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희망무역 - 아시아의 여성 공정무역을 중심으로
김정희 엮음 / 동연출판사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대학교 3학년 어느 때, 뜬금없이 물음 하나가 나를 옭아맸다. ‘나는 통상학을 전공해서 뭘 하려는가?’ 이 물음은 말하기는 쉬워도 생각보다 골이 깊은 문제였다. 그저 수능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고 말 그대로 ‘그냥’ 학교를 다니고 ‘그냥’ 전공강의를 들었던 것이다. 강의시간에는 무역법률, 무역계약론, 결제론, 운송론, 보험론, 소비자 마케팅, 금융론, 외환론 등등 오로지 상행위에 적법한 사고를 요구하고 여태 다져진 일련의 ‘룰’을 따르는 수동적인 자세만이 강조되었다. 이런 것에 대해 깨닫기 전까지 나는 ‘그냥’ 졸업해서 ‘대충’ 작은 무역회사에 들어가 ‘그저 그런’ 끌려가는 삶을 너무 일찍 허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 시작된 물음은 꼬리가 길다. 강의시간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말이 인간이 하는 상행위이지 기계적인 사고와 마인드를 주입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통상학을 가르치는 모든 학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하물며 현장에서 직접 무역에 관계하는 사람들이 모두 인간미도 없고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폄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우리학교’에서 내가 접한 통상학 강의란 것이 지극히 ‘통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물음은 의문의 탈을 쓰면서 ‘인간이 하는 행위인데 어째서 오직 기술적인 부분만 주입하는가?’에 머물렀다. 오직 ‘거래행위자’로서 수동적인 ‘나 아닌 나’가 되어가는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 오더라는.  


어쨌든 간에, 나는 무책임하게도 전공을 버렸다(?). 최소이수학점만을 ‘안전빵’으로 수강하고 다른 전공을 전전(?)했다. 경영학과, 사회복지학과, 문예창장학과, 사회학과, 사학과 등등을 무차별적으로 들락날락거렸다. 그 중 하나가 걸렸는데, 결국 부전공을 하게 된 사학과가 그것이었다. 특별히 역사의식이 투철한 것도 아닌 내가, 역사에 관해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도 아닌 내가 사학과 수업을 들었던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했던 것 같다. 첫째가 교수와 학생 간에 ‘말이 통한다!’는 것(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분위기?)이었고 둘째가 시험문제가 주관식 서술형이라는 것(시험공부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셋째는 강의실 분위기가 아주 조용하고 엄숙(?)했다는 것.  


사학과 첫 강의는 ‘한국사회경제사’라는 과목이었다. 만약, 이 과목에서 ‘공정무역’이라는 부분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라면, 굳이 사학과 수업을 계속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대학생 둘이 세계여행을 하던 도중에 공정무역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Veja’라는 운동화 브랜드를 만들어, 원재료를 공급하는 원주민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도록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진국의 ‘윤리적 소비자층’의 욕구와 만족감을 충족시키고 원료를 공급하는 원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시스템을 구축한 이 두 젊은 청년의 예를 통해 내가 전공수업에서 강의해주길 바랐던 게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무역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면서도 공정무역에 관해 개설된 강좌도 없었고, 그것에 대해 진중하게 언급하는 교수도 없었다는 것! 그것이 내 골 깊은 물음의 실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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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에둘러 왔다.『공정무역 희망무역』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공정무역에 대한 연구와 일본과 한국, 크게는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공정무역의 현황을 담은 희망보고서이다. 이 책에 담긴 글은 논문과 이미 다른 곳을 통해 기고된 글을 수정한 것, 대담과 인터뷰, 인용자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소 딱딱한 맛이 없지 않지만, 간간이 삽입된 사진과 공정무역이 ‘살맛나는 무역’이고 ‘희망무역’임을 알아감으로써 상쇄된다.  


이 책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페미니즘적인 성격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네팔이나 인도 등지에서 고유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수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여성임을 알게 된다면, 오해하지 않은 채 공정무역의 한 예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공정무역 대상자인 여성들에게서 희망무역이 싹트는 이유를 꼽자면, 대체로 이 지구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일정한 수입이 생기면 이를 가족에게 투자한다. 아이를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며 집을 가꾸거나 장만하는 등의 생산적인 부분에 소득의 일부분 혹은 전체를 쏟는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공정무역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큰 것이 아닐까. 어떤 부의 창출로써 삶의 질이 나아진다는 것 이상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의 ‘네팔리 바자로’와 한국의 ‘두레생협연합회’, ‘페어트레이드 코리아’의 역할과 모색하고 있는 방향, 어려움과 보람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설립자와 동참하는 많은 이들(이들 모두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사람들이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하고 공정무역의 기틀을 잡아가는 아시아 중심의 이 단체들은 정말이지 대단하거니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의미를 넘어 여성과 가난한 이들의 인권, 아이들이 꿈을 갖고 웃으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계 전체를 기획해나가는 그들의 노력은 정말이지 가슴 찡한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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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한계니 새로운 돌파구는 무엇무엇이니 하는 탁상공론에 진절머리가 날 때가 많다. 그네들의 말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은 현실에 아무런 도움도, 감동도 주지 못한다. 이론과 견해 · 주장들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의 결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발로 뛰면서 작으나마 현실을 그려나가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은 저명한 학자들이나 기득권층의 ‘구상’에 그치는 주장에 비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가!  


나는 지적 오만을 아주 부정적인 것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때론 지적 오만이 의식적으로나마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타인에게 상처 혹은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그것이 변화가 없는 ‘오만’ 혹은 ‘태만’에 그친다면, 더군다나 이런 행태가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계층의 전유물처럼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남용된다고 한다면 이는 부정적이 아니라 ‘사회악’ 그 자체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우리는 곰곰 해봐야 하지 않을까. 입과 머리로만 ‘명품 시스템’을 끊임없이 생산 · 재생산하고 있는 치들을 우러러 볼 것인가, 아니면 작으나마 실질적으로 행동하고 징검돌을 놓듯이 하나하나 세계를 직접 그려나가는 이들의 땀방울을 우러러 볼 것인지를 말이다.  


수도가 없던 시절, 펌프에서 물을 퍼 올리기 위해서 한바가지 붓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마중물을 한바가지 붓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생명수처럼 물이 콸콸 올라온다는 것을 아직 어린 나이지만 나 역시 경험해보았다. 공정무역 · 희망무역을 외치며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 마중물과 같지 않을까 싶다. 징검돌을 조용히 날라다 놓고 또 놓으며 전 세계에 희망수· 생명수를 나르는 그런 물장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들의 한바가지 마중물이 세계 곳곳에 희망과 생명을 퍼뜨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각성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작으나마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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