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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도 분명하게 자기의 자리를 가늠한 김훈이 지난 수년간 여러 매체에 기고해온 시론을 묶어 놓은 것이다.
오랜 언론인 생활에서 얻은 직관과 명석한 판단력, 그리고 흔들림없는 지성의 사유는 김훈 산문의 본령을 차지한다.
그의 문장은 단호하면서도 온유적이고, 시적이면서도 논리적이며, 비약적이면서도 검박하다.
삶의 안과 밖을 두루 아우른 산문의 휘황함이 거기 있다.
이 책은 단순하게 사물이나 사건을 직시하지 않고 작가 특유의 세상을 보는 눈이 독자로 하여금 감탄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섬세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제시해준다.
예를 들면
l 광어와 도다리를 비교하는 방법은 광어는 이빨이 있고, 도다리는 이빨이 없다는 것. 자연산 생선은 수족관에 넣으면 금방 다 죽는다. 견디지 못한다. 과연 활어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l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발길과 발길로 이어지는 공의 행로가 기호화되지 않고 축구공은 끝끝내 인간의 질감으로 굴러간다는 것. 공의 속도는 인간의 정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의 한계를 넘지 않아서이다.
축구는 인간이 기어코 땅에 붙어서 땅위를 달리며 발로 차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l 개그우먼 이영자는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기에 저 지경이 되어서 쳐박혀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영자는 기자회견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 여자는 이 나라의 언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그만두라고 하신다면 그만 두겠습니다.” 나는 경악했다. 여자의 몸을 이처럼 사회 전체의 노리개로 삼아도 되는 것인가? 나는 이영자에게 쏟아지는 이 사회의 도덕적 분노가 두렵다.
l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사내의 한생애는 돈을 벌어 오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l 아름다운 조국의 산천은 무인지경이 되어간다. 빈마을에서 빈마을로 이어지는 길위에는 인기척이 없다. 얼마후에 버려진 마을에는 러브호텔과 갈비 구워먹는 가든이 들어설 것이다.
l 남자가 남성성만으로 온전할 수 없듯이 여자들도 여성성만으로 온전할 수 없다. 남자에게도 여성성이 있고 여자에게도 남성성이 있게 마련이다.
l 해마다 3만명의 딸아이들이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낙태되고 있다. 이나라는 살해당한 딸들의 지옥이다. 딸들은 살아서도 죽어간다. 딸들이 딸을 죽이기 위해서 몸을 벌리고, 이 딸들의 지옥속에서 왕관을 쓴 딸(미인대회 수상자) 들은 아름답게 웃고 있고….
작가의 글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시선이 서로 공존되어 있다.
사물을 보는 능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 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냥 글이나 사건 그 자체에만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단지 고소하다, 슬프다, 안됐다, 그래 맞아 등 단선적인 사고만 한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