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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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마냥 하늘로 날아가고픈,
하지만 도시 한구석의 변두리 다음 정거장에 내려앉을 수밖에 없는 전철 안.  

 

사람들은 길쭉하게 앉아 있고 시무룩하다.
반면 창밖의 풍경은 아직 이른 봄날이다.  

 

춥고 흐린 날씨에도 밝고 정겹게 보이는 동네다.
도시는 전체적으로 우중충해도 그 가운데 희망이 있다. 

 

그 희망 주변을 전철이 맴돈다.  
일터에서 가정으로. 
....

작가노트|본 걸 그린다|中  


학교 도서관 6층은 자연과학자료실이다. 다른 층보다 조용하다는 이유로 6층까지 꾸역꾸역 올라간다. 도서관에서 잠만 자다 오긴 하지만 어쨌든 조용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앉은 자리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흥미로운 책이 없다. 컴퓨터 관련 책, 대수·기하학 및 공업수학 등의 책만 보인다. 수면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둘 중 하나다. 잠식당하거나 몽유병환자처럼 서가를 휘젓고 다니거나.  


서가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웬 만화책(?)을 발견했다. 사진기술에 관한 서가와 체육관련 서과 사이에서《을지로 순환선》을 만났다. 책은 크고 무거웠다. 가격을 보고는 ‘더럽게 비싸네!’라고 욕하면서. 만화책을 거의 안 보고 살다가 얼마 전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이런 만화책은 처음이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한 컷으로 이루어진 만화이긴 한데, 그 속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는 듯 하달까. 어느 장면이 아닌 풍경을, 순간이 아닌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아주 오밀조밀한 그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려고 한 노력이 물씬 풍기는 그림이야기.  

 

최호철의 말처럼《을지로 순환선》<은하철도 999>처럼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분명 희망이 깃들어 있다. 시무룩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의 모습이 절망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지만, 이를 품은 풍경들은 화사하진 않아도 아주 정겨운 우리네 생활반경이다. 작가의 시선이 슬픔이나 절망 따위에 지친 사람들의 생활과 영혼을 주시하는 듯하지만, 그림 아주 구석진 자리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들풀, 들꽃이 정겹게 웃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온통 잿빛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는 세상과의 철저한 격리상태에 빠지기 때문이 아닐까. 단골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의 사심 없는 웃음,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구슬땀 흘리며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는 많은 이웃들의 모습은 늘 잿빛 세상 속에 포함되지 않으니까. 이처럼 최호철의 세밀한 터치는 우리가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늘 잊고, 잃어버리는 것들까지 되살려낸다. 그렇다고 온통 희망에 찬 그림과 이야기만은 아니다. 단지, 도처에 우리 눈에 들지 않는 희망이 있다는 걸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내보라는 듯이, 꼭 그런 느낌의 이야기다.

 

이제는 더 이상 봄을 기다리지 않는 땅.
피우지 못할 꽃 대신
돈이 자라는 땅.
020 · 021|돈이 자라는 땅 - 판교 택지 개발지구|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이보다 더 잔인한 폭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늘 마음으로만 봄을 찾고 기다리는 것 같다. 흙 한 줌 묻힐 기회조차 상실해버린 채, 스스로 그런 기회를 등한시하면서 진실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니. 때론 가증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봄은 그저 상상의 세계, 동경의 세계일  뿐이라고. 아스팔트가 내 몸과 건강을 좀먹어도 돈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의학의 힘을 빌어서라도 오래 살 수 있다고. 돈내음을 봄내음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고. 어느 덧 봄은 우리 오감과 결별한 듯하다.  

 

도시는 자신을 세워 준 이들의 터전을 숨기며 자란다.
더 커지면 아예 바깥으로 밀어내 버린다.
022 · 023|우리 사는 땅|  

 

실컷 키워줬더니 나가라고 등 떠미는 듯한 도시. 그렇게 쫓겨나다시피 어느 구석진 곳에 웅크린 채 버려진 사람들, 그리고 세월들. 그들의 절망과 애환 속에서 피어난 꽃, ‘아스팔트 킨트(Asphalt Kind)’ 그렇게 피어난 꽃들은 삼삼오오 몰려간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도시로 본능처럼 나아간다. 제 핏속에 녹아 있는 부모들의 바람처럼 도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는 도시로부터 추방당한 부모들의 터전까지 밀어내려고 오늘도 열심히 구슬땀을 흘린다.

 

건물들에 포위된 동네 뒷산에 꽃 가득 필 때조차 
꽃내음 한번 가까이 즐길 틈 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꽃피는 나이의 학생들.
024 · 025|동네 뒷동산|

 

책 한가득 든 것도 아닌데, 한없이 무거운 가방이다. 그 때문인지 고개 들어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생각을 못한다. 지천에 꽃이 피어나고 꽃내음 가득해도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알 리 없다. 꽃은 늘 문제집의 아름다운 시 속에 잠들어 있다. ‘~를 위해서’ 그 꽃을 관찰할 뿐이다. ‘~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흔들어 그 꽃을 깨우지 않는다. 흔들어 깨우지 않고서 오직 ‘~를 위해서’ 만나는 잠든 꽃에서는 꽃내음이 날 리 없다.

 

저녁 뉴스 시간에 잠깐 비춘 물난리소식.
그 시름도 복구도 잠깐 만에 해소되었으면···
032 · 033|수해지역|

 

내가 사는 이곳은 비 피해로 인한 물난리가 나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통해 듣고 보는 것이 전부다. 장마철 내내 빗방울보다 마른장마의 뙤약볕을 더 자주 본다. 그래서 종종 내가 사는 이곳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가 매년 물난리로 고통 받는 이들의 심정을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다. 잠깐 비춰주는 그들의 시련이 마음까지 물로 젖어버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만약, 내게 기이한 능력이 생긴다면, 그들에게 이곳의 마른장마를 빌려주고 싶다.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들.
더 나은 조건의 포장을 위해
사각의 틀에 기약 없이 하루하루를 가두는
공공도서관의 아침.
046 · 047|구립도서관|

 

대학도서관의 아침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별반 다를 게 없다. 삼팔선과 사오정이 조금 적다는 것 말고는, 이제 막 해방감을 맛보는 신입생들 말고는. 사각의 링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적막한 공기 속으로 전해지는 오묘한 견제랄까. 이태백을 넘은 자는 삼팔선으로, 삼팔선을 넘은 자는 사오정으로. 끝에 남는 건 무엇일까. 지금 이 시간, 이 시절을 사각의 링에서 보낸 후 나는 무엇을 얻게 될까. 최선을 다하지도 않은 채 내 생각은 늘 저만치 앞서 있다.

 

쓸어낸 겨울 밑에서
숨었던 봄이 보이네..
070 · 071|봄 청소|

 

아직 마음속으로 겨울을 밀어내지 못했는데, 봄은 교정을 뒤덮고 있다. 도서관 안 사각의 틀 속에도 봄이 스며들었는지 연신 꾸벅씨(?)가 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꾸벅이며 봄을 받들고 겨울을 밀어낸다. 반팔로도 이겨낼 수 없는 봄의 기운들. 생각보다 달콤한 그 맛이 그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연신 꾸벅이다 집에 왔는데, 또 꾸벅이는 걸 보면.  

 

추워서 굳어진 바깥 마음이
새어나온 불빛 온기를 찾아온다.
백열등 밑에서 풀리는 얼음장 기억들, 관계들.
092 · 093|포장마차|  

 

술을 끊다시피 하고 살고 있지만 술자리만의 분위기는 끊지 못하는 듯하다. 더군다나 오이와 당근, 어묵국물이나 콩나물국만으로도 술이 절로 넘어 갈 것만 같은 포장마차의 추억은 늘 흐뭇하고 정겹다. 목청껏 시끄럽게 떠들어도 용서가 되는 곳, 다닥다닥 지하철 의자에 앉은 것처럼 죽 늘어앉고 둘러앉은 채 하루를 달래는 곳, 카드나 현금영수증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곳, 바지 호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두 손이 따뜻하게 덥혀지는 곳, 그래서 늘 그리운 곳, 아름답게만 기억하고픈 그런 곳.

 

새해 아침이라고
뭐 특별히 바뀌리라 기대도 않지만
바람이 있다면
올해도 무사히 일할 수 있도록···.
100 · 101|신년의 버스 정류장|

 

그러고 보니, 올 한해 뭔가 다짐한 게 없는 것 같다. 담배를 끊어야지, 취업을 해야지, 자격증을 따야지 등등. 2009년은 참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온 것 같다. 조금은 게을러져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했었다. 때가 되면 잘 풀리겠지 하고. 올해도 건강하게 잘 살아보자. 무사히.

 

버릴 게 없던 만큼
살 것도 없던 시절이
아직 몸에 익은데
사는 만큼 버릴 게 넘치는
물건투성이인 세상이 얄궂다.
122 · 123|분리수거|

 

방 정리를 하면서 ‘버릴 것’이라고 베란다에 내다 놓은 것들이 며칠이 지나고 나면 다시 내 방에 있다. 엄마도 아빠도 ‘버릴 게 없던 만큼 살 것도 없던 시절이 아직 몸에 익’어서 그러신가 보다. 늘 구닥다리 같은 걸 왜 못 버리게 하냐고, 속으로 얼마나 짜증을 냈는지 모른다. 남을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고심하는 ‘생각하기’에 앞서, 내 가족부터 알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싶었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이 분리수거 당하는 그런 얄궂은 꿈을 꿀 것만 같다.

 

평생을 쉼 없이 일했건만
저 많은 집들 중에
내 집은 없는 걸까··.
130 · 131|집|

 

도시를 키워주고 밀려난 이들의 설움. 그것은 배신감 따위의 것이 아니라 지친 내 몸 하나 맘 편히 뉘일 곳이 없다는 한(恨)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찌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고작 어릴 적 세 들어 살던 때를 회상하며,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내 부모님도 이런 설움으로 사셨겠지. 내가 울고 떠들기라도 하면 죄진 사람처럼 전전긍긍하셨겠지. 집이 없다고 모두가 안타까운 건 아닐 것이다. 단지, 평생을 쌔가 빠지게 일하고도 여전한 삶, 그런 세상이라는 게 안타까운 것일 테지. 평생을 적당히 일하고 쉬어 가면서, 집이 없어도 행복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이 풍속화에 등장하는 공간은 내가 다녀 본 곳들이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 생활 반경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취재를 위해 적극적으로 시간을 많이 낸 흔적이 별로 없었던 걸 들킨 것 같다. 특별한 장소도 없고···. 부끄럽지만 그것은 게으름 탓이다. 하지만 이 풍속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에너지에는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그렸다. 그 에너지를 통해 관계의 숨바꼭질이 시작되니까.
168 · 169 작가노트|본 걸 그린다|최호철 中

 

때론 망원경처럼, 때론 현미경처럼 우리들의 생활 반경을《을지로 순환선》은 담고 있다. 게으름 탓이라고 하기엔 최호철의 그림이야기(풍속화)는 매우 세밀하고 섬세하다. 잘 찾아보면 내 얼굴도, 내 모습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혹은 윌리인지 월리인지가 숨어 있을 것도 같다. 우리의 좁디좁은 생활 반경에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버리는 것까지 죄다 모아서 빼곡하게 그려놓고는 ‘희망’을 저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디디며 생활하는 바로 이곳에서 찾아보라는 듯하다.

 

나보다는 너를 찾고, 너를 보고, 너를 이해하고, 너와 소통하면서 희망의 에너지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잿빛 속에 감춰진 소소하지만 말 그대로 ‘살맛나는’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최호철이 말하는 ‘관계의 숨바꼭질이 시작’되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네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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