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 가는 북한 풍경 : 1950-2008
임영균 지음 / 눈빛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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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언제 그리도 변덕스러웠냐는 듯이 말갛게 웃는다. 말간 웃음꽃 피우던 오월의 오늘 역시 잔인한 달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향내 가득한 오월이 저물고 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짝사랑했던 열 살 연상의 교회선생님과 꼭 닮은 장영희 교수, 젊어서부터 노인연기만 전담하며 오로지 일에 묻혀 지내다 간 배우 여운계, 5공 청문회와 3당합당 반대에 핏대 세워가며 강단 있던 모습과는 달리 한없이 유약한 마음 숨긴 채 속 앓다 세상을 등져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 얼마 전 있었던 아는 동생의 모친상까지, 이 모두가 잔인한 오월 속으로 걸어 멀어져간다.

경주행 버스에서 펼쳐든『변해 가는 북한 풍경』에서 마가렛 버크-화이트의 두 번째 사진을 보던 중이었다. 부디 이제 남은 며칠은 무탈하겠거니 했는데, 문자 한 통이 날아들면서 내 바람은 잔인한 향내 속에 묻히고 말았다. 내가 살아온 햇수의 반을 함께한 친구 녀석의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문자와 마침 내가 펼쳐 보고 있던 그 두 번째 사진 속 상여를 지고 가는 상여꾼들의 모습은 어느새 잇닿아 있었다. 오묘하고 절묘하다고 하기엔 서글픈, 그 알 수 없고 표현할 길 없이 밀려드는 감정선에 속수무책일 뿐이다.

『변해 가는 북한 풍경』은 1950년에서 2008년 최근까지의 북한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국내외 이름나있는 패기에 찬 사진가들의 북한 풍경을 담고 있으며, 대구포토비엔날레 특별전 중 하나였던「변해 가는 북한 풍경展」사진을 모아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촬영 장소는 대체로 몇몇에 국한돼 있다. 북측이 마련한 그 제한된 장소들은 대표적으로 평양 풍경이 가장 많다. 그리고 개성, 함흥, 청진, 묘향산, 북청군, 금호지구, 노동자구, 원산, 강서고분 등의 풍경이 소수이지만 인상 깊다.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색깔과 기술로 당시 풍경을 함축적·상징적으로 전하려는 노력이 진하다.

인상 깊었던 사진이 몇몇 있는데 최근 사진보다 그 이전의 사진에 더 매료되었다. 마가렛 버크-화이트의 상여와 상여꾼들, 크리스 마커의 군사분계선 팻말 위에 앉은 새와 강서고분에서 찍은 꼬마, 김희중의 황해도 어디쯤에 펼쳐져있을 황금빛 들녘, 야니스 콘토스의 칼리슈니코프를 나란히 든 채 평양거리를 지나는 소녀들에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누구의 상여일까, 저 새는 비둘기일까 아닐까, 황금빛 들녘이 펼쳐진 황해도는 무릉도원이 아닐까, 저 꼬마는 지금쯤 살아있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칼리슈니코프를 든 채 내게 시선을 던지는 소녀의 복잡한 표정은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일까.

김희중의 ‘무릉도원’과도 같은 사진에서 나는 뒤숭숭하던 마음을 잠시 뉘었다. 영롱하고 오묘한 풍경색과 그로부터 한없이 밀려드는 평화로움은 나를 잠시나마 기분 좋은 나른함으로 이끌었다. 아낙들, 꼬마, 소, 염소 그리고 눈부신 들판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했다. 그네들 곁에 섞여 들어 황금빛 태양 아래 편안히 몸 뉘여 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특히나 이 잔인한 오월은 더더욱 그런 충동이 인다. 향기로 날릴 듯 한 멋들어진 풍경 덕분에 조금의 위안을 삼아본다.

나는 착각 속에 있었다. 북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안타까움’과 ‘불쌍함’, ‘가련함’ 등등이다. 이러한 연민이 착각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누구’와 ‘누구’가 되어 서로를 연민하고 혹은 동경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싶다. 한 몸이 둘로 갈라진들,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간들 결코 ‘누구’와 ‘누구’로서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를 그리워하고 때론 동일한 불합리함과 부조리함이란 시선을 주고받을 뿐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분열과 통일에 대해 어느 강의 시간에 들은 적이 있다. 한반도만이 가지는 특수성과 이 분단 상황을 ‘분열과 통일’이라는 이론을 그대로 접목시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그것이 꼭 남과 북의 통일에만 국한한 것은 아니다)이 있다면 분열이라는 뼈아픈 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민’과 ‘관’의 분열, 제도권내의 분열, 민족의 분열 그리고 소소한 많은 분열들까지 품고 살아온, 앞으로도 살아갈 역사 앞에서 통일이란 달콤하고 편안한 휴식이요, 구원이지 않을까 싶다.

분열은 죽음 혹은 초죽음이다. 분열된 당사자들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분열은 고통이고 죽음이다. 새로운 삶 혹은 새로운 생명수를 갈구하는 ‘분열자’들은 통일을 염원하기 마련이다. 그 통일이 멈출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안에서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이건,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철옹성의 탄탄한 구원이건 간에 통일은 우리가 일궈야할 소망이고 바람이다.

민과 민, 민과 관, 권력과 권력, 남과 북, 국가와 국가 등등 어떤 곳에서도 분열은 혼란만을 야기할 뿐임을 안다. 더러는 죽음을 초래하고 그 앞에 후회하고 슬퍼하고 노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분노는 여지없이 분열을 가속화할 뿐임을 안다. 하나가 되는 것, 한마음으로 바라고 바라는 것, 그저 먼저 손 내밀어 품을 수 있는 작은 여유야말로 분열을 종식시켜나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잔인한 오월이 저물고 있다. 2009년 아래, 더 이상 이런 혹독한 시간이 없기를 바라본다. 사분오열의 지리한 역사의 선상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갈구함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좀 더 목소리를 높여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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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06-01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어젯밤 읽어봤답니다.^^ 잔인한 오월이 가는군요. 오월아 안녕.^^

ragpickEr 2009-06-01 08:18   좋아요 0 | URL
잔인한 오월..오늘부터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해요..^^* 후훗..
저 역시 '오월아 안녕~' 유월의 시작을 활기차게 맞으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