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아버스 -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
퍼트리샤 보스워스 지음, 김현경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실비아 플라스의 영화를 우연히 보았다. 그녀가 시인인지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한동안 실비아 플라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고 구입하였는데 아직도 읽어보질 못했다. 다이앤 아버스, 애석하게도 난 그녀의 이름도 처음 들어 보았다. 하긴 내가 모르는 유명인들이 어디 한 둘 이겠냐마는 왜 하나같이 멋지고 개성 있는 여자들은 자살을 하는 건지, 아니면 자살을 했기 때문에 그런 개성이 드러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이앤 아버스 역시 씁쓸하다. 실비아 플라스 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1923년 뉴욕의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가 되길 꿈꾸다가 1971년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한 다이앤, 그 사실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더구나 다이앤이 사진가로서 그 당시에 금기시되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것이 아주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쌍둥이나 장애인, 나체주의자, 왜소인, 바보, 난쟁이와 같은 인습을 무시하는 존재들에게 흥분을 느낀 그녀의 ‘공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이 책,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다이앤 아버스』는 3부로 나뉜다. 그녀의 출생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가 1부에 나오고, 남편인 앨런과 함께 패션 사진  작가로서의 다이앤의 이야기를 다룬 ‘패션 사진기’가 2부에, 마지막으로 다이앤의 독창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금지된 것들의 이상한 나라’가 3부에 소개된다. 서문과 인용문을 빼고도 400페이지가 넘는 글이 저자인 퍼트리샤 보스워스가 인터뷰한 200여명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매 페이지마다 소개되는 인터뷰를 보노라면 한 편의 다큐프로를 보는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으로 다큐를 만든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유명한 다이앤 아버스의 작품을 하나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사진은 비밀에 대한 비밀이다. 사진이 더 많이 말할수록 그것을 보는 사람이 아는 것은 더 적어진다.”라고 다이앤이 살아생전에 이야기 했다던가? 그녀의 전기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가족들로 인해 우리는 다이앤의 작품을 볼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다이앤을 볼 수 있으므로 아쉽지만 그걸로 위로를 삼아야 한다.


15살의 나이에 앨런을 만나 18살에 결혼한 다이앤은 평생 배우가 되기를 꿈꾸면서 궁여지책으로 사진을 찍는 앨런에게 사진을 배운다. 결혼 후 그들은 같이 패션지의 사진을 찍지만 수입도 적었고 그다지 열정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일을 선택한 것은 둘이 별거를 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던 그들은 앨런이 낮엔 스튜디오를 하고, 밤엔 연기 선생인 미라 로스토바에게 스튜디오를 내주며 배우 수업을 받을 때도 다이앤은 계속해서 패션지의 사진을 찍었다. 서로에게 거리가 생기고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기임이 확실했는데도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둥글고 어두운 눈에, 똑같이 음울하고 경계심 많은 표정을 띤 쌍둥이’처럼 살았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앤은 그즈음 앨런과 리젯 모델의 가르침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진들을 서서히 찍기 시작했다. 부랑자, 머드 쇼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휴버트 프릭 박물관에서 기형인들의 모습을 찍었다. 다이앤은 매번 새로운 상황에 접근할 때마다 아주 수줍고 겁에 질렸지만 그 두려움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기도 처음엔 어려워했으나 새로운 챔피언이자 멘토인 마빈 이스라엘을 만나 그가 더 큰 도전과 힘든 과제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의 재능을 믿어주고 죽는 날까지 곁에 있어주겠다고 자극과 압력을 가한 덕분에 그런 부탁마저도 쉬워했었다.


1967년 3월 6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뉴 다큐먼트’사진전은 다이앤 인생의 정점이었다. 호평과 혹평이 쏟아짐에도 그녀는 전시관에 매일 나가 사람들의 반응을 엿들었다.  호평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혹평을 하였기에 그 이후 그녀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 ‘뉴 다큐먼트’전이 있은 뒤로 다이앤에게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와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 왔고, 그녀의 작품을 싣게 해 달라고 많은 사진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다가 비바라는 여배우의 사진을 스냅샷으로 찍어 실은 후에 ‘기형인들의 사진가’라는 명성이 더 굳어졌는데 다이앤은 그것이 과장되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으며 크게 낙담하였다. 그즈음 다이앤은 먹고 있던 항우울제의 복용을 중단하고 있었기에 쉽게 짜증을 내고 아주 많이 우울했다.


1971년 7월 26일 다이앤은 그 날 거리에서 마주친 사진가 월트 실버에게 자신이 감기에 거릴 것이며 뉴욕을 떠나 이사할 생각이라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7일 피터 슐레징거와 마빈이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28일이 마빈이 다이앤이 살고 있는 웨스트베스로 건너갔을 때 다이앤은 칼로 손목을 긋고 죽어 있었다. 일기장은 7월 26일자로 펼쳐져 있었고, ‘최후의 만찬’이라고 흘려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다이앤의 초상 사진들은 1963년대 대공황기의사회적인 관심사에 묶여 있던 다큐멘터리 사진이, 1950년대 이후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접근을 하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다이앤이 죽은 후 1년 뒤인 1972년 다이앤의 사진은 미국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었고 그해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회고전에는 무려 25만 명이라는 경이적인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다이앤의 생애 오십여 년 동안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하던 때가 있었고, 고통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소녀에서 여자로 또 엄마로서 살아오는 동안 과연 그 무엇이 그녀를 우울 속에 빠뜨렸는지는 다이앤만 알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다이앤이 많은 사람들이 보려하지 않으려는 것들을 찍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내가 나의 눈으로는 절대 보지 못 했을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금지된 것들의 세상에서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는 다이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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