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지는 않지만 재미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 - 나의 식인 룸메이트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2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무섭지는 않지만 재미있다.

『나의 식인 룸메이트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를 다 읽고 난 감상이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를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어서 3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2편보다 마음에 든 작품이 많아서 좋았다. 이 단편선의 장점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공포를 만날수 있다는 점인데 그에 비해 각각의 작품이 완결된 재미가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엔 대부분 이야기가 잘 짜여진데다 소재도 여전히 다양해서 마음에 들었다. 이 단편집에서 영화화 계약이 되는 작품이 간간히 나와서 이번엔 어떤 작품이 영화화 될만한가 꼽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의 식인 룸메이트 - 어느 날 괴인이 방에 찾아와 삼 일 후 나를 잡아먹겠다고 예고한다. 잔머리를 굴려 다른 먹잇감을 대신 데려오겠다고 제안하고, 약속에 따라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회사 동료들을 하나둘 집으로 끌어들인다는 이야기인데 미국 공포영화에서 자주 보던 식인 괴물이야기지만 국내 작품에선 보기 드물던 작품이라 신선했다. 주인공의 망상으로 허무하게 끝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노랗게 물든 기억 - 개인적으로 엘리베이터에 대한 공포가 있는데다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서 이 두가지가 작품에 사용되어서 가장 감정 이입이 된 작품이다. 어린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같이 하교 하던 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친구의 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죽은 아들을 마냥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날 집으로 주인공을 초대해 끔찍한 일을 벌인다. 어린이 교통사고가 많은 한국이라 정말 이런 사건이 일어날 법해서 무서웠다.

공포인자 - 사람의 마음에 숨어 있는 공포를 극한으로 끌어내는 기이한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다. 처음에는 감기 기운만 보이지만, 감기가 끝나면 평소 잠재되어 있던 공포가 환각으로 나타나 정신을 파멸로 몰고간다. 주인공의 가족도 한명씩 이 질병에 감염되어 고통받는데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질병의 설정은 흥미로웠는데 무서운 부분도 없고 극복과정도 좀 심심해서 아쉬웠다.  

담쟁이 집 - 담쟁이 넝굴로 뒤덮인 집에 몰래 언니와 들어간 나. 하지만 그날 이후로 언니가 점차 이상하게 변해간다. 그러곤 내게 함께 담쟁이 집에 가자고 꼬득인다. 그런데 왠지 그곳엔 가기 싫다. 언니의 이상행동이 심해지자 담쟁이 집에 찾아가는데 이상한 여자를 만난다. 헨젤과 그레텔 풍의 이야기인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점은 좋지만 여러모로 식상한 이야기였다. 

스트레스 해소법 - 고객들의 클레임 때문에 심한 두통에 시달리던 나. 게다가 직장 상사나 동료 모두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들이다. 직장 동료가 마음 속의 목소리에 따라 당구를 쳤더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마음 속에 스트레스 상대를 죽이라던 목소리를 따르게 된다. 직장인들이 읽으면 정말 시원할 정도로 화끈한 작품이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잘되서 너무 허무하게 당하는 결말이 조금 아쉬웠는데 납득할만한 결말이긴 하다.  

붉은 비 - 갑자기 도심에 내리기 시작한 붉은 비. 비를 맞은 동물들은 모두 죽어버린다. 그러나 한가롭던 도시에 죽었던 비둘기와 쥐들이 살아나서 사람을 공격하면서부터 대혼란이 일어난다. 헐리우드 좀비영화를 보는듯한 전개가 흥겹다. 작품중에 히치콕의 새를 언급할 정도로 영화에서 따온 설정이 많이 보이는데 배경만 한국으로 바꾼것처럼 느껴진다. 열린 결말인데 이야기만 키우다가 끝나버려서 좀 허무한 감이 든다. 

선잠 - 대형 교통사고로 연인을 잃은 나. 하지만 병원 의사, 친구, 심지어는 부모조차도 죽은 연인을 기억하지 못한다. 연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데 수상한 남자가 찾아온다. 반전을 노린 작품인데 무섭지도 않고 반전도 인상적이지 않아 아쉬웠다.

은혜 - 갑자기 결혼할 사람이라며 은혜라는 여자를 데려온 형.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거동도 쉽지 않은 아버지의 병수발을 도맡아 한다며 나타난 천사 같은 그녀. 하지만 어딘가 의심스러운 구석에 마음이 편치 않다. 올가미라는 영화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거기선 시어머니가 괴물이지만 여긴 며느라가 괴물이다. 귀신도 초자연현상도 등장하지 않은 현실적인 이야기라 마지막에 나온 신문기사가 신경쓰여 검색해 봤더니 실제 신문기사였다. 이 단편선 중에 가장 끔찍하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특히 밤마다 술에 취한 남편의 눈을 찌르고 아파하면 달래다가 다시 찌른다는 부분이 가장 끔찍했다. 

얼음 폭풍 - 남편만 믿고 따라온 미국 이민 생활. 그러나 남편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가진 돈을 모두 카지노에서 잃었어.". 그리고 행방불명된 남편. 도시는 눈폭풍으로 재난 상황이고, 딸아이는 학교에 홀로 남아있다. 미국 이민에 대한 환상이 있는 나에겐 가장 끔찍하고 최악의 상황을 보여줘서 흥미로웠다. 저자가 미국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 아직도 이렇게 인종차별이 심한가 싶어 우울하게 만든다. 

불 -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그 녀석. 우연한 기회에 그 녀석이 섬뜩한 힘으로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것을 목격한다. 녀석은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데 불안함을 참지 못해 주변사람에게 말하자 녀석이 다 죽여버린다. 공포물이긴 한데 녀석에 대한 묘사가 개그만화 괴짜가족의 진을 떠올리게 해서 웃으면서 읽었다. 평소엔 좆삐리지만 사람을 태워죽일수 있는 괴물이라는 아이러니가 재미있다. 결말도 마음에 들고 영화로 만들어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공포물을 읽는 즐거움이란 혼자있을 때 읽은 이야기가 생각나면 심장이 오그라들정도로 무섭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있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인데 이번 단편집에 실린 작품집에 그정도로 무서운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상황설정에 이야기 전개가 긴장감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