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곳으로부터 - 지하철 1호선 첫번째 이야기
김수박 지음 / 새만화책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도서관 서가를 산책하다가, 내 방에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는 책들을 눈으로 훑다가, 종종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좋겠다는 둥, 저 책은 ‘누구’에게 어울릴 것 같다는 둥, 요 책은 ‘누구’에게 필요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둥 하는 생각. 반면에 누군가 서점의 한쪽 코너에서 책을 뒤적이다 내 생각이 나서 보내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기분이란 그저 책 한 권 선물 받는 것 이상으로 오묘한 것이다. 

 

『사람의 곳으로 부터:지하철 1호선 첫번째이야기』는 생산자님이 보내온 책이다. 그냥 내 스타일(?) 같다며, 그냥 생각나서 보낸다는 메모에는 내심 부담감을 덜어주는 배려도 함께 담긴 듯하다.『을지로 순환선』을 보내드린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이 책의 제목에서 내가 떠오른 건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누군가 책을 보면서 나를 떠올려준다는 게 참 기분 좋은 일이며 오묘한 기분이 아닐 수 없다. 

 

김수박. 저자의 본명인지 필명인지 모르겠으나 이 여름과 어울린다(?)는 생각에 잠시 웃어본다.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김수박. 그의 만화가 품고 있는 주제는 아리송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관계’에 대한 모색이 차분하게 담겨 있다고 할까. 무수히 많은 익명의 사람들 틈바구니 속의 나, 남과 여의 관계,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이간질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사의 의식들이 슬며시 녹아 있는 맛이다.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색채가 참 오묘하다. 개중에는 흑백도 끼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감이 짙다. 인물들의 표정은 심하게 혹은 적당히(?) 일그러지고 왜곡되어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조금 적나라하게 인간을 표현하고자 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솔직함을 우리네 가식 위로 덧씌웠거나. 강요도 비판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김수박의 만화는 담백한 맛이 배어있다. 저자의 말처럼 ‘치우치지 않음’이라는 미학일 수도 있고, 그저 ‘내뱉어 보는 권유’일는지도 모를 담백한 맛이랄까.  


‘관계’ 속에는 다양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집약되어 있는 듯하다. 저자가 만화를 통해 군데군데 드러내는 것 중에 이별도 있고 사랑도 있다. 꿈도 있으며 처절한 자기비판도 있다. 세상사를 향한 주정처럼, 푸념처럼 무심히 내뱉고는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할 넋두리와 한탄도 있으며, 어설피 보이는 욕지거리도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적의도 보인다. 등장인물의 이름 중에 개 이름을 갖다 붙인 걸 보면 꽤나 솔직하다(?) 못해 매서운 맛도 느껴지는 듯하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들은 ‘관계’ 속에서 피고 지는 역동성을 갖는 생명이 아닌가 싶다. 들숨과 날숨의 사이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일어나고 누우며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다채로움 그 자체이다. 때론 이 다채로움으로 인해 번민하고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관계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관계의 재조명·재설정 과정을 통해 조금씩 관계라는 울타리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인간의식의 중요한 작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도 이 좁은 땅 그 어디에서 우리를 잠시 떠올려주는 고마운 존재가 있음을 기억하는 일,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 그것은 꽤나 흐뭇하고 행복한 일일 것이다. 우리 역시 일상의 잠시나마 누군가를 자연스레 떠올리는 그런 기분 좋은 일상을 이어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부유하는 많은 생각들 틈에서 이처럼 소중하고 행복한 생각의 한 귀퉁이를 잡아 베어 물 수 있는 일상이 모든 이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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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4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gpickEr 2009-07-15 16:32   좋아요 0 | URL
선물받은 책이랍니다..^^* 후훗.. 보내드리고 싶지만 역시나.. 선물 받은 책은 아직까지 나누지 못하겠더군요..^^*; 헤헤..

늘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헤헤..
좋은 날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