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좀비의 시간 - 이경석 만화 ㅣ 팝툰 컬렉션 6
이경석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좀비에 물리고 난 다음 더 행복해진것 같아요 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대학 졸업후 백수로 지내는 주인공 준수는 오랜만에 간 가족여행에서 갑자기 좀비에 물린다. 좀비에 물린뒤 무료하게 살아가던 일상에 대한 시선이 바뀌고 친구를 만나고, 연인과 사랑을 하고, 가족의 사랑을 깨닫는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뽀글이 머리 태권도 관장과 친구가 되고, 은행에서 일하던 애 딸린 이혼녀와 결혼을 하고 동시에 아들도 생긴다. 그렇게 준수는 좀비에 물리고 난 다음 더 행복해진다. 그러나 마냥 해피 스토리는 아니고 형사반장으로 좀비 소탕 작전을 맡은 아버지와의 갈등이 이야기의 반대축을 담당해 긴장감을 준다. 좀비 소탕 작전은 군사정권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나섰던 학생들이 숨어지내는걸 찾아내 고문했던 것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유치할수 있는 좀비 스토리에 진지함을 불어 넣는 역할도 하고 있다.
처음에 이경석이 좀비 만화를 그렸다고 해서 과연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했는데 자신의 스타일을 잘 살린 작품을 내 놓았다. 요즘 그리고 있는 전원일기나 을식이는 재수없어에서 알수 있듯이 촌스럽고 토속적인 한국 스타일의 스토리와 그림체를 보여주는 작가인데 지극히 서양적인 소재 좀비를 가지고도 한국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준수가 완전한 좀비가 되서 사지가 떨어져 나가자 아내가 몸통에 꼬매주는 부분에선 정말 웃음과 눈물이 같이 나오게 만들었다.
이야기 전개가 전체적으로 비약이 심하지만 만화를 보는 재미를 해치지 않는 선을 유지하고는 있다. 정치적인 색깔이 있는 한겨레 Esc 섹션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라 그런지 촛불 시위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에서 이야기가 절정을 이룬다. 광화문 사거리에 운집한 좀비를 군인과 경찰이 총으로 쏘아 죽이는 장면이 그것이다.
지난 6월 광화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시민을 향해 공권력은 살수차를 앞세웠고,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다. 무고한 시민을 붙잡아가기도 했다.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일부 인터넷 논객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들을 ‘촛불 좀비’라고 깎아내렸는데 만화에선 정말 좀비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 나라에서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는것 같다.
이경석 만화의 제일 큰 특징인 수작업 원고가 여전한데 예전 인터뷰에선 5년된 물감으로 작업을 한다고 했는데 약간 바랜듯한 색깔이 여전히 그런 물감을 쓰는건가 싶게 만든다. 옛날 만화에서나 볼수 있는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쓴 손글씨 대사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속주패왕전에 이어 두번째로 구입한 이경석의 단행본이었는데 꾸준한 모습이 보기 좋다. 정말 먹고 살기 힘들것 같은 만화를 그리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경석의 다음 단행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