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이다 - 김홍희의 사진 노트
김홍희 글.사진 / 다빈치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감기 몸살로 몹시 아프던 어느 날 아침으로 기억한다. 세계문학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그와 처음 만났었다.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을 달리며 구수한 경남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를 만나고부터 내 일상은 조금씩 변해간 듯하다. 게다가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 절묘했던 햇귀님의 선물『나는 사진이다』와 많은 귀띔은 나로 하여금 김홍희를 더욱 깊이 흠모하게 만들었다.  


김홍희의『방랑』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을 때만 하더라도 그를 그저 사진 좀 찍는 사람, 생각보다 재미난 사람, 조금은 촐싹거림이 몸에 밴 유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였는지 모르지만『나는 사진이다』라는 제목을 보고 ‘참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참 그답다’는 생각은 조금씩 변해갔다. 이게 김홍희구나! 싶었고, 김홍희는 사진답구나!(?) 싶었다.

만약 당신이 프로라면 아마추어처럼 사진을 즐겨라. 만약 당신이 아마추어라면 프로보다 훨씬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연구하고 시간을 할애하라. 그리고 즐겨라! 그럼 반드시 걸작을 찍게 될 것이다.(p21)  


“프로는 사진을 자랑하고, 아마추어는 카메라를 자랑한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는 지금 당신의 수중에 있는 카메라이다. 당신과 함께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일을 해주고 즐거움을 주는 카메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진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p83)  


이 책은 사진을 처음 접하거나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조언과 충고를 담고 있다. 처음 발아하기 시작한 사진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싹이 주변에 이미 쑥쑥 자라나 멋들어지게 자리 잡은 모습에 결코 기죽지 않도록 배려한다. 내 고물 휴대전화에 장착된 카메라와 유행이 지난 동생의 디지털 카메라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던 건 바로 김홍희의 배려심 때문일지라. 또한 사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사진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길러내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생각들을 사진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능하게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사진을 읽을 줄만 알면 사진 공부는 끝이다. 읽을 줄만 알면 쓰는 것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 략···)

사진도 하나의 문장을 읽고 쓰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진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데 좀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p113)  


가브리엘 보레의『사진의 이해』와 최민식의『사진이란 무엇인가』에서도 위와 같은 말이 나온다. 사진은 하나의 언어이며, 사진가는 그 언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라고. 또 만약 아주 오래전부터 카메라가 있어왔다면, 시인은 펜 대신 카메라를 들었을 거라고. 어쩌면 모든 공부가 그렇겠지만 사진공부 역시 우리네 마음공부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과 낯선 것과의 조우를 통해서 성숙해가듯 사진가가 일상을 재발견하고 기록한 것을 읽어내고 소통하면서 우리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새로운 것을 깨닫는 게 아니라 그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그런 마음의 눈을 키우는지도.  


사진의 진정한 목표는 생명의 공생에 있다. 생명의 공생은 생명 대 생명의 교감이다. 거기에 감동이 있는 것이다. 남을 감동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알게 됐다면, 우리가 느낀 감동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거짓 위에 서 있는 진실의 허상일 뿐이다. 그 사진을 보고 감동한 우리 모두가 패악을 함께 저지른 것이다.(p261)  


이 말 참 좋다. 참으로 와 닿는 말이고 김홍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내가『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의 저자 호시노 미치오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생명 대 생명의 교감! 관찰자가 아닌 동일한 시공간에서 서로의 호흡을 느끼는 짜릿하면서 경이로운 순간을 맛보는 것만큼 황홀한 게 있겠나 싶다. 생명 혹은 사물에 대한 소중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이런 마음 때문에 그의 사진이 좋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꽃을 찍고는 다른 이들이 감상할 수 없도록 꺾어버리는 행위, 사진 구도에 방해가 된다고 주변의 가지나 풀들을 함부로 제거하는 행위, 한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담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에게 독약을 먹여가면서까지 셔터를 누르려는 욕망, 그리고 그런 것을 아름답다고, 감동적이라고 말하는 우리들. ‘거짓 위에 서 있는 진실의 허상’을 경계하라고 김홍희는 말한다. 어쩌면 생명의 공생 없는 사진은 사진이 아닌지도 모른다. 또 그런 사진은 그 본질에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지도.   

 

*

내가 사람을 볼 때 가장 유심히 보는 부분은 얼굴보다는 표정이다.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만연한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특히나 맑은 눈을 대할 때면 알 수 없는 전율이 밀려드는 듯하다. 그 눈에 비친 많은 감정들 중에 조금은 슬픔의 빛이 서려 있는 눈, 그런 눈과 마주할 때면 ‘내 마음 나도 몰라요!’가 되기 일쑤이다.  


또 얼굴에 새겨진 주름을 보는 편이다. 주름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서 가장 자신다운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무엇으로 가리고 치유(?)받기를 원하는 이들의 보일 듯 말 듯 한 주름은 내 관심 밖이다. 선명하게 패인 그 골을 따라 세월이, 그것도 아름답고 소중한 생이 흐르는 것만 같다. 그런 천연의 자국들을 만날 때면 한없이 흐뭇하고 반갑다. 더구나 삐뚤빼뚤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미소를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행복한 그 무엇이 느껴진다.  


앞 뒤표지에는 김홍희의 사진이 있다. 근사하면서도 오묘한 매력을 풍긴다. 물기가 촉촉하게 밴 눈, 그 눈 주위와 얼굴에 새겨진 자잘한 주름들, 입주위로 선명하게 새겨진 소위 팔자주름, 대충 빗은 것 같은 이마가 드러나는 머리모양이 인상적인 사진가 김홍희. 자연스러운 모습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인데,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김홍희가 딱 그런 좋은 느낌이다.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얼굴이며 몸에 흐르는 사람은 언제나 사람을 기분 좋게, 흐뭇하게 하니까.

**

덧붙여, 이번 책읽기를 통해 알게 된 김홍희의 또 다른 매력은 그가 참 글도 잘 쓴다는 것이다. 그저 말만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사진만 좀 찍을 줄 아는 사람이 아니구나, 늘 촐싹맞기 그지없는 사람만은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래서 김홍희는 참 그다우면서 사진답구나, 생각해본다.  


때론 읽어나가기 아까운 책을 만나곤 한다. 뭔가 막연하게 슬픈 것 같기도 한 그 기분은 느껴보지 않고는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임을 안다. 깊지 않은 내 책읽기 동안에, 몇 안 되는 그런 느낌은 아주 인상적이면서도 말로는 죄다 표현할 길 없게끔 남아 있다. 그런 아까운 기분이 드는 책을 오랜만에 만나 더없이 기쁘다.  


‡‡‡‡‡‡‡‡‡‡‡‡‡‡‡‡‡‡‡‡‡‡‡‡‡‡‡‡‡‡¨¨주워 담기¨¨‡‡‡‡‡‡‡‡‡‡‡‡‡‡‡‡‡‡‡‡‡‡‡‡‡‡‡‡‡‡


하나의 주제를 정해 촬영해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떻게’와 ‘무엇’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사진의 왕도이다.(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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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잃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숲을 동경하는 마음을 잃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이다.(p209; [사진 - 2003. 부산 성지곡 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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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디카도 좋고 필카도 좋다고 강조한다. 기록과 발견과 표현을 위해 사용하는 매개체는 그것이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같은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라면 어떤 것이라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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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진을 그저 빠른 시간에 기록하는 매체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중요한 역할이 얼마든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발견을 위한 기록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익숙한 것에 대한 자기 확인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런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도 역시 새로운 생각이나 표현, 또는 익숙한 것에 대한 반성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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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진이 동료들과 비평가들의 인정뿐만 아니라 소장자들의 손에서 귀하게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삶의 원점을 묻는 대중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결국 당신의 사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의 죽음과 함께 모두 불태워질 것이다.(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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