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 년의 생을 지나 당신과 내가 만났습니다
성전스님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삼천 년이라. 이제 고작 삼십 년을 살아낼까 말까 하는 나로서는 짐작조차 힘든 시간이다. 고작 삼일 전에 일어난 일, 만났던 사람 혹은 그와 나눈 이야기들을 선명히 더듬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일진대, 삼천 년이란 시간이기보다 거의 광대한 우주 그 자체의 흐름처럼 버겁게 느껴지는 듯하다. 내가 기억하건 못하건 간에 그 광대한 흐름을 타고 나와 연을 맺고 있는 모든 것, 모든 사람, 소소한 그 어떤 것들까지도 그리운 마음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지혜가『삼천 년의 생을 지나 당신과 내가 만났습니다』속에 담겨져 있다.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성전 스님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청취한 바 없지만, 그를 꽤나 유쾌한 사람으로 상상해본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때론 단순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해본다. 수행자의 삶이란 어쩌면 복잡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비워내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게 진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성전 스님을 통해 해보게 된다. 그래서 사진으로라도 뵌 적이 없지만 그 얼굴은 늘 미소가 만연하리라. 그러니 미소 스님이라는 별칭이 있는 게 아닐는지. 복잡하거나 따분하지 않은 스님의 말씀은 잔잔한 바다와 같은 고요를 닮았다. 
 

 

길은 끝을 전제하지 않는다. 길은 다만 가기 위해서 있다. 멈추지 않고 길을 갈 때 비로소 길은 그 의미를 회복한다. 길은 타성에 젖은 자는 갈 수 없다. 생을 포기하고 이상을 찾지 않는 자 또한 갈 수 없다. 길은 이상을 찾고 자신의 진실을 찾는 자만이 갈 수 있다. 길은 가는 자를 위하여, 모색하는 사람을 위하여 호흡한다.(p143) 


이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binsante님과 나눈 담소가 많이도 떠올랐다. 세 시간여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른 채 존재에 대해서,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서, 삶의 당위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눴었다. 위의 인용문은 내 가야 할 길과 꿈과 이상을 위해 binsante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과 잇닿은 구절이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만이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자신이 원하는 길에 시련도 있을 수 있고 절망도 있을 수 있지만, 그 길을 포기한 후 가해지는 고통과 절망에 비할 바가 아님을. 그런 길을 성실히 가다보면 혼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고.  


우리는 시간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가오는 어떤 시간 앞에서도 그냥 초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고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시련과 아픔이 있기에 인생은 살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련과 아픔이 없다면 우리들 마음은 얼마나 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이겠는가.(p190)  


김용규의『숲에게 길을 묻다』에서도 우리는 태어남에 있어서 선택할 권리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자연도 마찬가지. 주어진 시공간에서 주어진 조건에서 우리는 먼저 그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초연하다는 것은 태생의 불공평·불합리에 대한 집착이나 분노를 비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초연하게 삶을 마주할 때, 비로소 인생의 의미를 찾는 그 첫걸음을 진정 떼게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로 하여금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음과 막연한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생의 의미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을 둘러보고 비워내고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런 과정 없이 추상적이고 유명한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쫓아봐야 머리와 마음만 더 복잡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늘 변화해서 실체가 없고 인연 따라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존재의 참모습임을 알기에 떠남이 슬프지 않고 만남에 집착이 없다.(p265)  


존재의 참모습은 실체가 없고 인연에 따라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는 이 말이 참 와 닿는다. 나는 아직 어리석기 짝이 없는 중생이라 그런지 떠남이 슬프고 만남에 집착한다. 또한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다 못해 그걸 놓치지 않으려 머리와 마음은 늘 복잡하기 일쑤다. 결국 나는 무엇에 집착하는 것인가. 존재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기에 늘 만남과 이별에 있어서 상대방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서 간직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변화하여 실체가 없다는 존재의 참모습을 마음이 아닌 눈으로만 보려하고 확인하려하며 비로소 안심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아닌지.  


무던히도 해대는 내 모든 집착과 욕심은 결국 인생을 투철하게 살기 위함이었다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인생의 참된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오직 내 이기심으로 왜곡해 왔던 것이다. 나와 연이 닿은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소중한 존재의 참모습이 아닌 하나의 형상으로서 대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니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진다. 마음공부를 제대로 할 필요를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을 삼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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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며칠 전에 있은 binsante님과의 담소가 참 많이도 생각난 책읽기였다. ‘몽중삼매夢中三昧’와 ‘우수憂愁’라는 단어에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binsante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눈이 촉촉이 젖어드는 걸 볼 수 있다. 때마침 존재에 대해 골몰하며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 모습에서 더욱 그랬다. 존재에 대한 천착을 담아내는 그녀의 낯빛은 우수에 찬 한 송이 꽃을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전 스님의 말씀처럼 존재에 대한 성찰과 물음을 이어가는 사람은 진실로 우수에 찬 모습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처음 binsante님을 뵈었을 땐 단지 눈빛의 떨림만을 느꼈었는데, 이번 담소에서는 마음의 절실함까지 전해진 듯하다.  


몽중삼매. 꿈에서 조차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이 갈 길에 대해 골몰하고 몰두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몽중인이 아닐까 싶다. binsante님은 요즘 꿈에서도 여러 생각들을 붙들고 산다, 고 하신다. 아, 나는 어떤가! 대충 흉내만 내고 표정만 골몰하는 척 꾸미며 사는 건 아닌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무엇에 몰입한다는 것은 때때로 우리의 육신을 노곤하게 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값진 것은 그 과정이 아닐까 싶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무화과 잎이 떨어지는 그 그림자에 뉘어 쉰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실은 만족과 행복의 순간일 뿐이지 영원하지 않다. 존재에 대한 확신 혹은 실존에 대한 확신과 인식의 과정은 삶을 더욱 풍요롭고 살만한 곳이 되게끔 이끌어주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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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nsante님과 이 책의 저자 성전 스님 덕분에 더욱 풍요로운 책읽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일상은 참 오묘하고 신비롭다. 책이 내 손에 쥐어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리 화두를 던지듯 일상은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듯하다. 마침맞게 일상의 소소한 만남과 책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는 건 정말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 순간, 조금은 내 삶에 초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바라고 바라는 것에 대한 기도를 올리고 내 길을 모색하며 성실한 자세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면, 내게 와 닿을 모든 연들은 나를 돕기 위해 자연스레 빛을 발할 것 같은 확신이 어렴풋 느껴지기 때문이랄까.  


‡‡‡‡‡‡‡‡‡‡‡‡‡‡‡‡‡‡‡‡‡‡‡‡‡‡‡‡‡‡¨¨주워 담기¨¨‡‡‡‡‡‡‡‡‡‡‡‡‡‡‡‡‡‡‡‡‡‡‡‡‡‡‡‡‡‡

낙천적인 마음은 보배의 마음이고 비관적인 마음은 재앙의 마음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마음을 더 쓰고 있는가.(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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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누군가 곁에서 힘듦을 나누어 주고 따뜻한 한마디의 말을 건넬 사람이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사람이 사람에게 아름다운 그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사는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마음 하나만으로도 이토록 위안이 되는데 우리는 지금 사는 법을 너무도 모르는 것은 아닌지.(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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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같이 오래 있어만 주면 돼.’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아무런 바람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말이 바로 그 말이 아니던가. 그것이야말로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던가.(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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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다. 좀 모자란 듯 사는 사람들의 무딘 자리가 그립다. 악착같은 세상에서 좀 양보하고 손해 보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쩌면 그것은 새벽길을 비추는 별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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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욕구와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욕구와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행복한 찾아온다. 큰 나눔은 크게 버리는 것이고 그것은 큰 행복과의 만남을 의미한다.(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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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충만한 사람은 어디서나 당당하다. 그는 결코 생의 어떤 순간에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 어느 조건에도 걸리지 않으므로 그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삶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 모든 것을 놓고 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찾아온다.(p262~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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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발자국 소리도 없이
시간의 문턱을 넘는다.
가벼운 세월은
번뇌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늙음의 한숨에도 걸리지 않고
마른땅의 비가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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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06-24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 예뻐요.^^ 보통 사람들은 만나면 사물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잘 안하잖아요.;;

ragpickEr 2009-06-30 02:06   좋아요 0 | URL
너무 오랜만에 왔네요..^^*; 잘 지내시죠?

책 속에 사진들입니다..예쁘죠? ^^*
아.. 제가 만난 분이 화가셔요.. 이번 작품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생각이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렇게..^^*;;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