에 잠시 나왔다는 이유로 훼손되고, 그 자연에 어울리지 않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맛있는 요리를 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그 옛날의 정취가 자취 없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그 허탈감은 내가 비록 그곳에 살고 있지 않아도 분통터지는 일이다. 물론 관광객이 주는 삶의 풍족함에, 물밀듯이 들어오는 도시의 닮은꼴들에 그곳 사람들도 약간의 이득이 생기겠지만 과연 그들은 행복할 것인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바다의 풍경』에 그 해답이 나온다.


크고 작은 3,000여개의 섬들이 흩어져 있는 세토내해의 작은 섬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인 소키치는 누나와 단둘이 살고 있다. 소키치가 살고 있는 작은 섬엔 오래 전에 송전탑이 들어오고 스카이 라인이 생겨 관광객들이 많이 드나들게 되었다. 그로 인해 대대손손 어부였거나 농부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천직을 그만두고 소키치의 누나처럼 토산품 가게를 한다든가 관광객을 상대로 레스토랑이나 민박을 하면서 산다. 소키치는 그런 누나가 마음에 들지 않고 사사건건 누나에게 반항을 하며 아무런 이유 없이 등교거부를 한다. 그런 어느 날 어부였던 아버지가 전력회사의 일을 하게 된 배경에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소키치는 아버지의 삶을 추적하게 된다.


이 책은 소키치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가면서 알게 되는 많은 일들 중에 송전탑 건립으로 전력 공급이 수월해졌고 스카이 라인이 생기면서 관광객도 많이 늘었지만 그로 인해 빚어지는 자연 훼손이라든가, 바다 한 복판에 해상도로를 놓고 거대한 석유 비축기지의 건설하여 석유 비축 탱크를 늘림으로 인해 생겨나는 생태계의 파괴가 끼치는 영향의 심각함을 들려준다. 또 편리함을 내세우며 섬들을 이은 다리로 인해 조류가 바뀌면서 줄어든 어획량으로 말미암아 천직이던 어부의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과연, 섬 주민들의 행복을 위한 개발이었나 생각하게 해준다.


그러나 하이타니 겐지로는 그런 씁쓸한 이야기들 가운데 소키치와 그 주변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여유와 희망이 소키치의 미래의 삶에, 장차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섬에 대해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삭막한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미라든가 상대를 배려해주는 마음 같은 것은 비록 등교를 거부하고 학교에 다니지 않았을지라도 소키치가 아버지를 제대로 알아가면서 배우게 되는 소중한 인생 수업인 셈이다.


『바다의 풍경』은 청소년 소설이면서 환경 소설이다. 한 소년이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한 자기성찰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아버지의 발자취를 통해 알게 되는 진실은 산업의 발전으로 1차 산업들이 쓰러지고 무절제한 개발로 자연이 훼손되어 가지만 그 한 구석에서 그 거대한 기업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환경 단체들이 있고, 지킴이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안겨준다. 더불어 환경문제라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하이타니 겐지로는 나에게 제대로 해답을 알려준 셈이다. 도시 사람들로 인해 그곳의 모습이 예전과 다르게 변했을지라도 그곳을 찾아오는 우리를 대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쩌면 그 옛날 정겨운 그 마음 그대로일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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