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엘 다녀왔어. 내년이면 열일곱 살이 되는 큰조카와 한 침대에 누워 불을 끈 채로 밤새 수다를 떨었지. 친구, 학교, 진로, 가족, 요즘의 관심사와 책 이야기 등등 그동안 쌓였던 얘길 나누느라 잠 잘 생각도 안했어. 하, 근데 말이야, 큰조카가 태어나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일곱, 세븐틴이라니! 감개무량하더군.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을까? 내가 열일곱 살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그때의 나는 어땠었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뭘 제일 하고 싶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어. 근데 이만큼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제일 아쉬운 것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는 것이더라고. 아마도 책하고 꽤나 친한(!) 직업을 가진 탓도 있고 주변에 온통 책, 책, 책이야기 하는 친구들밖에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몰라. 책 좋아하는 친구들은 어릴 때 나무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상상력을 키웠다는데… 그런 추억을 얘기할 때마다 할 말이 없는 나는, 어릴 때 나도 책을 열심히 읽었다면 어땠을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지.

 

그래서 만약 지금의 ‘내’가 열일곱 살의 ‘나’에게 책 선물을 한다면, 어떤 책을 할까, 어떤 책이 지금의 나와 또 다른 삶을 살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책 다섯 권, 바로 이 책들이야.

 

열일곱 살의 내게, 열일곱 살이 될 조카에게,

세상의 모든 열일곱 살에게도 선물해주고 싶은 책.

 

그 첫 번째 책은 토머스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야. 열일곱 살에 처음 《테스》를 읽은 친구는 그땐 '무자비할' 정도로 소녀의 편견을 가지고 《테스》를 읽었대.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최근에 《더버빌가의 테스》를 읽으면서 진심으로 테스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 아직은 어린 네가 비극적인 테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지금은 소녀의 마음으로, 나중엔 여인의 마음으로 읽어 보면 사회의 인습과 편협한 가치관이 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다른 느낌으로 알게 될 거야. 또 한 편의 서사시와 같은 문체와 그 당시 농촌 풍경을 묘사한 토머스 하디의 글은 10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도 읽히고 있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어. 고전의 힘이랄까, 그걸 모르고 자랐던 열일곱의 ‘나’에게, 그래서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기도 해.

 

두 번째 책은 한창훈 작가의 《꽃의 나라》야. 이 책엔 열일곱 살의 소년이 나오지. 내가 이 책을 열일곱 살의 ‘나’에게 선물하려는 이유는 부끄러워서야.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군. ‘동시대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어쩜 넌 그렇게 모를 수가 있었냐.’ 고. 그 말이 날 많이 부끄럽게 했어. 열일곱 살의 나와 열일곱 살이던, 그곳의 소년.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한둘은 아니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모른 척하진 않았을까, 생각했어. 어려서라고 말하기도, 몰랐다고 말하기도 미안한 일이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정치적이든 아니든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이 ‘무관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러니 열일곱 살의 너는 꼭 잊지 말기를 바라. 시대의 아픔과 사건들 속으로, 비록 직접 뛰어들어 참여하고 행동하지 못하더라도 관심만이라도 가지길. ‘사실’을 알려고 하는 태도만이라도 유지하며 살길 말이야.

 

세 번째로 선물하고 싶은 이 책은, 어쩌면 열일곱 살의 ‘나’에게 가장 주고 싶은 책일지 모르겠어. 정영 시인의 《지구 반대편 당신》이라는 여행 에세이야. 시인인 저자가 지구 여기저기를 다니며 쓴 글을 모았어. 이 책엔 여행 책이면 으레 나오는 여행지의 정보나 관광지가 나오진 않아.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이 시인의 감성적인 글과 어울려 책을 덮는 순간, 어디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열일곱 살은 꿈꾸기 좋은 나이. 이 책을 읽고 세상의 문을 열고 나갔을 때 경험하게 될, 보석과도 같은 순간을 꿈꿔보길 바라. (사실, 지금의 나는 세상의 문 앞에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제일 아쉽거든.)

 

네 번째 책은 바로 정끝별 시인의 《시심전심》이야. 시는 마음을 읽는 거래. 시를 읽으면 왠지 차분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져. 좀 감상적이 되기도 하고 때론 압축된 짧은 시를 읽으며 가슴 아파하고 세상에 분노하기도 하지. 그동안 시를 어렵게 생각했었어. 아마 마음을 열고 시를 읽은 것이 아니라 공부를 위해 시를 먼저 접했기 때문일 거야. 은유로 가득한 시, 이해는커녕 오히려 시를 가까이하지 못하게 한 요인인 것 같아. 그래서 시인의 말처럼 ‘무엇보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를 정말로 좋아할 수 있도록, 시의 맛과 시의 정신을 느끼면서 풍요롭게 ‘맘껏’ 상상하며 읽어내야 하는 일‘ 인 것 같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열일곱 살 땐 왜 이렇게 ‘친절한‘ 책이 없었을까, 아쉬웠어. 시인이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보다는 마음으로 시를 가까이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러면 훨씬 감성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아, 이제 마지막인가. 이번엔 뜬금없지만 만화를 선물할게. 요시다 아키미의 ‘바다마을 다이어리’ 시리즈 세 권이야.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한낮에 뜬 달》,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이 아름답고 따뜻한 만화는 열일곱 살인 너에게도 그대로 그 마음을 전해줄 거야. 자매가 없는 ‘나’는 분명 부러워하며 읽을 테지만, 네 자매의 평범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지도 몰라. 살아 보니 인생이란 별 게 아니더라고. 뭐든지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더라. 그러니 항상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 난 열일곱 살의 ‘내‘가 공부만 하고 교과서만 읽는 소녀가 아니길 바라니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인성이고 마음이라는 것. 어느 정치인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이렇게 다섯 권의 책을 열일곱 살의 ‘나’에게 선물하면서 곰곰 생각해봤어. 정말 이 책들을 열일곱 살에 읽었으면 지금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았을까? 물론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책은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야. 책이 주는 정보와 지식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지. 열일곱 살의 ‘내’가 들으면 좀 재수 없는 말이지만 나이가 들어 보니 그렇더라. 어른들 말씀, 틀린 게 하나도 없다고. 그러니 책 많이 읽어. 난 세상의 모든 열일곱들이 항상 밝고 맑게 자라주길 바라. 그리고 많은 꿈을 꾸길 바라기도 하고 말이야.

 

그럼 이젠 안녕, 열일곱의 꿈 많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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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16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저 [시심전심]책 샀는데!,
첫부분만 읽었는데 정말 좋은책인거 같아요.
깔끔하게 정리도 잘 되어있구

readersu 2011-12-19 10:48   좋아요 0 | URL
소이진 님 반가워요^^
시를 뒤늦게 좋아하면서 아주 반가워했던 책이었답니다.
공유한 책에 같이 공감하여 넘 좋네요^^
 

 

'티벳 소년' 같은, 심보선 시인이 나온다기에 아무 생각없이 따라간 시 낭독회.

전날 늦게 잠을 자는 바람에 몹시 피곤하여 그냥 가지말까,

하다가 낭독 장소가 회사 근처라 그냥 가기로 함.

친구랑 만나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찾아간 곳. <문지문화원 사이>

8시가, 20분도 더 남았는데 꽉꽉, 메운 독자들. 심보선 시인을 좋아하는 독자들인가? 싶은^^

이날 낭독 시인은 네 명, 김소연, 심보선, 이민하, 유희경.

 

  

아팠다던 김소연 시인은 오늘 퇴원하고 오는 길이랬다.

그래서인지 첫 낭송의 목소리, 아픈 탓에 끝내줬다^^;

이민하 시인은 꽤나 동안이시다. 심보선 시인은 머리 파마했다.

김소연 시인 아파 병원에 있는 동안 문병 안 왔다고 티박(!) 받았다. 해서

마지막 끝내는 말에 심보선 시인이 말하기를,

친구가 하루라도 병원에 입원하면 꼭 병문안을 갑시다!(ㅋㅋ티벳소년, 까칠 ㅎㅎ)

그리고

유희경 시인,


 

 

오늘의 시집이로다. 간만에 만난 시집. 이민하 시인이 읽어준 <해줄 말>이란 시.

낭송을 듣는 순간, 어 좋다! 하니 옆에 앉은 친구가 시들 다 괜찮아요. 한다.

유희경 시인이 말하더군. 닮고 싶은 시인은 심보선과 기형도라고.

낭송회가 끝난 후에 시집을 구입했다. 단돈 5,000원!! 5,000원의 값어치는 크다.

시를 읽으면서 내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결코 편하지 않은 시라고 해도 그렇다.

 

"(…)언제나 그러하듯 슬픔은 완성되지 못한 채 낡아가는 집 같아서

사내는 붉어진 얼굴을 견디고 젖은 어둠이 흘러온다 어둠이 곧 촛불을 끌 것이다

한숨에도 흔들리는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_어떤 연대기

 

"(…)비밀은 비밀이어야 한다고 나는 돌멩이처럼 말했다 내 말이 굴러가는 소리

물이 흔들리는 소리(…)"_深淸

 

"(…)더 갈 수 없는 오늘을 편하게 생각해본 적 없다 손끝으로 당신을 둘러싼 것들만 더듬는다

말을 하기 직전의 입술은 다룰 줄 모르는 악기 같은 것 마주 앉은 당신에게 풀려나간,

돌아오지 않는 고요를 쥐여 주고 싶어서(…)"_내일, 내일

 

"(…)어쩌면 구름은. 그냥 보이는 것이고. 그저 나는 풀썩, 구름 위에 앉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자꾸 풀썩, 풀썩, 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_궤적

 

"(…)기억은 기억이 괴롭힌다 치마 아래 하얗게 일어난 보풀 같은 사람

뜯어낼수록 점점 더 많아지다가 버려지는(…)"_오늘의 바깥

 

이제 겨우 반을 읽었을뿐인데 이 외에도 맘에 들어온 시들이 많다.

내 스탈, 내 취향, 내 감성^^

어제 어떤 남자 분이 심보선 시인에게 그랬다.

아니, 누구이기에 내 마음과 꼭 같은 시를 썼냐고, 그렇게 느낀 사람이 어디 그 남자분 뿐이었겠어.

심보선 시인의 시는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일 걸.

근데 유희경 시인의 시도 좋다. 

 

 

마지막 인사 말에 유희경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서명을 받으실 분은 이쪽으로 나오세요." 푸핫, 친구에게 서명이래, 하며 웃었다.

그래서 시집 사서 서명(!) 받았다.

날 보더니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이런 말은 내가 꽤나 흔한,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라는 건가?

글씨를 하두 작게 쓰길래, 글씨가 참 귀여우세요. 하니

못 써서 그렇단다. ㅋ

 

한동안은 또 유희경 시인의 시집을 읽느라 시간 보내겠다.

 

짬뽕이란 단어는 어떻게 발음해도 슬퍼지지 않는다

단단히 묶인 팔자 매듭처럼 풀리지 않는 숙취는

이토록 웃기다 거진, 습관이란 게 그런 거지만,

물에서 짬뽕 국물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새인지 비행기인지 모를 것이 떠 있는 하늘에서

뭐가 내릴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날엔 내게 없는

아내가 식탁에 앉아 펑펑 쏟는 눈물을 보고 싶다

(…)_맑은 날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짬뽕,

 

진짜, 웃기는 짬뽕일세.

(짬뽕이란 단어는 아무리 써봐도 슬퍼지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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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8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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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8권이다! 무조건 사고 싶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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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었다. 서경식 선생의 《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선생에게 푹 빠진 친구가 언젠가 서경식 선생의 모든 책을 추천해주었음에도 응, 알겠어 하고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만났다. 이번에는 기필코 내가 읽어보고야 말겠어. 하고도 한참을 뜸들이다가 읽었다. 그러니 처음으로 서경식 선생의 책을 읽는 셈이다. 한데 어랏, 시작부터 너무 좋잖아! 음악이 위험하다는 이야길 이렇게 풀어주다니 그만 혹해서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저런 끔찍한 '광란의 장'을 오페라로 만들어서 상연하는 인간, 그것을 감상하며 싫증낼 줄 모르는 인간의 심리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이 뒷부분에 나오는 음악의 정의가 멋지시다. 음악에 빠지는 것은 여자에게 빠지는 것과 같은 것이란다. 오홋!)

원래 책이란 읽다 보면 비슷한 내용을 가진 책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클래식에 대해 나는 문외한. 아는 것이라곤 소품 몇 곡이다. 서경식 선생은 처음 클래식을 들었을 때, 그 음악은 본인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듣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단다. 사실 나도 그랬다. 음악 중에서도 특히 클래식은 취향과 분위기때문인지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나 듣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음악을 이해하며 읽어낼 만한 책도 못 읽었다. 뭘 알아야 읽지. 아,  딱 하나 있긴 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지휘자 금난새의 클래식 관련 책, 서평이벤트가 되어 읽었다. 의외로 쉽고 재미있었다. 그러면 클래식이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이해하겠다는 자세로 읽으면 공감할 수 있는 것? 그걸 서경식 선생이 부추기는 것 같다. 나로서는 다른 분야, 다른 세계를 맛보는 것이니.

  

이런 책을 읽다 보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비슷한 책을 찾게 된다. 마땅히 없으면 관련 책이라도 눈에 띄는데 그 맘을 알기라도 하듯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띄었다(그리고 순간적으로 한번 엮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져서 들여다보게 된다. 클래식을 읽다가 세계음악을 읽는 재미. 좋을지 아닐지 그냥 봐서는 잘 모르겠지. 그래서 일단 챙겼다. 바로 음악칼럼니스트 강민석의 《바람이 속삭이는 너의 이름을》이다.  

오늘 아침, 비가 내려 버스가 엄청 막혔다. 설상가상으로 사고까지 났고 버스는 아무 생각없이 서 있기만 했다. 비가 내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음악만 들으며 아이폰만 만지작거렸다. 그 시간이 엄청 길어지자 드디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지겨워, 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가방을 뒤졌다. 책 한 권이 나왔다. 강민석의 책이다. 그래, 어떤 내용인지 간(!)이나 보자며 펼쳤다. 오홀, 흥미로웠다. 시작은 에디트 피아프. 그녀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안다. 꽤 많은 노래를. 하지만 그녀의 삶에 대해선 자세히 몰랐다. 책은 글이 길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쉽게 읽혔다. 이해도 쉬웠다. 술술 읽히며 맘에 들어오니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들이 들어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결과. 당장 에디트 피아프의 셀력션을 찾았다. 죄다 다운 받아 들었다. 좋았다. 더구나 그녀가 진실로 사랑했다는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을 위해 지은 '사랑의 찬가', 그 노래의 탄생이 이러했다니. 친구에게 말하자 <라비앙 로즈> 못 봤어? 한다. 못 봤는데.. 찾아봐야겠다. 친구 말로는 너무(!) 좋단다. 

 

점심을 먹고 알라딘에 들어왔다. '김중혁 추천, 산문집'이란 글을 봤다. 김중혁이 추천했다고? 그런 문구에는 혹, 해서 잘 넘어간다. 들어가봤더니 어랏, 이것도 음악 관련 책? 《청춘의 사운드》란다. 목차를 보니 검정치마, 황보령, 가을방학 같은 인디 음악가들부터 브라운아이드걸스, 노라조, 샤이니까지 다양한 우리나라 음악이다. 차우진이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저자 소개에 보니 대중음악평론가, 란다. 갑자기 호기심이 확!(근데 왜 '짙은'은 없지?-.-)  

지금 읽고 있는 두 권의 책은 눈으로, 귀로, 날 즐겁게 해준다. 한 꼭지씩 읽으면서 음악을 찾아 듣고 있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좋다. 특히 오늘처럼 흐린 날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차우진의 책 역시 맘에 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음악은 사람들사이에서 공유의 즐거움을 준다. 내가 알고 있는 노래를 상대가 알고 있으면 갑자기 친근감이 생기고 만다. 이 노래 알아? 응, 그 노래 나올 때 나는 어쩌고 하다 보면 서로의 눈이 반짝거려진다. 달라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클래식이든 세계음악이든 또 우리나라 대중 음악이든 간에 '성장과 상실, 그 어디쯤엔가 있을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청춘의 시간을 음악으로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아무튼 다양한 책 세 권이다. 나는 그러하겠지만 기회가 되면 다른 사람들도 읽는 김에 같이 읽어보면 꽤 흥미로울 것 같다(이런 유도, 아무래도 직업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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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12-0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업병 맞습니다! ^^

readersu 2011-12-01 16:22   좋아요 0 | URL
그쵸????
뇌 발달은 잘 될 것 같아요(-.-)
 
열일곱, 364일 블랙 로맨스 클럽
제시카 워먼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간만에 종일 책만 읽었다. 오늘 읽은 책은 <열일곱, 364일>, 선착순으로 받은 신지가토 다이어리가 같이 왔다. 500쪽에 가까운 책. 생각 같아서는 반나절이면 읽지 않을까, 했는데 하루 종일 읽었으니 꽤 시간이 걸렸다. 보통 독서의 습관이 이 책 읽다가 저 책 읽다가 정신없이 다독을 하는 편인데 이 책은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시작하고선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른 책을 잡질 못했다.  

이 책이 끌린 것은 이 홍보 문구 때문이다. 

"넌 아니? 내가 왜 죽었는지……"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오고 가며, 사랑과 삶,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로맨틱 스릴러!" 

과거, 현재, 죽음. 더불어 로맨틱이라니! 각자의 취향이겠지만 이런 소설 참 좋아한다.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왔다갔다하는 이야기. 내가 겪어보지 못한 미래 이야기나 잊고 있었던 과거로의 여행이 주제가 되는 픽션들. 근데 이 소설은 조금 다르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비밀의 문을 통하지 않는다. 죽음이다. 죽음이 중심에 있다. 죽은 후에 되돌아보는 ‘나’의 과거라고나 할까.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는 인생. 그 인생들을 찾아가는 셈이다. 

우선 이 책, "블랙 로맨스"란다. 로맨스 소설이면 로맨스 소설이지 블랙 로맨스는 뭐람? 하다가 뒤쪽의 설명을 읽어보고 알았다. 무슨 뜻인지. 그것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나저나 로맨스 소설을 읽어본 게 언제였나. 정말 오래 전이다. 로맨스 소설이라는 걸 알고 나니 인물들의 배경이나 캐릭터에 대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로맨스 소설하곤 역시 좀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블랙 로맨스”인가? 암튼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은 읽고 나면(재밌게 낄낄거리며 다 읽고 나서 말이지) 에이, 유치해. 했었는데 이 책은 그 유치함은 없다. 미스터리 형식이라서 그럴지도. 그렇다면 매우 흥미로운 로맨스 소설. 블랙로맨스 맞다. 

아무튼 “블랙 로맨스”란, 이런 거란다. 

"로맨스라면 흔히 떠올리는 소재나 플롯 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를 다룬 신선한 소설,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기반으로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
"기존의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깨는 개성 넘치는 작품들로, 시대를 초월한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만을 선정했다. 추리, 호러, 스릴러, SF, 판타지, 역사, 좀비 등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에 로맨스라는 양념이 덧붙여진 종합선물세트" 

다 얘기해버리면 재미없으니까, 책 소개에 나오는 정도의 내용을 말하자면 이렇다. 주인공인 리즈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답게 부잣집 딸이다. 외모 역시 눈부시다. 남자친구도 멋지다. 친구들 역시 죄다 부잣집 아이들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선생조차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 여기까진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의 배경이다. 한데 그런 대단한 소녀 리즈가 열여덟 생일을 앞두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렇다. 로맨스 소설에 ‘죽음’이 등장한다. 물론 로맨스 소설에 죽음이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왠지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멋진 외모를 가진 남녀가 사랑을 하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그런 달콤 쌉싸래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죽어버리다니. 이건 뭐지? 싶다. 근데 '내'가 '나'의 시체를 본다. 헉, 뭐야! 그럼 ‘나’는 죽은 걸까, 살아 있는 걸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깨닫기는커녕 죽었지만 살아있는(!) 리즈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자살을 했는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건지 아무것도 모른다. 황당해하는 리즈. 나라도 어이없겠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은 더욱 아닌 리즈. 그녀 앞에 일 년 전에 뺑소니에 치어 죽은 소년 알렉스가 나타나면서. 얜 또 뭐지?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동네에 살지만 그 둘 사이에는 전혀 친분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삶이 달랐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잣집 딸.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왕따까지 당하는 알렉스. 그는 왜 리즈 앞에 나타난 걸까. 알렉스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 둘이 죽어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리즈 스스로 그걸 찾아야 한단다. 기억나지 않는 과거. 죽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알렉스는 리즈의 과거와 현재에 동행한다. 그리고 그 둘의 연관성과 과거의 기억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기억을 찾으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좀 놀랍다. 소설에서 리즈는 말한다.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게, 죽음은 먼 세상의 이야기다. 다들 알다시피, 십 대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에 대해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우리 엄마를 데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소녀들은 그런 것을 잊지 않는다."고. 알고 보니 리즈는 상처투성이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열일곱, 364일》의 주인공은 고등학생이다. 물론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생활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십 대는 통한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나온다. 왕따와 흡연, 음주. 아직까지 마약을 다루는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없겠지만 좀 더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마약 판매상도 가능한 일인가 보다. 또 그런 고등학생들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부모의 불륜과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까지,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는 십 대의 이야기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제 삼자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누구나 '나'였을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제 삼자가 되어 '나'를 바라볼 때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삶, 어이없는 행동들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제 삼자가 되어 그때의 ‘나‘를 바라보니 말도 안 된다. ’내‘가 저런 아이였단 말인가? 정말?! 이 소재는 매력적이다. 나도 어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 삼자가 되어 나의 행동을 바라보고 싶다. 잘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나도 죽으면 나를 볼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한데 죽고 나면 뭔 소용일까. 그럼에도 돌아보며 후회하고 용서를 비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몰라. 미신적이지만 귀신으로 살지 말고 편히 쉬라는 의미. 어랏, 너무 깊게 들어갔나;; 

아, 그리고 어린 녀석의 순정이 대단하더라(-.-). 첨엔 그럴 리가, 했는데 역시 로맨스 소설이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이 정도는 되어야만 사랑이고 로맨스다. 

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도 놓치지 않는다. 중간 중간 나오는 부자 부모님을 둔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 읽는 책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기본이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스콧 피쳐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책을 덮고 떠오른 또 하나, 세상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 잘 나가든 아니든 남들이 나를 우습게보든 말든. 내가 중심이었을 때는 모든 행동들이 다 이해되니까. 그래서 아무리 아니꼬운 부잣집패거리들이라도 알고 보면 다 '좋은' 친구들이라고 리즈는 변명한다. 왕따를 시키거나 마약을 팔거나 음주에 흡연을 하더라도 말이지. 내 중심에서는 그렇다는 거지.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단 맘에 들지 않는 한 가지, 인생이 구만리 같은 아이들을, 아무리 소설이라도 죽여 버리는 것, 난 왜 이런 게 싫지. 더군다나 결론을 보자면 죽음도 끔찍한데 죽임이라니. 그럼에도 좀 자극적이긴 하지만 《트와일라잇》 좋아하는 울 조카, 좋아할 것 같다. 넘겨줘야겠어! 소설이잖아. 그것도 블랙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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