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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 되풀이되는 연구 부정과 '자기검증'이라는 환상
니콜라스 웨이드.윌리엄 브로드 지음, 김동광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2월
평점 :
오늘 저녁에 우연히 뉴스를 보다가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원작을 표절, 번역한 책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아침에 이 책을 다 읽고 저녁에 리뷰를 쓰야지 하고 있었는데 타 출판사에서 과학계의 논문 표절 기만행위를 비판한 책을 내면서 그것도 논문 표절로 유명한 엘리아스 알사브티의 내용 부분을 표절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더구나 그 책은 신학기 대학교재로 채택이 되어 팔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저명한 교수님들은 책을 번역, 인용하시면서 원작의 출처조차 확인하지 않으시고 버젓이 저자로 이름까지 내거셨다니 그 책을 교재로 공부를 할 대학생들은 과연 무얼 배울 것인가? 걱정이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은 1982년에 나온 원작을 10년 전에 번역 출간했다가 올해 다시 재출간한 것이다. 아마도 작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사태 이후 과학의 기만 행위를 비판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명예와 출세를 위하여 논문을 표절하고(엘리아스 알사브티), 데이터를 조작하며(뉴턴), 유전자를 조작하여 후세의 원예학자들이 '지구상의 완두콩(Pease on earth)'이라는 재미난 논평을 전문 저널에 실리게 하기도 했다(멘델). 또 자기 기만에 빠져 사기를 치고(르네 블롱로 등), 제자의 연구가 지도교수의 이름으로 발표되면서 과학 엘리트층의 권력 구조를 보여주기도 한다(앤터니 휴이시 등).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논문 표절이었다. 특히 자신의 출세를 위해 다른 과학자들의 논문을 표절하거나 훔쳐서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는 잡지만 골라 자신의 논문인 양 발표를 한 엘리아스 알사브티는 훔친 논문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는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쉽게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경우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 당시로선 알아낼 방법도 쉽지 않았으며 훔친 논문이라는 것이 탄로가 나서 해임을 당해도 그 뿐이었다. 그러니 알사브티 같은 사람이 똑같은 방법으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과학자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러한 과학적 기만 행위를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료 평가 제도peer review'나 '심사위원 제도tlarefereesystem' '재연replication'과 같은 자기 규찰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만 행위는 이 방법들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 정도쯤은 과학자가 조금만 조심하면 아무일 없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사브티 같은 사이비 과학자가 존재하기도 하는 거다.
역사 속의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을 취미로 시작했다. 갈릴레오나 다윈, 멘델 같은 과학자들은 과학적 추론 이외에는 경제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연구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20세기의 과학 발전은 취미가 아니라 전문직이다. 그로 인해 실험 도구를 구입하고 기술자를 고용하는 모든 것들은 재정과 관련이 있었고 연구비가 없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 과정에서 장기적인 연구보다는 단기적인 성공을 하여 연구비라도 충당하려면 데이터를 조작해야 하고, 표절도 해야하며, 우리가 기만 행위라고 일컫는 일을 해야 좀더 편안하게 연구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발전에 힘쓸 수 있는 거다.
작년에 세계적으로 떠들썩했던 황우석 사건. 솔직히 난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잘했니 못했니 나라가 흔들흔들할 정도로 말이 많았어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관심을 가지고 갑이니 을이니 해봐야 진실은 황우석 본인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말했듯이 과학자가 자기 기만에 빠져 데이터를 조작하고 부정을 숨기며 거짓에 거짓을 반복한다면 평범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넘어갈 수밖에는 없다. 따진다고 해봐야 뭘 더 알 수 있겠는가. 엘리트주의가 난무하고 표절인 것을 알면서도 대학의 체면 때문에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러니 죽어라 고생하면서도 기라성 같은 선배 과학자들 이름 옆에 겨우 들러리처럼 자신의 이름이나 적을 수 있는 젊은 과학자들은 아무런 지적 보상도 받지 못하는 연구를 강요 당하게 되면 자시도 모르게 편법과 데이터 조작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다. 오로지 결과를 위해서 말이다.
그런만큼 이러한 과학의 기만 행위는 과학자들 스스로 '누구'를 위해 연구하고 또 무엇'을 위해 연구하는 것인가를 제대로 깨닫고 그 행위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또 동료 과학자가 논문을 발표하면 최소한 심사와 재연을 하여 어떠한 부정이 밝혀졌을 때, 숨기지만 말고 공개하여 일차적인 반응이 부정한 과학자가 아니라 공개한 사람들이 비난받더라도 그 동료 과학자가 잘못을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과학자라고 불리며 존경받고 있는 그들을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 모든 방법이 실패하였다면 '과학의 궁극적인 수문장은 동료 평가나 심사 제도, 재연 같은 보편주의가 아니라 모든 쓸모없는 과학을 걷어차 낼 보이지 않는 장화boot와 시간이야말로 과학을 지키는 진정한 수문장' 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그 메커니즘이 발동하려면 십 년, 백 년, 천 년이상이 걸리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