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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겪는 갈등이 아마도 친구와의 문제일 것이다. 그것도 이성보다는 동성과의 문제일 경우가 대부분인데 내 경우에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여자들만 있는 학교를 다닌 탓에 그런 갈등은 수없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낼 때 겪는 그 속상함, 같이 어울리고 싶은 친구들 집단에 들어가지 못해 겪는 그 외로움 같은 것은 실제로 겪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익히 보아온 터이므로 청소년기에 겪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친구‘라는 사실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그런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소심하고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핼, 매번 자기가 다가가야만 사귀게 되는 친구들, 그런 핼에게 먼저 다가온 배리는 당연히 단짝친구 그 이상이었을 거다. 생명력이 가득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즐겁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알면서 자기 의견까지도 강한 배리는 핼하고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런 배리에게 핼이 호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핼 혼자서는 용기 내지 못했을 일들을 배리는 하였고, 무슨 일이든 척척 알아서 주도한 배리였기에 핼은 그가 원하면 뭐든 다 해줄 준비마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배리가 마법의 콩을 가진 소년처럼 핼에게 다가섰을 때, 핼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본능적으로 그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핼이 생각했듯이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얼굴 생김이나 몸매에 그치는 게 아니고, 심지어 그의 삶의 방식도 다가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것이고, 그게 무언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간사함은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다 비슷한 거다.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다가와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에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그제야 싫증을 내고 지겨워하는 인간.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동성이든 이성이든 아무런 생각 없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배리 역시 그 지겨움을 핼에게 그런 식으로 쏟아버리고 싶진 않았겠지만 항상 일은 그런 식으로 터져버린다.
간접적으로 배리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은 배리 어머니의 냉담함과 죽은 배리의 주검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핼을 더 없이 궁지로 몰아넣는다. 여장을 하고 배리의 주검을 보러 가거나, 배리의 무덤을 파헤치는 행위는 7주라는 기간 동안 자신의 전부였던 친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픔과 그리움으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핼이 결국은 배리의 무덤에서 춤을 추게 되는 것은 그가 배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으로 인해 배리가 죽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핼 나름대로의 치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만약 배리의 어머니의 냉담함이 없었다면 핼 역시 그렇게까지 자책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에이단 체임버스’는 10여 년 동안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경험을 토대로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고 한다. 이 책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도 그 청소년 작품에 속하는데 이 작품 외에 ‘댄스시리즈’로 아직 다섯 편의 작품이 더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에 그가 내보인 문체는 놀랍다. 간결하면서 위트 있는 글은 한참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들의 생각과 고민, 한번쯤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주제에 깊이 빠져 꼬마 철학자 흉내를 내는 그 또래 청소년들의 생각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라는 이름을 두고 ‘핼‘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길 원하고 ’죽음‘이란 주제에 알 수 없는 민감함을 보이며, 오즈본 선생에게 제출한 작문 ’시간은 지속 된다‘의 내용과 배리와 약속한 ’무덤에서 춤추기‘를 지키려는 그 집착은 그 또래가 아니면 빛을 낼 수 없는 주제들일 것이다. 그 시기의 청소년들의 사랑을 동성애라고 부르기엔 왠지 거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문제를 자연스럽게 끌고 갔기에 에이단 체임버스의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중요한 단 한 가지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해서든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