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꼽추네 사랑]
이 이야기는 어떤 단편집의 마지막 이야기였다.
작가가 여자분 이었고 어느 정도는 지명도가 있었다는 기억밖에..(-_-;;)
여자는 상처입고 떠돌다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산처럼 믿을 수 있고 바다처럼 깊은 마음을 가졌지만 꼽추였다.
남자의 신산스런 삶에 여자는 따듯한 불빛이 되었고
남자는 언 상처들을 녹이고 치유 받았다 느낀다.
여자의 상처 또한 남자의 품에서 새살이 돋아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서로 갈등하게 된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삶이 고단하여..
지금도 나는 내가 배껴 놓은 이 조각글들을 보면서 처음처럼 눈물을 흘리게 된다.
세상 어디에 이렇게 따듯하고 사랑다운 사랑이 있을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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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네 사랑]중에서
*“여보, 당신은 여기가 달부 답답하재?”
꼽추가 마냥 측은한 목소리로 물었다.
영숙은 남편의 말뜻을 언뜻 새길 수가 없어서 흘깃 쳐다 보았다.
꼽추는 우울한 낯을 수그렸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싶었다.
웬일인지 영숙이는 이제 그의 고단한 한시절의 피로를 다 풀었다고,
그렇게 생각되는 거였다.
새 힘이 돋아서, 돋아난 힘을 쓸 수 있는 데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감출 수 없게 솟구치는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울었다.
*그렇지만 꼽추는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이내 나무라고 고쳐먹었다.
결국은 아내가 아직도 그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피멍들고 지친 아내의 인생에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는 게
새록새록 부끄러움으로 자라났다.
*... 이게 사는 거냐, 언덕이 있어야 비빌 것 아니냐...
영숙은 결국 이런 불만에 시달리는 거였다.
꼽추는 한없는 연민에 싸여 마치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생물처럼 영숙을 지켜보았다.
*꼽추는 아내의 등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감싸 안았다.
영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꼽추의 염려가 무슨 따스함처럼
살갗을 파고드는 게 느껴져 가슴이 저렸다.
*꼽추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가느다란 줄들이 툭툭 끊어지는 것을 감득하였다.
*성환은 한줌도 안 되게 하룻밤새 오그라든 것처럼 보이는
꼽추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메어져서
차마 그를 부르지 못하고 뒤에 가서 섰던 것이다.
*그는 밤새워 아내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새벽에 그가 다짐한 한 가지 생각은,
아내는 자신이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내라는 목숨은 잘 붙어 살 수 있는 데로 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고 인정하였다.
그래서 겨우 조바심은 가셔졌지만 서글픔은 더욱 넘쳤던 것이다.
길을 내려가면서도 꼽추는 걷잡을 수없이 밀어닥치는 그리움을
있는 힘을 다해 돌려 세웠다.
영숙이는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고,
자기와 함께 지내는 것보다 더 좋게 살아야 한다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잡고 늘어지는 건 죄악이라고...
자꾸만 솟구치는 그리움을 이렇게 눌렀다.
*어부들이 그에게 와서 무슨 위로의 말이나 궁금한 걸 물으려 하다가,
너무 맑은 낯에 차마 말을 붙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그는 벽에 걸린 아내의 옷에 매달렸다. 냄새를 맡았다.
그립고 그리운, 살아있는 냄새가 났다.
그가 헉 흐느껴 울기 시작 하였다.
누가 등을 후려치듯 그는 그렇게 헉헉 소리 내며 울었다.
그의 등혹이 흔들렸다.
그는 마치 옷자락에 붙은 짐승처럼 오래도록 서서 울었다.
*... 꼽추는 웃으며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
“당신이 맘 내키는 일을 하게, 당신 맘이 내 맘이라.” 하였다.
영숙은 남편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당신이 없는 데선 몸이 무거워 일이 되지 않고 아무 뜻이 없었지유,”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편안함, 이렇게 소중한 것...
영숙은 이제 잠이 왔다.
처음 꼽추를 만났을 때 몇 날 며칠을 잠만 잤던 것처럼,
그리하여 마침내 새 힘을 얻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