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아버스 -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
퍼트리샤 보스워스 지음, 김현경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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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에 실비아 플라스의 영화를 우연히 보았다. 그녀가 시인인지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한동안 실비아 플라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고 구입하였는데 아직도 읽어보질 못했다. 다이앤 아버스, 애석하게도 난 그녀의 이름도 처음 들어 보았다. 하긴 내가 모르는 유명인들이 어디 한 둘 이겠냐마는 왜 하나같이 멋지고 개성 있는 여자들은 자살을 하는 건지, 아니면 자살을 했기 때문에 그런 개성이 드러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이앤 아버스 역시 씁쓸하다. 실비아 플라스 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1923년 뉴욕의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가 되길 꿈꾸다가 1971년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한 다이앤, 그 사실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더구나 다이앤이 사진가로서 그 당시에 금기시되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것이 아주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쌍둥이나 장애인, 나체주의자, 왜소인, 바보, 난쟁이와 같은 인습을 무시하는 존재들에게 흥분을 느낀 그녀의 ‘공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이 책,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다이앤 아버스』는 3부로 나뉜다. 그녀의 출생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가 1부에 나오고, 남편인 앨런과 함께 패션 사진  작가로서의 다이앤의 이야기를 다룬 ‘패션 사진기’가 2부에, 마지막으로 다이앤의 독창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금지된 것들의 이상한 나라’가 3부에 소개된다. 서문과 인용문을 빼고도 400페이지가 넘는 글이 저자인 퍼트리샤 보스워스가 인터뷰한 200여명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매 페이지마다 소개되는 인터뷰를 보노라면 한 편의 다큐프로를 보는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으로 다큐를 만든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유명한 다이앤 아버스의 작품을 하나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사진은 비밀에 대한 비밀이다. 사진이 더 많이 말할수록 그것을 보는 사람이 아는 것은 더 적어진다.”라고 다이앤이 살아생전에 이야기 했다던가? 그녀의 전기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가족들로 인해 우리는 다이앤의 작품을 볼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다이앤을 볼 수 있으므로 아쉽지만 그걸로 위로를 삼아야 한다.


15살의 나이에 앨런을 만나 18살에 결혼한 다이앤은 평생 배우가 되기를 꿈꾸면서 궁여지책으로 사진을 찍는 앨런에게 사진을 배운다. 결혼 후 그들은 같이 패션지의 사진을 찍지만 수입도 적었고 그다지 열정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일을 선택한 것은 둘이 별거를 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던 그들은 앨런이 낮엔 스튜디오를 하고, 밤엔 연기 선생인 미라 로스토바에게 스튜디오를 내주며 배우 수업을 받을 때도 다이앤은 계속해서 패션지의 사진을 찍었다. 서로에게 거리가 생기고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기임이 확실했는데도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둥글고 어두운 눈에, 똑같이 음울하고 경계심 많은 표정을 띤 쌍둥이’처럼 살았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앤은 그즈음 앨런과 리젯 모델의 가르침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진들을 서서히 찍기 시작했다. 부랑자, 머드 쇼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휴버트 프릭 박물관에서 기형인들의 모습을 찍었다. 다이앤은 매번 새로운 상황에 접근할 때마다 아주 수줍고 겁에 질렸지만 그 두려움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기도 처음엔 어려워했으나 새로운 챔피언이자 멘토인 마빈 이스라엘을 만나 그가 더 큰 도전과 힘든 과제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의 재능을 믿어주고 죽는 날까지 곁에 있어주겠다고 자극과 압력을 가한 덕분에 그런 부탁마저도 쉬워했었다.


1967년 3월 6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뉴 다큐먼트’사진전은 다이앤 인생의 정점이었다. 호평과 혹평이 쏟아짐에도 그녀는 전시관에 매일 나가 사람들의 반응을 엿들었다.  호평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혹평을 하였기에 그 이후 그녀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 ‘뉴 다큐먼트’전이 있은 뒤로 다이앤에게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와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 왔고, 그녀의 작품을 싣게 해 달라고 많은 사진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다가 비바라는 여배우의 사진을 스냅샷으로 찍어 실은 후에 ‘기형인들의 사진가’라는 명성이 더 굳어졌는데 다이앤은 그것이 과장되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으며 크게 낙담하였다. 그즈음 다이앤은 먹고 있던 항우울제의 복용을 중단하고 있었기에 쉽게 짜증을 내고 아주 많이 우울했다.


1971년 7월 26일 다이앤은 그 날 거리에서 마주친 사진가 월트 실버에게 자신이 감기에 거릴 것이며 뉴욕을 떠나 이사할 생각이라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7일 피터 슐레징거와 마빈이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28일이 마빈이 다이앤이 살고 있는 웨스트베스로 건너갔을 때 다이앤은 칼로 손목을 긋고 죽어 있었다. 일기장은 7월 26일자로 펼쳐져 있었고, ‘최후의 만찬’이라고 흘려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다이앤의 초상 사진들은 1963년대 대공황기의사회적인 관심사에 묶여 있던 다큐멘터리 사진이, 1950년대 이후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접근을 하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다이앤이 죽은 후 1년 뒤인 1972년 다이앤의 사진은 미국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었고 그해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회고전에는 무려 25만 명이라는 경이적인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다이앤의 생애 오십여 년 동안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하던 때가 있었고, 고통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소녀에서 여자로 또 엄마로서 살아오는 동안 과연 그 무엇이 그녀를 우울 속에 빠뜨렸는지는 다이앤만 알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다이앤이 많은 사람들이 보려하지 않으려는 것들을 찍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내가 나의 눈으로는 절대 보지 못 했을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금지된 것들의 세상에서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는 다이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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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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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그 많은 좋은 상들을 받은 작품들은 제쳐 두고 이 상을 받은 작품을 다 읽게 되었다. 첫 번째 수상작인 미실』은 1억원이라는 상금에 놀란 데다 그 무렵 산샤의 측천무후』를 읽고 있던 중이라 연이어 읽어보면 재미있겠다고 나름대로 생각한 터였다. 결과는 뭐, 미실의 완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이 이 상을 받았다고 해도 더 이상 1억원이라는 돈에 놀라지도 않았고, 읽어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은 사람들마다 지난 해하고는 다르다고 했다. 괜찮은 소설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1년이 가까운 시점이 되어서야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게 되었다. 재미있었다. 비록 불가능해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긴 했지만 독특한 내용과 문체가 호기심을 충족 시켜주었다. 그리고 올해 슬롯』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 번째 작품이 나왔다. 친구들의 리뷰가 온통 아니올시다 일색이다. 당연히 읽을 생각도 안 했다. 리뷰와 관계 없이 당기는 작품도 아니었기에 정말? 하고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며 또 누군가는 세계문학상이 포르노에서 불륜으로 이젠 도박으로 승부를 건다고도 했기에 더더욱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읽게 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한동안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릴 때마다 보이던 '헤어진 여자가 내게 속삭였다. 카지노로 가자!'는 문구처럼, 첫 페이지 첫째 줄에 '이 이야기는 도박과 여자에 관한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도박'과 '여자'에 관한 소설이다. 자신을 버리고, 같은 과 선배와 결혼했지만 이혼한, 헤어진 여자의 어이 없는 제안에 그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고 남자는 ㅇㅇ랜드로 10억을 쓰러 간다. '쿨한' 남자는 헤어진 여자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면서도 조금의 욕구도 느끼지 않고 남매처럼 며칠을 지내면서 돈을 탕진한다. 물론 남자는 여자의 10억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여자들을 만난다.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타입'처럼 느껴지는 소녀인듯한 여성인 윤미, 7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조숙한 명혜, 그리고 명혜 엄마. 그러나 윤미와의 관계를 제외하곤 그들과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도박'이란 매개체로 알게 되는 사람들 일 뿐이다. 10억으로 남자를 찾았던 헤어진 여자도, 그곳에서 만난 다른 여자들도(뭔가 이어질 듯해 보이던 윤미와 마저도) 이곳을 떠나면 모두 잊혀질 것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하늘이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지루함을 견뎌 낼 수가 없다' 결국 도박이란 인생과 같다는 결론으로 끝이 난다.   

 문학상이란 이름을 걸고 나오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검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주제에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웃기지만 말이다. 작가가 나름대로 특이한 소재로 시도했으나 왠지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읽은 듯한 식상한 문체와 살짝 산만한 인용문들. 심사위원들이 장점이라고 하는 가독성마저도 도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인정하기 싫었다. 그럼에도 읽은 것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원로 3인들의 평처럼 작가의 정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부류의 작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이 내려준 것처럼 써 내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를 내고 그만큼이나 독자를 몰입시키는 작가. 첫 작품이 마지막 작품인 둣 멋지게 써내려가서 독자들을 유혹하고선 첫 작품만큼 멋진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작가. 또 한 부류는 상투적인 내용에 노력한 듯 보이나 뭔가가 모자라는 듯한, 그러나 내 놓는 작품들마다 조금씩 변화가 보이고, 노력과 끼가 보이는 작가. 난 신경진이라는 작가가 세 번째 부류의 작가라고 기대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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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늙은 절집 -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
심인보 글 사진 / 지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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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 곱게 늙은 절집.

내 고향에서 가까운 절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고향 사람들에게 피서지로 통했다. 절 안쪽 숲 옆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물은 한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시원하고 조용한 곳이었고, 고등학교 들어가 사귄 남자친구와 첫 데이트라도 할라치면 작은 도시에서 열 걸음마다 부딪히는 친구들을 피해 나무숲 우거진 흙길을 따라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고 도란도란 속삭이듯 이야기 하는 재미가 첫 데이트의 떨림도 없애주었다.


그런 곳이 언젠가부터 유명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계절마다 찾아 왔다. 절 앞 도로가 넓어지고, 절로 들어가는 자가용도 많아지고, 소림사 같은 도저히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의 여름 휴양처는 어느 날 접근금지 푯말과 함께 자연보호라는 명목으로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젠 여름이 와도 우린 그곳으로 수박 들고, 돗자리 들고 쉬러 가지 못한다. 그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그지도 못한다. 돗자리에 누워 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도 볼 수가 없다. 너무, 너무 아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웅전으로 가는 그 길이 흙길 그대로라는 것. 첫 데이트 때 떨리던 마음을 다독여 주던 그 흙길 그대로라는 거다.


『곱게 늙은 절집』을 읽는 동안 고향의 그 절이 참 많이 생각났다. 봄이면 봄꽃들을 보러가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찾아가고, 가을이면 형형색색 멋진 단풍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겨울이면 하얗게 내린 눈을 밟으며 뽀드득 소리 듣는 재미로 찾아가는 곳이 절집이기 때문이다. 그런 곱게 늙은 절집이 내 마음 속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그 장에 딱 알맞은 절집을 소개했다. 내가 가 본 곳도 있고, 이름만 들은 곳도 있고, 처음 들어 본 곳도 있다. 저자의 말처럼 호화로운 여행은 아니지만 저자의 글을 따라 그 절들을 다녀 보면 옛 모습 그대로 곱게 늙어 온 아름다움과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 영화보다 더 솔깃한 이야기들을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다.


제목처럼 ‘곱게 늙은 절’을 이야기 하는 첫째 장은 초라하고 볼 폼이 없어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사람이 좀 찾아온다고 해서 시멘트 길을 만들지 않는다. 불편함이 가득 묻어 나와도 고고한 자태의 옛 모습 그대로 고요와 향기를 가득 머금은 채 천 년의 세월을 지켜오고 있다. 마음이 풍경되는 천 년의 곰삭은 천등산 봉정사,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고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는 봉황산 부석사, 세상의 어떤 위로로도 아물지 않는 아픔을 묻어주는 지리산 화엄사의 구층암.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절은 고색을 지녀야 한다는 편견이 찾아낸 곳들이다.


둘째 장엔 해우소가 나온다. 해우소의 유래는 여러 개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멋진 말, 근심을 푸는 곳이다. 그런 해우소와 같은 절집들이 있다. 세상의 불만과 욕심을 순식간에 잊게 만들어 주는 조계산 선암사, 묵은 근심마저 다정하게 비우게 하는 운달산 김룡사, ‘꽃이 저보다 더 예쁘다면 오늘 밤 꽃을 안고 주무세요.’ 고려 때 문인 이규보의 <절화행>의 한 구절이 멋들어지게 잘 어울리는 상왕산 개심사, 늘 비어 있는 곳이고 늘 가득 찬 곳, 헛것도 받아들이는 산사 월출산 무위사. 아마도 그 절집에선 꼬인 창자를 풀 수 있을 거다.


절집과 그 주변의 풍경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종교를 떠나서 절을 찾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것이 셋째 장 ‘풍경 속의 풍경’이다. 노을 속에 숨어 풍경 소리마저 숨죽이는 노을을 가진 달마산 미황사, 낙동강에 밀려온 구름이 청량산 열두 봉우리에 걸려 산문이 되었다는 봉화 청량사, 바람소리든 빗소리든 가슴으로만 보이는 것들, 전나무 길이 끝나면 단풍나무 길이 이어지는 능가산 내소사. 느닷없이 만나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이 절과 어울려 산이 절이 되고, 절이 산이 되는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마지막 장인 ‘이야기가 그리우면’에서는 절에 얽힌 사연들이 나온다. 영귀산 운주사에서 만나는 석불들은 천 년의 전설을 숨기고 있다.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는 운주사의 비밀은 보여주는 만큼 새로운 비밀을 간직하는 비밀의 사원이다. 기생 매창의 아름다운 시와 사랑을 간직한 능가산 개암사, 많은 이들이 노래하고 가을이면 붉은 꽃 애절하게 피는 절 선운산 선운사. 절마다 간직한 사연들은 우리 마음을 그곳에 널어놓게 한다.              


저자인 심인보는 단순히 절집에 대한 이야기만을 풀어 놓진 않았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람이 훑고 간 자리, 세월이 가져간 단청의 색, 그 속에서 전해지는 전설과 군데군데 어울리는 시구는 저자가 찾아간 절집만큼 아름다운 글과 어울려 멋진 작품을 창조해냈다. 이 봄날에 꽃구경 한번 하지 못한 나는 이 멋진 책으로 나라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곳을 다 찾아가보았다. 곱게 늙은 절집을 찾아가 근심을 풀고,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열며 절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곱게 늙은 절집』,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 사랑」에 나오는 시구 마냥 잘 늙은 절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 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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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 나에게 찾아온 변화의 순간
찰스 데커 지음, 지소철 옮김 / 북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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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어느 순간 변화를 줘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태껏 해 오던 일에 변화를 줌으로써 벌어질 귀찮은 일들과  그 변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생길 일에 대한 우려감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변화를 주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정말 바꾸어도 괜찮은 건가? 하는 불안감이 먼저 생긴다. 아마도 그런 것은 내가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이 주는 편안함과 안일함에서 비롯된 결과인 것 같다.


이 책 『리셋』은 그런 변화에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진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총체적인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방법을 소설로 엮어 변화에 대한 기술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해주며, 나에게 찾아온 변화의 순간을 슬기롭고 보다 창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갖게 한다.

    

리셋』에 나오는 비내추럴(Bee Natural) 주식회사는 작은 양초제조회사이다. 하지만 매각되거나 합병될 운명에 처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차선책으로 양초를 이용한 자연주의 화장품을 개발하여 그 어려움에서 극복해보고자 한다. 그 상황에서 20년이 넘게 근무를 한 관록 있고 명쾌하게 일처리를 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데이너는 그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스럽다. 더구나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을 통보받고 무조건 지지해 줄 것을 요구 받는다. 결국 자신은 퇴물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에 분개하지만 신입사원인 니키의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에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에는 회사라는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인간형을 모두 예로 들었다. 오랜 근무로 인해 매너리즘에 빠져 변화를 두려워하는 데이너, 데이너와 알게 모르게 알력을 겨루고 있는 매트, 갓 입사해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니키,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고자 새로 투입된 신제품 개발 담당인 토드 그리고 인수합병 과정에서 새로운 CEO로 등극한 잔, 이들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순간은 그 과정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대처를 해야만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이 이야기는 저자가 밝혔듯이 실제로 있었던 기업스토리다. 읽다보면 조직의 변화에서 직원들이 어떤 식으로 융화하여야만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데이너라면, 혹은 토드라면, 니키라면 어떤 식으로 그 변화를 받아들였을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마지막에 나오는 ‘리셋을 위한 자기 진단’을 통해 각 캐릭터에 따른 상황을 자신과 맞추어 보며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시해준다.


자기 계발서 따윈 나하곤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나의 자만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뜻에 의한 것이든 제삼자에 의한 것이든 살면서 한번쯤의 변화는 겪게 되는 것이고 그런 변화를 겪게 되었을 때 어떤 방법으로 대처해야 할지를 알려주니 내 삶을 즐겁게 리셋하려면 자기 계발서 따위는, 하는 잘난 척은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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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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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겪는 갈등이 아마도 친구와의 문제일 것이다. 그것도 이성보다는 동성과의 문제일 경우가 대부분인데 내 경우에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여자들만 있는 학교를 다닌 탓에 그런 갈등은 수없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낼 때 겪는 그 속상함, 같이 어울리고 싶은 친구들 집단에 들어가지 못해 겪는 그 외로움 같은 것은 실제로 겪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익히 보아온 터이므로 청소년기에 겪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친구‘라는 사실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그런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소심하고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핼, 매번 자기가 다가가야만 사귀게 되는 친구들, 그런 핼에게 먼저 다가온 배리는 당연히 단짝친구 그 이상이었을 거다. 생명력이 가득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즐겁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알면서 자기 의견까지도 강한 배리는 핼하고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런 배리에게 핼이 호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핼 혼자서는 용기 내지 못했을 일들을 배리는 하였고, 무슨 일이든 척척 알아서 주도한 배리였기에 핼은 그가 원하면 뭐든 다 해줄 준비마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배리가 마법의 콩을 가진 소년처럼 핼에게 다가섰을 때, 핼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본능적으로 그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핼이 생각했듯이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얼굴 생김이나 몸매에 그치는 게 아니고, 심지어 그의 삶의 방식도 다가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것이고, 그게 무언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간사함은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다 비슷한 거다.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다가와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에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그제야 싫증을 내고 지겨워하는 인간.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동성이든 이성이든 아무런 생각 없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배리 역시 그 지겨움을 핼에게 그런 식으로 쏟아버리고 싶진 않았겠지만 항상 일은 그런 식으로 터져버린다.


간접적으로 배리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은 배리 어머니의 냉담함과 죽은 배리의 주검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핼을 더 없이 궁지로 몰아넣는다. 여장을 하고 배리의 주검을 보러 가거나, 배리의 무덤을 파헤치는 행위는 7주라는 기간 동안 자신의 전부였던 친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픔과 그리움으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핼이 결국은 배리의 무덤에서 춤을 추게 되는 것은 그가 배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으로 인해 배리가 죽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핼 나름대로의 치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만약 배리의 어머니의 냉담함이 없었다면 핼 역시 그렇게까지 자책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에이단 체임버스’는 10여 년 동안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경험을 토대로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고 한다. 이 책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도 그 청소년 작품에 속하는데 이 작품 외에 ‘댄스시리즈’로 아직 다섯 편의 작품이 더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에 그가 내보인 문체는 놀랍다. 간결하면서 위트 있는 글은 한참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들의 생각과 고민, 한번쯤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주제에 깊이 빠져 꼬마 철학자 흉내를 내는 그 또래 청소년들의 생각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라는 이름을 두고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길 원하고 ’죽음‘이란 주제에 알 수 없는 민감함을 보이며, 오즈본 선생에게 제출한 작문 ’시간은 지속 된다‘의 내용과 배리와 약속한 ’무덤에서 춤추기‘를 지키려는 그 집착은 그 또래가 아니면 빛을 낼 수 없는 주제들일 것이다. 그 시기의 청소년들의 사랑을 동성애라고 부르기엔 왠지 거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문제를 자연스럽게 끌고 갔기에 에이단 체임버스의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중요한 단 한 가지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해서든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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