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권보람 그림 / 돋을새김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망고스트리트]


에스페란자라는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한 소녀..

그녀의 할머니는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있다가

강제로 할아버지에게 끌려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곤 자기의 꿈은 마음속에 접고 날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살아갔던 것이다.

에스페란자라는 이름은 물려받았지만 할머니의 삶은

그녀가 거부해야만 하는 삶의 모습이었다.

[내 이름 에스페란자]에서 그녀는 말한다.

“나는 할머니의 이름은 물려받았지만, 창가의 자리만은 물려받지 않겠다.”고..


자의식이 강한 한 소녀의 눈에 비친

친구들과, 가족, 이웃들의 이야기..

공감이 가는 몇 개의 이야기들..

미소를 불러일으키는 몇 개의 어린 날의 에피소드..

힘없고 능력 없는 여자들에 관한 섬세한 관찰..

그 가운데 하루하루 소녀의 성장해 가는 모습은

기억 속 내 어린 시절과 맞물려 눈에 선한 듯 하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을 떠올리면 그녀의 어린 시절과

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동시에 떠오를 것 같은 느낌..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던 소녀의 바램은

멋진 동네에 근사한 바이올렛색의

아름다운 집을 장만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꿈을 꾼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그녀의 바이올렛 빛 집을 떠올리니

그녀가 애써 마련한 그녀만의 집에서

글을 쓰려고 등불을 켜는 그녀의 행복한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글쓰기야 말로 그 누구도 침범 할 수 없는 그녀만의 집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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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네 사랑]


이 이야기는 어떤 단편집의 마지막 이야기였다.

작가가 여자분 이었고 어느 정도는 지명도가 있었다는 기억밖에..(-_-;;)

여자는 상처입고 떠돌다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산처럼 믿을 수 있고 바다처럼 깊은 마음을 가졌지만 꼽추였다.

남자의 신산스런 삶에 여자는 따듯한 불빛이 되었고

남자는 언 상처들을 녹이고 치유 받았다 느낀다.

여자의 상처 또한 남자의 품에서 새살이 돋아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서로 갈등하게 된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삶이 고단하여..

 

지금도 나는 내가 배껴 놓은 이 조각글들을 보면서 처음처럼 눈물을 흘리게 된다.

세상 어디에 이렇게 따듯하고 사랑다운 사랑이 있을 건지...


***************************************************************************



[꼽추네 사랑]중에서


*“여보, 당신은 여기가 달부 답답하재?”


꼽추가 마냥 측은한 목소리로 물었다.


영숙은 남편의 말뜻을 언뜻 새길 수가 없어서 흘깃 쳐다 보았다.

 

꼽추는 우울한 낯을 수그렸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싶었다.


웬일인지 영숙이는 이제 그의 고단한 한시절의 피로를 다 풀었다고,


그렇게 생각되는 거였다.


새 힘이 돋아서, 돋아난 힘을 쓸 수 있는 데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감출 수 없게 솟구치는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울었다.



*그렇지만 꼽추는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이내 나무라고 고쳐먹었다.


결국은 아내가 아직도 그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피멍들고 지친 아내의 인생에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는 게


새록새록 부끄러움으로 자라났다.



*... 이게 사는 거냐, 언덕이 있어야 비빌 것 아니냐...


영숙은 결국 이런 불만에 시달리는 거였다.


꼽추는 한없는 연민에 싸여 마치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생물처럼 영숙을 지켜보았다.



*꼽추는 아내의 등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감싸 안았다.


영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꼽추의 염려가 무슨 따스함처럼


살갗을 파고드는 게 느껴져 가슴이 저렸다.



*꼽추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가느다란 줄들이 툭툭 끊어지는 것을 감득하였다.



*성환은 한줌도 안 되게 하룻밤새 오그라든 것처럼 보이는


꼽추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메어져서


차마 그를 부르지 못하고 뒤에 가서 섰던 것이다.



*그는 밤새워 아내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새벽에 그가 다짐한 한 가지 생각은,


아내는 자신이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내라는 목숨은 잘 붙어 살 수 있는 데로 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고 인정하였다.


그래서 겨우 조바심은 가셔졌지만 서글픔은 더욱 넘쳤던 것이다.


길을 내려가면서도 꼽추는 걷잡을 수없이 밀어닥치는 그리움을


있는 힘을 다해 돌려 세웠다.


영숙이는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고,


자기와 함께 지내는 것보다 더 좋게 살아야 한다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잡고 늘어지는 건 죄악이라고...


자꾸만 솟구치는 그리움을 이렇게 눌렀다.



*어부들이 그에게 와서 무슨 위로의 말이나 궁금한 걸 물으려 하다가,


너무 맑은 낯에 차마 말을 붙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그는 벽에 걸린 아내의 옷에 매달렸다. 냄새를 맡았다.


그립고 그리운, 살아있는 냄새가 났다.


그가 헉 흐느껴 울기 시작 하였다.


누가 등을 후려치듯 그는 그렇게 헉헉 소리 내며 울었다.


그의 등혹이 흔들렸다.


그는 마치 옷자락에 붙은 짐승처럼 오래도록 서서 울었다.



*... 꼽추는 웃으며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


“당신이 맘 내키는 일을 하게, 당신 맘이 내 맘이라.” 하였다.


영숙은 남편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당신이 없는 데선 몸이 무거워 일이 되지 않고 아무 뜻이 없었지유,”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편안함, 이렇게 소중한 것...


영숙은 이제 잠이 왔다.


처음 꼽추를 만났을 때 몇 날 며칠을 잠만 잤던 것처럼,


그리하여 마침내 새 힘을 얻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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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 화려한 화랑에서 길을 잃다]


어째서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이렇듯 밋밋할 수 있지?

저 여자가 정말 저렇게 많이, 활짝 웃으며 삶을 보냈을까? 우매한 궁금증..

화려한 색채들, 감각적이고 재기발랄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속마음은 제대로 말하지 않고 겉도는 대화만 나누던 친구와

두시간 마주 앉았다 일어난 듯한 ‘이건 아닌데’의 느낌..

멋지고 잘 만든 영화임에 분명한데 왜 이리 궁시렁대게 되는지..


가슴을 울림이 왔던 기억은.. 그녀가 어떤 순간에도 그림을 그렸다는 것..

자기 가슴을 짓누르는 깁스에 조차도..

살면서 모든 생의 장면들을, 상처들을 그림으로 척척 만들어내는 그녀..

그녀에게 상처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처럼, 가족처럼 함께 지내야하는 것이었을까..

고백하자면 난 전기영화에 대해 유달리 맥을 못추고 매혹된다.

그것이, 드라마틱한 삶이 실제라는 것이 날 맥 못추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제라는 것의 한계 때문에 늘 극장을 나설 때는 기분이 영 그랬던 것 같다.

몇몇.. 벅찼던 영화를 제외하고 나면(아.. ‘내 책상위의 천사’).

그 실제라는 건.. 내 협소하고 정리 안된 부엌에서는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난 또 실제를 포기하지 않고 매혹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삶은..실제는.. 너에게도 또 나에게도 여전히 진행형이므로..



(사족)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왜 쓸데없이 나와서 날 궁금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미리 우정출연 정도라는 걸 알고만 있었어도

저 둘의 로맨스는 언제 시작되는 거야? 하는 딴생각을 내내 하고 있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에잇.. “그런 편견은 버렸어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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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


분명 쫒기는 자와 쫒는 자에 관한 영화로 알고 보았지만..

왜 따스한 가족영화를 본 듯한 뒷맛일까..


탐 행크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는데..

왜 크리스토퍼 월큰만 가슴에 여운을 남길까..


쫒는 자는.. 점점 쫒기는 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고,

쫒기는 자는.. 점점 잡히기라도 하길 원하는 것처럼 보이고,


자기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 자기를 쫒고 있는 경찰이라면..

그래도 너무 외로운 날 전화할 데라곤 그 사람밖에 없다면..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프랭크가 소년이라고 자꾸 생각이 되자..

어쩔 수없이 측은지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더라는..

내가 엄마가 아니라도 포커스가 거기 맞춰졌을까를 잠시 생각..

주말.. 무조건 재미있고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영화를 보고 싶었던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을 만큼 재미있게 보았고,

테잎 두개짜리의 영화가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다른 건 다 금방 잊혀질 듯 하고..

프랭크의 아버지만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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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4-07-2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우리처럼 파더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프랭크 아버지가 으흐흑...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이젠 기억조차 까마득하군요.

당신을 처음 알았을 때, 당신이라는 분이 이 세상에 계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즐거웠는지요.

여러 날 밤잠을 설치며 당신에게 드리는 긴 편지를 썼지요.


처음 당신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 왔을 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득히 밀려 오는 기쁨에 온몸이 떨립니다. 당신은 나의 눈이었고,

나의 눈 속에서 당신은 푸른 빛 도는 날개를 곧추세우며 막 솟아올랐읍니다.

그래요. 그때만큼 지금 내 가슴은 뜨겁지 않아요. 오랜 세월, 당신을 사랑하기에는

내가 얼마나 허술한 사내인가를 뼈저리게 알았고,

당신의 사랑에 값할 만큼 미더운 사내가 되고 싶어 몸부림했지요.

그리하여 어느덧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분으로 바뀌었읍니다.


이젠 아시겠지요. 왜 내가 자꾸만 당신을 떠나려 하는지를.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아니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일테지요.

오, 아름다운 당신. 나날이 나는 잔인한 사랑의 습관속에서

당신의 푸른 깃털을 도려내고 있었어요.

다시 한번 당신이 한껏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내가 당신을 떠남으로써만......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성복님의 시집 [남해금산]의 책 뒤표지에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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