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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또 한 사람의 한국 작가를 알았다. 그를 두고 '바다와 섬의 작가'라고 한다. 표지를 보니 바다 내음이 풀풀 난다. 어쩐지 저 남해바다가 생각났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린 『나는 여기가 좋다』는 바다와 섬과 그에 어울리는 사투리와 바다에서 생계를 조달하는 섬사람들의 힘든 현실이 남의 일 같으면서도 짠하게 마음을 울린다. 또한 작가의 개성과 입담이 한껏 어울어져 한창훈이라는 작가의 문체에 빠져들게 한다.
천상 '뱃놈'인 남편에게 이제는! 육지로 나가겠다고 선언한 아내, 그런 아내를 데리고 마지막 유람(!)을 하는 남편, 지긋지긋한 바다가 싫고 빚으로 가득한 어부의 길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도 싫다는 아내를 보며 이젠 생계수단도 되지 못하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배가 어쩐지 자신의 현재 모습 같아 회한에 젖는 표제작「나는 여기가 좋다」, 처가에서 돈 빌려 양식업을 시작하지만 갑자기 죽어나가는 참우럭들을 보며 어쩌지 못하다가 동네 어르신들의 유람여행에 핑계삼아 따라 나선 청년회장의 고난(!)은 그야말로 한편의 시트콤이었다.(「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
또 한때 알았던 남자로 인해 빚이 이천만 원이나 진 채로 섬으로 팔려온 미정에게 결혼하자며 조르는 섬 사내 용철과 얼떨결에 결혼을 하게 되는 해프닝을 다룬 「올 라인 네코」는 한창훈 작가의 문체에 바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파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노파에게도 순정이 있음을 말해주고, 자살하러 온 여자와 배를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어 결국은 폐선시키는 선장의 씁쓸한 이야기를 다룬 「섬에서 자전거 타기」에서는 삶도 죽음도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작가가 사 년 만에 낸 소설집이라고 한다. 더구나 다섯 번째로 내 놓는 작품이란다. 이제야 겨우 만난 작품이지만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힘겹고 무거운 삶 속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서민들의 진솔한 삶을 보여준다. 그래서 읽다보면 세상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가지게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