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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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이를 재우면서 함께 잠이 들었다가

새벽 세시 퍼붓는 빗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달콤했던 두 시간의 잠.. 아깝고도 아까워라..

하지만 덕분에 읽고 있던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를 끝냈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권지예의 [꿈꾸는 마리오네뜨]를 읽어서일까..

하성란의 소설은 불길할 정도로 섬뜩하고 독특했으며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것에서 느끼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여름내내 납량특집에 시달린 덕에 내 간이 졸아 붙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존경스러웠던 부분은 작가가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 이입된다거나 불필요한 이해를 쏟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간혹 비정하게 느껴지고 벌을 서는 기분이 되게도 했던..


첫번째 소설 '별모양의 얼룩'은 씨랜드 화재참사를 소재로 삼고 있다.

엄마가 되고부터는 아이들과 연결된 비극은 도저히 소화해 낼 수가 없어졌기에

읽는 내내 힘이 들었고,

부질없는 수식 없이도 그 참상이 고스란히 내 앞에 던진 듯..생생했다.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를 읽으면서는

예전 그림형제의 그 동화를 읽으면서 궁금해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왜 살해당했을까?

그 궁금증을 이야기로 연결시킨 재능이 부럽고도 부러웠다.

누구나 상상할 수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자주 보는 베스트 극장을 보다보면

가끔 한편의 부조리극처럼 기발하고 독특한 소재의

추리소설 같으면서 컬트적 매력이 있는 작품들을 발견한다.

하성란의 장점은 그런 쪽에 있는 것 같다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어쩌면 공감할 곳이 많아 무수히 줄을 쳐야하는 소설들보다

줄 칠만한 곳은 많지 않으나 군더더기 없는 정확한 언어구사야말로

진정한 이야기꾼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하성란은 그걸 가진 것 같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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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마리오네뜨
권지예 지음 / 창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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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성란의 소설집과는 반대로 무지하게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았던 책.

연애의 종착역이 되어버린 결혼과 사랑의 덧없음..

하나같이 그로인해 아픈 여자들..

진정한 사랑과 소통을 원하지만 결국은

연인의 배신조차 삶의 횡포를 말해주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고 마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꼭 상쾌한 것만은 아님을 다시 느껴보았다.

나와 너무 닮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낄지언정 결정적으로 매혹당하지 않듯..


낭만적이고 열정적으로 시작한 사랑도 일상이라는 덫에 걸리면

부스러지고 황폐해 지며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결혼제도의 취약점(?)을 가지고

이렇듯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다니!

그건 꼭 결혼으로 묶여진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들이 다 그래서 일테지만.


여덟 편의 중단편을 잠자리마다 매일 한 편씩 읽고 잤더니..

덩달아 나도 병이 날 것만 같았던..

현실보다는 심란하지 않았지만.. 돌이켜볼수록 심란한 책..


뒷부분에 딸린 해설 중 마음에 와닿는 부분..

"여성들이 앓기 시작한 방랑의 질병과 내면의 고독은

행복한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그것은 같은 고통을 겪는 자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은밀한 표지이다."


남들은 모르고 더욱이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내가 훼손되어 가고 있는 걸 나만은 느낄 때..

무섭도록 외로워져 죽음조차 달콤한 유혹이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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몌별 - 차마 스쳐 지날 수 없는 사랑의 운명
구효서 지음 / 세계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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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 몌(袂)자에 나눌 별(別)자를 쓰는 몌별은

<소매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에 붙어 있는 작가의 주(註)에는

<소매만 스치듯 섭섭히 작별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엄청난 차이..

하지만 그 깊은 속 사연은 누군들 알 수 있을까 싶어지는..


이 소설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여운이 긴

처음 읽어치우고 덮어 버렸을 때는 느끼지 못한 무거움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생각의 갈래를 만드는..


하루를 함께 했건 평생을 살아내었 건

인간이 그 당시에는

알 수도 없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건 분명 있는 모양이다..


아주 재미가 있다거나 벅찬 감동을 준다거나

질투나게 글을 잘 썼다거나

그 어느 쪽도 그다지는 아니면서도..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과 자연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력,

정밀묘사를 보는 듯한 표현은 아주 멋지다고 느껴졌다.


남산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기 위해 다시 언뜻 펼쳐보다

군데군데를 대충 다시 훑는데..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사는 게 두려워 몸서리가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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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 윤대녕 여행산문중에서 

 

   7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


  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


  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


  나 사랑하는지



                        <허연>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오늘 밤이 그렇다.


특정음악을 틀어주고 먹을 것을 주어 길들인 개가

먹을 것 없이 그 음악만으로도 침을 흘리는 것처럼..


이런 비, 이런 빗소리는..

무작정 속수무책이 되어 버리게 만든다..


이렇게 퍼붓는 빗소리가 들려오면..

그저.. 아득해지면서..

즉각적으로 속수무책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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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그동안


       

       너무 무겁게 살았지


       이젠 가볍게 살아야 해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사람을 사랑하는 건


       순진하게 되는 것


       아름답게 되는 것


       향기롭게 되는 것


       고통보다 환희


       분노보다 용서


       절망보다 희망


       복잡한 건 단순하게


       당신은 쉰이 넘었지만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실수도 많았지만


       머리도 세었지만


       당신 머리엔 새가 날아와


       놀아야 해


       봄이 한창일 때


       꽃이 한창일 때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낸


       당신은 그때를 잊어야 해


       오늘은 화창한 날


       오늘은 여름이 오는 날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여름이 오는 날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시간은 많지 않아


       공부할 시간도


       술 마실 시간도


       좋은 사람과 만날 시간도


       그러니까 순진하게


       아름답게


       아름답게


       무엇보다 아름답게


       살아야 해


              <이승훈>

 

 

나는 그동안 너무 무겁게 살았지..

이젠 가볍게 살아야 해.

나는 그 때를 잊어야 해.

오늘은 어두운 비가 내리는 날..

시간은 남아돌지 않아.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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