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에서 중요한 것은 사거리의 거북이 4
띠에리 르페브르 지음, 박희세 옮김, 신얼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들에는 왠지 모르게 설핏한 미소가 어울리는 것 같다. 물론 설핏한 그 미소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기억을 더듬어 추억의 한 장소를 발견하는 그 시점에서 찰나에 증발해버리는 아련함이다. 시간을 되짚어 꺼내고 또 꺼내는 추억들은 조금씩 ‘빛바랜 것’이라는 의식과 뭉쳐져 어느새 그 찰나의 미소는 조금은 씁쓸하게 조금은 가슴 저리게 변하고 만다. 그 정도가 심하면, 길어낸 그 추억과의 조우가 길어지면 때때로 한숨과 함께 담배 한 개비를 물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첫’이라는 이 글자를 가지고 있는 것들은 시간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비로소 ‘지난 것’이 되어야 ‘첫’이라는 글자는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되고,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첫’은 더더욱 애잔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네 기억이란 게 이 ‘첫’이라는 글자로 인해 더욱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숨이 섞이든, 씁쓸하거나 가슴이 아프든, 아련함과 애잔함으로 몸서리마저 치게 되던 간에 마치 우리네 의지와는 무관하다 싶을 정도로 이 ‘첫’은 늘 기억 속에 기필코 각인되고야 마는 고약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

『첫 키스에서 중요한 것은』프랑스 소설이며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첫 키스에 대한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가진 주인공이 어떻게 첫 키스에 성공하게 되는지를 그리고 있다.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 각 장의 에피소드들이 익살스러우면서도 진지하기도해서 참 재미나게 읽었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첫 키스에 대한 주인공의 절망(?)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가 아주 인상 깊었다. 


키스에서 시작된 호기심과 만감이랄까, 이는 ‘사랑’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이것의 계기가 된 것이 앞서 말했던, 아주 인상 깊었다던 그 절망을 포함한 장면이다. 낙담일수도 있고 열등감일지도 모를 그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내면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주인공은 자신만의 ‘섬’을 만들어간다. 그 섬이란 사랑으로 만들어진, 은하수처럼 맑디맑은 주옥같은 자신만의 사랑의 표현들로 눈부신 섬이다. 어느새 주인공은 시를 쓰며 자신의 절망과 고뇌, 좌절을 치유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젊은 날, 아니 어린 날 진정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에 대해 사색할 수 있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으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또 있으랴. 더군다나 자신의 내면과 영혼까지 바쳐 시를 지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또 얼마나 값진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이었겠는가. 첫 키스에 대한 호기심으로 키스라는 행위에 집착하고 골몰하는 것을 뛰어넘어 사랑이라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에 시로써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 수 있다는 것만큼 황홀하고 깊이 있는 청소년시절의 성장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고 멋지고 당당한 것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

모든 것은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첫 키스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 역시 현실에서의 행위를 머릿속이라는 공간에서나마 자신만의 색으로 형태로 풀어내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과 금지된 것이라 규정된 틀 사이에서 모든 것은 머릿속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왜곡을 경험하게 되고 사실 혹은 진실과는 너무 다른 것에 탐닉하기도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금지된 것 사이의 그 틈이야말로 청소년들의 순수한 감정을 보호해준다고 여기는 어른들의 생각은 얼마나 바보스럽고 많은 부작용을 낳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호기심에 찬 순수한 열망에 휩싸인 청소년들의 그 고귀한 상상이란 늘 현실에서의 금기와 좌절로부터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의 보호와 관심을 가장한 간섭 때문이 아니라 그 고귀한 상상은 스스로의 건강한 감정의 결과물일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서툴지만 내적성숙에 이르는 그 과정은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며, 그 결과 역시 아이들이 노력한 결과물일 것이다. 결코 어른들의 보호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 착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결국 아이들의 그 고귀한 상상이란 스스로를 성숙시켜나가는, 그 사이사이의 장애물을 뛰어넘으려는 의지의 한 표현인지도 모를, 어쩌면 오묘한 마법과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첫 키스에서 중요한 것, 그것은 평생토록 기억하는 것이다.(p129) 


결국 첫 키스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것이란다. 그것은 자신의 섬(시)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을 오롯이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시를 쓰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단순한 행위로서가 아닌 진정한 사랑의 실체를 깨달아가는, 그런 자신의 변화를 평생토록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밀려드는 호기심과 다채롭고 때론 위태로워 보이는 그네들만의 모호한 감수성은 결국 자신만의 색과 특징을 지닌 위대한 ‘섬’을 탄생시키는데 소중한 의의가 있는 건 아닐는지. 

 

어쩌면, 첫 키스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홀로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당당히 이를 극복해 일어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그것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는 것, 그것을 평생토록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