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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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그 많은 좋은 상들을 받은 작품들은 제쳐 두고 이 상을 받은 작품을 다 읽게 되었다. 첫 번째 수상작인 미실』은 1억원이라는 상금에 놀란 데다 그 무렵 산샤의 측천무후』를 읽고 있던 중이라 연이어 읽어보면 재미있겠다고 나름대로 생각한 터였다. 결과는 뭐, 미실의 완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이 이 상을 받았다고 해도 더 이상 1억원이라는 돈에 놀라지도 않았고, 읽어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은 사람들마다 지난 해하고는 다르다고 했다. 괜찮은 소설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1년이 가까운 시점이 되어서야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게 되었다. 재미있었다. 비록 불가능해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긴 했지만 독특한 내용과 문체가 호기심을 충족 시켜주었다. 그리고 올해 슬롯』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 번째 작품이 나왔다. 친구들의 리뷰가 온통 아니올시다 일색이다. 당연히 읽을 생각도 안 했다. 리뷰와 관계 없이 당기는 작품도 아니었기에 정말? 하고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며 또 누군가는 세계문학상이 포르노에서 불륜으로 이젠 도박으로 승부를 건다고도 했기에 더더욱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읽게 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한동안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릴 때마다 보이던 '헤어진 여자가 내게 속삭였다. 카지노로 가자!'는 문구처럼, 첫 페이지 첫째 줄에 '이 이야기는 도박과 여자에 관한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도박'과 '여자'에 관한 소설이다. 자신을 버리고, 같은 과 선배와 결혼했지만 이혼한, 헤어진 여자의 어이 없는 제안에 그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고 남자는 ㅇㅇ랜드로 10억을 쓰러 간다. '쿨한' 남자는 헤어진 여자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면서도 조금의 욕구도 느끼지 않고 남매처럼 며칠을 지내면서 돈을 탕진한다. 물론 남자는 여자의 10억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여자들을 만난다.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타입'처럼 느껴지는 소녀인듯한 여성인 윤미, 7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조숙한 명혜, 그리고 명혜 엄마. 그러나 윤미와의 관계를 제외하곤 그들과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도박'이란 매개체로 알게 되는 사람들 일 뿐이다. 10억으로 남자를 찾았던 헤어진 여자도, 그곳에서 만난 다른 여자들도(뭔가 이어질 듯해 보이던 윤미와 마저도) 이곳을 떠나면 모두 잊혀질 것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하늘이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지루함을 견뎌 낼 수가 없다' 결국 도박이란 인생과 같다는 결론으로 끝이 난다.   

 문학상이란 이름을 걸고 나오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검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주제에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웃기지만 말이다. 작가가 나름대로 특이한 소재로 시도했으나 왠지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읽은 듯한 식상한 문체와 살짝 산만한 인용문들. 심사위원들이 장점이라고 하는 가독성마저도 도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인정하기 싫었다. 그럼에도 읽은 것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원로 3인들의 평처럼 작가의 정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부류의 작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이 내려준 것처럼 써 내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를 내고 그만큼이나 독자를 몰입시키는 작가. 첫 작품이 마지막 작품인 둣 멋지게 써내려가서 독자들을 유혹하고선 첫 작품만큼 멋진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작가. 또 한 부류는 상투적인 내용에 노력한 듯 보이나 뭔가가 모자라는 듯한, 그러나 내 놓는 작품들마다 조금씩 변화가 보이고, 노력과 끼가 보이는 작가. 난 신경진이라는 작가가 세 번째 부류의 작가라고 기대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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