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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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타 미쓰요의 『프레젠트』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담백하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 담백함을 느끼며 읽었다. 일본의 현대 소설은 항상 두 가지의 부류의 이야기인 것 같다. 장르 아니면 담백한 소설(좀 가볍다는 말이 맞을까?) 그래서 잘 안 읽는데도 워낙 많은 일본 소설들이 존재하니 읽어보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책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다룬 소품집이다. 모두 9편 이야기의 공통점은 책이다. 헌책방에 팔아버린 책을 다른 나라의 여행지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하고(「여행하는 책」:이런 놀라운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그녀처럼 다시 되팔 수 있을까? 절대로 팔지 않을까?) 동거하던 남자와 헤어지며 공유하던 책꽂이에서 책을 빼내면서 이토록 비슷한 취향을 가진 그와 어찌하여 헤어지게 되는 건지 자신의 일부를 떼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그와 나의 책장」: 앤 페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가 생각났는데 이 경우는 '서재 이혼시키기'라고나 할까? 풋!) 문학상에 공모하여 상을 탄 후 어린 시절 동네 책방에서 훔쳤던 책을 기억하며 찾아가던 그 책방의 할머니(「미쓰자와 서점」:나도 조금 먼 과거에 책을 훔친(!) 기억이 있는지라 꽤 공감이 갔었다지) 그리고 첫 밸렌타인 데이에 책을 선물하려 했다가 업떨결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받고 선물주기가 부끄러웠던 첫 사랑의 기억(「첫 밸런타인 데이」: 초콜릿보다 책이 더더 멋진 걸 가쿠타 미쓰요도 알고 있었구나!) 등등 책을 좋아하는 입장이고 보니 책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하나 같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책으로 맺은 인연, 책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 책과 얽힌 사연들 등등 책이 주는 각양각색의 사건들을 가쿠타 마쓰요는 그녀다운 담백한 문체로 잘 풀어냈다.  

대체로 일본 작가들이 풀어내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은 감동을 주진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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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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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사람의 한국 작가를 알았다. 그를 두고 '바다와 섬의 작가'라고 한다. 표지를 보니 바다 내음이 풀풀 난다. 어쩐지 저 남해바다가 생각났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린 『나는 여기가 좋다』는 바다와 섬과 그에 어울리는 사투리와 바다에서 생계를 조달하는 섬사람들의 힘든 현실이 남의 일 같으면서도 짠하게 마음을 울린다. 또한 작가의 개성과 입담이 한껏 어울어져 한창훈이라는 작가의 문체에 빠져들게 한다.  

천상 '뱃놈'인 남편에게 이제는! 육지로 나가겠다고 선언한 아내, 그런 아내를 데리고 마지막 유람(!)을 하는 남편, 지긋지긋한 바다가 싫고 빚으로 가득한 어부의 길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도 싫다는 아내를 보며 이젠 생계수단도 되지 못하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배가 어쩐지 자신의 현재 모습 같아 회한에 젖는 표제작「나는 여기가 좋다」, 처가에서 돈 빌려 양식업을 시작하지만 갑자기 죽어나가는 참우럭들을 보며 어쩌지 못하다가 동네 어르신들의 유람여행에 핑계삼아 따라 나선 청년회장의 고난(!)은 그야말로 한편의 시트콤이었다.(「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  

또 한때 알았던 남자로 인해 빚이 이천만 원이나 진 채로 섬으로 팔려온 미정에게 결혼하자며 조르는 섬 사내 용철과 얼떨결에 결혼을 하게 되는 해프닝을 다룬 「올 라인 네코」는 한창훈 작가의 문체에 바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파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노파에게도 순정이 있음을 말해주고, 자살하러 온 여자와 배를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어 결국은 폐선시키는 선장의 씁쓸한 이야기를 다룬 「섬에서 자전거 타기」에서는 삶도 죽음도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작가가 사 년 만에 낸 소설집이라고 한다. 더구나 다섯 번째로 내 놓는 작품이란다. 이제야 겨우 만난 작품이지만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힘겹고 무거운 삶 속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서민들의 진솔한 삶을 보여준다. 그래서 읽다보면 세상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가지게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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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을 죽였을까 - 이시백 연작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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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을 읽고 너무나 재미있었을 땐 꼭 한번씩 판매지수를 살피게 된다. 그러고선 혼자 놀라워한다. 거의 대부분이 그다지 높지 않은 점수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런 책은 안 읽는 것일까? 혼자 안타까워하고 친구들이라도 얼른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 『누가 말을 죽였을까』도 그런 책 중에 하나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나조차도 모르는 작가라는 편견으로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책이다.  시간이 나면 읽어야지 하고선 매번 뒷쪽으로 밀어둔 책이었다. 먼저 읽은 친구가 정말 재미있고 훌륭한 책이라고 했을 때도  재미있나보다 했다. 한데 어느 날 무심코 몇 장  넘기다가 그 재미에 빠지고 말았는데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골 사람들의 생활상에 웃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 짠하기도 하며 어이없기도 하여 정신없이 읽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이 걸죽한 충청도 사투리인지라 고향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사투리를 읽는다는 것만으로 고향을 떠올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줄곧 고향에 있는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의 대화를 생생하게 듣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또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대처하는 어르신(!)들의 행동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현실적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내가 농촌의 현실을 다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고향에 내려가면 듣게 되는 아버지의 일상이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농촌이나 도시를 떠나서 우리 아버지나 엄마 연세가 되는 분들의 생활상 그대로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정겹고,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빈틈없이 잘 짜여진 연작들을 읽으며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도 같은데 그건 여느 작가들과 다르게 그가 이야기로 글을 풀어내기 때문인 것 같다. <전원일기>의 한 회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여기에 이렇게 끝나버린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튼 아직도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은 독자를 웃기고 울리는 작가의 충청도 사투리 속으로 빠져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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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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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선옥 작가를 두고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웃들에 관심이 많은 작가라고 한다. 『명랑한 밤길』만 빼고 공선옥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보질 않아 나는 정확하게 판단할 순 없지만 이 책만 보면 그런 얘기들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 모두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 같이 씩씩한 아이들이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 같은 착한 마음만 가진다면 이 세상이 너무나 따뜻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편 들 중에 유독 내 맘에 든 작품은 「라면은 멋있다」이다. 어려운 집안 환경이면서도 아닌 척 터프(!)하게 행동하는 민수, 여자 친구에게 코트를 선물하기 위해 알바를 하는 민수도 멋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해준 연주도 멋있고 그래서인지 제목 또한 멋있다.  또 연작으로 나온 「힘센 봉숭아」에서 내리는 민수의 결론은 더욱 멋있는 것 같다. 

'진짜배기 청소년소설'이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이 소설집은 부모가 뒷바라지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나 뭐든지 제 맘대로인 이기적인 아이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살고 있는 그런 아이들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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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강미경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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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작은 문고판에서 읽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특히  「검은 고양이」를 처음 읽었을 때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었다는 걸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의 나는 추리나 공포 소설에 관심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검은 고양이』는 일러스트가 더해져 그 공포가 배가 되었다. 텍스트를 읽으며 그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도 굉장한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섬뜩한 이미지와 함께 글을 읽으면 그 이미지는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약간의 밀실 공포증이 있는데 그게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사실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며 왠지 그게 에드거 앨런 포의 책을 읽고난 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고양이」의 공포스러움은 차치하고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저승과 진자」와 「때 이른 매장」에서 나도 모르게 오싹해지고 숨을 쉴 수가 없는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검은 고양이」의 비극적인 결말과는 다르게 이 두 편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임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내가 정말 밀실엔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현실도 아닌 소설을 읽고도 말이다. 

세 단편이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므로 새삼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뒷표지에 나오는 각 단편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가 모두 말해준다. "인간의 비이성적인 광기와 분노를 그린" 「검은 고양이」, "죽음의 고통보다 더한, 서서히 죽음을 '맛보는 고통'"「저승과 진자」, "산 채로 매장당한 자의 생생한 경험담"「때 이른 매장」 세월이 흘러도 백 번 천 번을 읽어도 포의 소설은 언제라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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