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아 - 월드원더북스 1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를 읽은 감동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호시노 미치오의 다른 책을 검색해서 보관함에 담고 어떤 책을 접할까 며칠을 고민했다. 일단 전투식량(?)이 넘쳐나는 관계로 두텁지 않은 녀석『곰아』를 선택했다. 전투식량 핑계는 농담 반 진담 반이고, 사실은 호시노 미치오의 목숨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곰을 만나고 싶었다. 그가 평상시 곰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얼마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노닐었는지 느껴보고 싶었다고 할까.  


『곰아』는 유아도서로 분류되어 있다. 두텁지 않고 책도 큼지막한 것이 보기에도 좋다. 중간 중간 호시노 미치오의 생각들이 짧게 수놓아져 있으며 사진과 절묘한 짝을 이뤄 더없이 아름답다. 사진은 정말이지 예술이다.『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에도 기꺼이 양면을 할애해 알래스카의 모습을 펼쳐놓긴 했지만,『곰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비유하자면 가히 영화관 스크린만한 사이즈?(^_^*;)  


띠지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언젠가 너를 만나고 싶었어.” 또 한 번 신비스럽고 오묘한 일상임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호시노 미치오의 또 다른 여행의 출발지, 근원인 곰을 만나보고 싶다고 느꼈었는데. 군더더기 없는 그 한 문장이 나를 그토록 설레게 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가 만나고 싶다 했던, 함께하고자 했던 곰을 나 역시 바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그 무엇이었다.  


나는 알았지.

너와 나 사이에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p6)  


어느 날, 이야기 속에 살고 있던 녀석이 불현듯 전철이 흔들리며 달리던 때, 건널목을 건너던 때에 되살아난 것이다. 그가 이야기 속, 자신과는 무관한 어느 곳으로부터 곰의 숨결을 느끼게 된 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원래부터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를 알래스카로 이끈 그 신호는 우연이라고 하기엔 대단히 강렬한 것이었다. 아주 멀리 떨어진 채 숨결을 서로 갈구할 만큼 필연적인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무심코 앞을 봤을 때

풀숲 속에
‘이거 어쩌지?’ 하는 얼굴로
네가 앉아 있었어.
나도 어쩔 줄 몰라
꼼짝도 않고 서 있었지.

 

서로 마주 본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 귀에 가늘게
너의 숨소리가 들렸어.(p22)  


바라던 순간이 현실로 다가왔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서로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곰은 그의 숨소리를 들었을까. 숨결을 서로 교환하며 어떤 예감에 휩싸였던 것일까. 마치 무엇도 바라지 않는 오래된 친구처럼, 말없이 서로 바라보아도 모든 걸 느낄 수 있는 연인처럼 둘은 조금은 수줍고 어색한 모습으로 한참이나 바라보고 또 바라봤는지도 모른다.  


밤이 되면 나는 조금 두려워.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 귀를 기울이지.
그럴 때면
옛날의 원시인이 된 것 같아서
짐승이 된 것 같아서
내 몸에 신비로운 느낌이 퍼져. 

 

밤이 되면 나는 조금 두려워.  


하지만 이 야릇한 느낌이 좋기도 해.(p28)  


어쩌면 호시노 미치오는 머지않은 운명의 시간을 ‘야릇한 느낌’으로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잔혹하면서도 아름답고, 강하면서도 연약하다고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자연의 본능이랄까, 그런 이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날이 언젠가 도래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불행이고 고통이겠거니 하는 건 그에 대해 우리가 갖는 멋모를 연민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이 야릇한 느낌이 좋기도 해.’  


그의 사진은 아주 시원하고 장엄하게 우리를 압도한다. 그리고 사진마다 그리움이 잔뜩 배어 있는 느낌이랄까. 함께 숨 쉬면서 알래스카를 거닐었으면서도, 늘 코앞에서 서로 존재를 알았으면서도, 늘 자고 나면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알래스카와 곰을 만났으면서도 호시노 미치오는 언제나 그리웠던 것 같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글귀가 어떤 느낌인지 사진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앞표지의 곰 사진은 심심한 표정인데 반해, 뒤표지는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곰 부자인지 곰 모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큰 궁둥이와 아주 작은 궁둥이가 참으로 다정하게 보인다. 그네들의 뒷모습, 발걸음, 모든 일상의 언저리에서 그가 느껴진다.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들 속에서 언제나 여행 중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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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06-03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나고 싶어요. 가슴떨리는 말이네요.^^
책에서 나오는 말이군요.

ragpickEr 2009-06-04 10:05   좋아요 0 | URL
만나고 싶으시군요..^^* 책 표지에 적혀 있어요.. 헤헤..
가슴 떨리는 말..저는 이 책을 보고 난 후에야 이 말이 이렇듯 애틋한 말이구나..느꼈어요..^^*
좋은 날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