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ㅣ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읽은 책 중에 우리의 기억이 진짜인지 의문을 가지게 했던 책이 있었다. 그 책의 내용은 지극히 일방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기억’이라는 것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렸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 책 <바시르와 왈츠를>에서도 언급되지만 인간의 기억은 신기해서 과거에 경험했던 충격적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끌려간 전쟁에서 겪었던 끔찍한 일들이나 어릴 때 받았던 충격적인 장면들이 어느 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고선 어느 날 갑자기 반짝!하며 떠오른다.
이 책 <바시르와 왈츠를>도 친구로부터 ‘너도 그 근처에 있었잖아!’ 라는 얘길 듣고서야 20년 만에 처음으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남자는 왜 그 기억을 잊었었던 것일까? 왜 20년이 지나도록 그는 단 한번도 그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1982년 이스라엘 방위군은 베이루트를 접수하고 진입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이 시기에 레바논 주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의 퇴로를 확보하는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사실, 난 그때 레바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책을 보기 전에 영화로 먼저 <바시르와 왈츠를>을 만났었는데 그때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갔었던 셈이다. 또 충격적이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도 도무지 이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학살당한 사람이나 학살을 한 사람이나 똑같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헷갈리는 부분을 같이 본 사람에게 듣고서도 알듯 말듯 했는데 이 책 앞머리에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이라는 작품배경을 읽고서야 마침내 제대로 이해를 했다.
우리나라 역시 같은 동족끼리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전쟁을 겪었던 나라이다. 그 배경에는 강대국들의 저울질이 있었듯이 레바논 역시 그랬다. 당시 베이루트를 점령한 샤론은 계획을 바꿔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를 지원하며 바시르 제마엘을 대통령으로 앉힐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취임 9일을 앞두고 바시르는 살해당한다. 그로인해 기독교 민병대는 열이 받을 대로 받아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얼 잘못했다는 건가? 학살을 저지른 사람은 이스라엘이 아니고 팔랑헤당인 기독교 민병대였는데… 그렇다. 이스라엘은 방조자이다. 베이루트를 장악하고 난민촌 부근을 탱크로 둘러 싸 놓고선 그 밤에 아무 이유 없이 조명탄을 쏘아대었다. 기독교 민병대원들이 학살을 위해 난민촌 안으로 들어간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므로 나쁜 것은 학살을 한 사람이 아니라 막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와주기는커녕 모른 척 눈을 돌린 이스라엘 측인 것이다.
난 전쟁을 반대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분쟁과 내전들도 혐오한다. 하지만 그 옛날부터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세분화되어 벌어지는 전쟁들을 보면서 도대체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크기에 끝이 없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라가 다르면 어떻고, 종족이 다르면 어떤가? 종교가 다르면 어떻고 피부색이 다르면 또 어떠하단 말인가?
정보도 없이 찾아간 영화에선 마지막 장면의 참혹함을 잊을 수 없었다. 그 느낌을 책에서도 받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영화보다 짧은 컷임에도 그 참혹함은 그대로 전해졌다. 마침내 과거의 충격적인 기억을 되찾게 되는 그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던 그 영상, 정말 끔찍했다. 나라도 잊고 말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