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이충렬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이 뭐고? 이렇게 물으면 뭐라 답할까. 정이 무섭지, 하는 걸 보면 참말로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덧정 없다, 하는 걸 보면 징글징글한 것 같기도 하다. 정나미 떨어진다, 몸서리친다, 하는 걸 보면 꼴 뵈기 싫은 게 아닌가 싶다가도 만날 꼴 베다 소먹이는 할배를 보면 겉으론 무뚝뚝하고 속은 따숩은 게 정인갑다, 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산다고 날 뛰 봐야 100년이라. 소는 꼴랑 20년 안팎이라는데, 할배가 만날 꼴 베다 먹이는 소는 마흔이라네. 소가 깜박 잠든 사이에 다음 생을 이어받아 한 생을 더 살은 셈이다. 뭐 할기라꼬 그리도 오래 살았나 싶다. 구남매 공부 다 시킨 소가 뭐한다꼬 한 생을 더 이어받아 살았을꼬. 할배 할매가 소한테 정을 너무 마이 준기 아닌가 싶네. 할배 할매 자슥들 공부시킴서 여태 애 잡수셨다고 시렁-시렁 말동무나 할 요량으로 그란 게 아닌가 싶다.  


어디 말동무나 하민서 조용할 듯 싶드나. 한평생을 넘 집 머슴 살아 묵고 살고, 제 논이니 밭이니 부쳐가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바빴제. 자슥들은 원케 많아 벌린 주디에 밥 퍼다 먹이고 먹여도 한정 없고, 그래도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 마냥 좋다고 그 힘든 일 다 웃으면서 했제. 이래 평생을 살았으이 말동무나 하미 시렁-시렁 살 듯 싶드나 소야. 아무래도 니 실수했는갑다.  


그래도 알았심더, 밭에 나가입시더, 묵묵히 할배 할매 따라 나서고, 아픈 다리 이끌고 무릎으로 기 가미 농사짓는 할배 보민서 속으로 할배도 이제 마이 늙었니더, 고마하고 이제 쉬이소, 걱정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소린 걸 알민서도 멀뚱멀뚱 우직하이 함께 한 소. 할매가 저 소새끼 때메 내가 이 고생을 하지, 내 팔자예이, 니나 내나 영감 잘못 만나가 이 고생을 안하나, 니 팔자예이, 내 팔자예이, 타박하고 한탄해도 소가 영감 평생의 업인니더, 하는 할매 보면 정이 깊어도 참 깊었는갑다.  


두 생을 이어받아 살라니까 디제? 살점 하나 없이 뼈만 앙상하이 삐쩍 곯아가 어디 그게 소모냥이라 하겠나. 그래도 우야노. 니나 할배나 할매나 그래 의지하민서 디면 쉬 가고 좀 낫다 싶으면 힘내고 사는기제. 이래저래 세월이 흘러서 할배도 병 앓고 니도 병 앓고 몸은 안 따라주는데도 해뜨기 전에 일어나가 해지기 전까지 들로 나가 일 안했나. 할배가 안카나 말 못하는 소가 사람보다 더 나아여. 할배가 만날 농약 냄새도 안 나는 싱싱한 꼴 베다 먹일라꼬 끙끙대는 걸 보민서, 그걸 맛나게 먹으민서 아마도 할배 정도 묵고 사랑도 묵고 그래 여태 안 살았겠나 싶으다.  


할배가 낫 갖고 니 목에 워낭이라 코뚜레 풀어 주면서 좋은데로 가그레이, 할 때 할매도 울고 할배도 울고 니도 울고 나도 울었제. 고개도 제대로 들 힘이 없어가 눈만 씀벅이면서도 우야든동 쪼매라도 더 버티볼라꼬, 우야든동 쪼매라도 더 있어볼라꼬 하던 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 생도 버거운데 두 생을 달아 산다고 고생 많았다. 할배가 주던 꼴이며 막걸리며 죽이며 많이 그립더라도 쪼매만 먼저 가서 기다리면 좋은 날 안 있겠나 싶다. 좋은데로 가레이.  


할배, 마음이 참 아프지예? 그래도 여태 고마웠지예? 소도 그래 생각할낍니더. 그라이 고마 일손 놓고 쉬면서 쪼매만 더 사소. 소가 떠나기 전에 할배 할매 겨우내 때라고 나무를 저래 많이 해놓고 안갔니껴. 저 나무 다 때고 날 따따해지면 실컷 함께 할 수 있을 낍니더. 그때까지 몸도 좀 나숫고 할매한테도 좀 살갑게 해주고 그라이소. 할배캉 할매캉 소캉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으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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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자만두 2009-12-30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뭉클해요...

ragpickEr 2009-12-30 23:38   좋아요 0 | URL
우아한 냉혹님^^*
아..정말 이 영화 뭉클했어요..ㅜ0ㅜ

교자만두 2009-12-3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사랑 말고 정으로 살고 싶어요...나 벌써 늙어버린 건가...=.=;;사랑이 또다시 오지 않아도 나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불만 없이..괜찮을 것 같아..라고 했더니 제 후배가요..슬프대요..나를 불쌍하게 바라 보았어요..그런가...난 괜찮은데..선한 사람들과 따스함과 정을 나누며 그렇게 사는 게 저의 바람인걸요..=.=;;

ragpickEr 2009-12-30 23:40   좋아요 0 | URL
우아한 냉혹님^^*
정으로 산다고해서 늙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랑이건 정이건 간에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주변인들의 말은 늘 적당히 받아들이고 비워내는 게 현명한 게 아닐까 싶군요!파이팅!! ^^*
모쪼록 바람되로 이루어지길 바라봅니다!! ^^* 이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