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찍다 - 사진작가 이광호의 쿠바 사진여행
이광호 지음 / 북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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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고 싶은 곳은 어디어디일까. 사실 여행하고 싶은 곳이 어디 한둘이랴! 러시아, 알래스카, 남극, 핀란드, 네팔, 쿠바, 인도, 볼리비아, 몽골 등을 포함해 히말라야처럼 되도록 사람 손이 덜 탄 곳을 가보고 싶다. 어떤 친구는 종종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또라이 아이가! 뭐 한다꼬 쌔가빠지게 고생하러 그까이 가노! 그런데 잘못 가면 총 마 죽거나 병 걸리가 죽는다 카두만.’ 그래도 나는 앞서 말한 곳들을 여행하고 싶다. 그냥 막연한 예감이랄까. 그곳이 아니면 구태여 걸음을 떼지 않을 것만 같은 확신이랄까.  


『쿠바를 찍다』는 순전히 내가 동경해마지 않는 쿠바여행에 관한 책이라 무작정 집어 들었다. 쿠바에 대해 아는 거라곤 내가 좋아하는 야구(아마야구)의 최강국이라는 것, ‘체’아저씨의 숨결이 깃든 곳이라는 것, 그냥 쿠바사람의 인상이 참 좋아 보인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가보고 싶고 책으로라도 접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단지 ‘쿠바’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 기분이랄까. 한 번도 가본 적 없어도, 아는 것도 없어도 설렐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 아닌가!  


이 책에는 컬러사진과 흑백사진의 비율이 3대 7정도 되는 것 같다. 흑백사진이 더 많아서 좋았다. 사진에 대해 무지한 나이지만 누군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사진은 마음으로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냥 컬러사진도 좋지만 그보다는 흑백사진을 볼 때 전해지는 그 느낌이 참 좋다.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오랜 시간이 흘러서 다시 봐도 변함이 없을 것만 같은 시공간을 품고 있다고나 할까. 더군다나 쿠바를 흑백사진이 더 어울릴만한 곳이라고 말한 저자의 생각과 노력이 묻어있는 사진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좋은 느낌이다.  


참! 이 책은 여태 내가 본 몇 안 되는 사진집과는 조금 다른 성격인 듯하다. 굳이 구분하자면 기행적인 면이 부각되는 책이라 하겠다. 기행문 형식과 닮아서 조목조목 상세하게 여행준비과정이나 여행시작순서에 따라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반면에 글에서 풍기는 방랑적 감흥(?)은 조금 부족한 듯하다. 달리 말해, 조금은 지루한 감도 없지 않지만 사진이 참 좋아서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닌 듯하다. 여행과 방랑을 굳이 정의할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은 여행의 전형에 가깝다. 나는 방랑이 좋다. 시작도 끝도 명확하지 않은 채 길 위에 선 그곳이 시작이고 끝인 방랑이 말이다.  


사진작가 이광호 이 사람! 생각보다 투덜거림이 심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말주변이 좀 부족한 건지 어떤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방랑객보다는 여행객이 좀 더 어울릴 법한 사람이랄까. 하지만 그가 담아온 쿠바의 모습들은 환상적이다 못해 거의 ‘환장하겠다!’ 싶을 만큼 마음에 든다. 그의 투덜거림이 조금은 거슬리긴 했어도 곧잘 울컥이는 기분에 잠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담아온 쿠바인들의 다양한 표정과 말레콘의 멋들어지는 포말, 그리움이 가득 배어있는 쿠바 풍경 때문일지라. 어느 카메라 광고를 보면서 저 곳은 어딜까, 했었는데 이 책 속에서 그 답을 찾은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다. 그가 담아온 말레콘은 거듭 말하지만 환장할 정도로 멋있다!  


중간 중간 저자는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한 그때의 상황과 감상, 그리고 카메라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 핀트니 셔터속도니, 구도니 하면서 잘 이해는 안가지만 그래도 조금씩 알려주는 부분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사진입문서’의 한 내용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때로는 부분이 전체를 말해주기도 한다.
그 상황, 그 사람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부분을 찾는 작업은 흥미롭다.(p87)
 

 

사진작가 최민식의 경우 ‘얼굴(표정)’이 그 사람의 전체분위기를 포함해서 인간 삶의 총체를 담아내기에 적합하다고 했다. 생의 한 단면을 여실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요한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사진작가의 사상이나 이념이 선명한 작가정신,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까지. 이런 요소들이 갖춰지고 비로소 빛을 발하는 스냅숏! 그 손맛을 느끼고 싶어 안달이 날 때도 있지만, 이건 뭐 아는 게 있어야지 원. 아무튼 저자의 경우 ‘발’에서 그것을 끄집어내기도 하더라는.  


책은 뒤로 갈수록 인물사진을 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해맑은 아이들의 사진은 절로 미소 짓게 한다. 또 연륜이 배어 나오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사진 역시 미소와 함께 소소한 전율을 일으키게 한다. 책은 이렇게 그리움이 짙어지는 오묘한 풍경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사색적인 성향이 짙어진다. 저자의 삶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관도 여행의 후반부로 갈수록 자주 만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굳이 방랑과 여행을 구분하자면 이 책은 여행의 전형에 가까운 듯하다. 그렇다고 그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내가 여태 본 몇 안 되는 방랑에서 길어 올린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편린들의 조합이랄까. 여행이면 어떻고 방랑이면 어떤가! 또 관광이면 또 어떤가! 그곳에서 사람들과 호흡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설레고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아, 쿠바여! 내가 가는 날까지 변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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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트가 정확히 맞는 사진이 좋은 사진일까? 아니면 느낌이 좋은 사진이 좋은 사진일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반드시 핀트를 정확히 맞춰야 한다’는 공식에 얽매이면 때로는 그 순간의 바로 그 느낌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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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이 함께 따라가야 한다.”
그렇다. 특히 인물 사진을 잘 찍으려면 마음을 열고 가까운 거리에서 찍어야 한다. 피사체에 과감하게 다가가야 한다.(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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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안을 들여다보니 빵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호기심에 계속 기웃거리고 있는데 안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신다.
한 손에는 빵공장에서 지금 막 배급 받은 따끈한 빵이 담긴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까부터 내가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이 배가 고파서라고 생각하셨나보다.
한쪽 다리가 없어 목발에 의지한 채 힘들게 몸을 이끌어 다가오시더니
따끈한 빵 한 덩이를 말없이 나에게 건네셨다.
이 빵을 받으면 할아버지의 빵이 하나 줄어들 것을 알기에 그의 내민 손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었지만, 이방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베푸는 그 따스한 마음을
단박에 거절하기란 더 힘들었다. 결국 나는 큰 미소를 보내며 그 빵을 받고 말았다.(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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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그 아기는 누구예요?”
“응. 내 손녀야.”
“지금 손녀 돌보고 계신 거예요? 날도 더운데 제가 맥주 한 잔 대접할까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쉿, 조용히 해. 우리 손녀 잠 깰라.
품 안에서 잠든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길이 마냥 따스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그냥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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