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읽는 다신전 - 차 생활 입문을 위한 최고의 고전
전재인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술 한 잔 해야지!’가 ‘밥 한 끼 묵자!’로 변했음을 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차 한 잔 해야지!’로 연신 바삐 사는 친구들을 꼬여보지만, 그 여유란 게 쉽사리 나지 않는가보다. 막상 그렇게 붙들듯이 꼬여내고서도 편안하고 느긋하게 차 한 잔 마실 공간이란 게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기껏해야 복닥거리는 커피전문점에 자리를 트는 게 고작이니까.

차茶라고 해봐야 나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내 눈에는 일반의 커피가 가장 손쉽고 단순하게 찾을 수 있고 부를 수 있는 차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외에도 몇몇 차라고 불리는 종류들을 접해보긴 했기만 대게 인스턴트식이었다. 그나마 내 똘끼(?)를 좋게 봐주신 교수님(나무인간 강판권 교수) 덕분에 다도茶道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과 그에 맞춰 슬금슬금 흉내를 내본 게 전부이다. 내가 무슨 차를 마셨는지도 조차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만한 여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무얼 바라 허둥지둥 생활하고 있는가, 는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직접 차 한 잔 마실 호사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요즘이기에 차와 관련된 책을 접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더군다나 강의 시간에 들어본 다경茶經이나 다신전茶神傳을 어설픈 호기심만으로 접해보는 것 또한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운이 좋았던지 서가산책을 하던 도중에 뜻밖의 도우미(?)를 만났는데, 그게 바로『사진으로 읽는 다신전』이다.

이 책은 초의선사가 지은 다신전을 일반인들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엮은 책이다. 원문을 옮기되 짤막하게 옮기고 직역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부담이 덜하다. 또한 사진이 매 장마다 삽입되어 있어서 더더욱 내용을 이해하기 편리하다. 나 같이 차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도우미가 있을까 싶은, 굳이 차 생활에 들어서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바쁜 일상에 치이면서 작은 여유조차 없이 허둥지둥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촐하게나마 여유라는 ‘향기’로 위로해 줄만한 책인 듯하다.

또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품의 형태로 접하게 되는 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면서 차를 계절에 따라 적절하게 잘 마시는 법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법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달리 말해서, 차가 가진 좋은 성질들을 보다 잘 우려내서 되도록 그 진가를 제대로 맛 볼 수 있게끔 한다고 할까.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이런 기술적인 면에 대한 부분도 상술되어 있어서 차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새삼 진중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밖에도 매 장마다 자연이 주는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다신전이 가진 가치요, 매력이 아닌가 싶다. 차를 우려낼 때 불을 알맞게 조절하는 것에서 중화中和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차를 넣는 순서에 있어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순리를 되짚어보게 된다. 또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이 단순한 행위나 취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 한 잔으로 태어나 내 손에 들려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과정들 속에 녹아있는 정성을 생각게 하고 차를 이루는 불, 물, 바람, 빛, 찻잎 등이 서로 다투지 않고 제 역할에 충실함으로 인해 비로소 좋은 차 한 잔을 낳게 된다는 단순하지만 아주 의미 있는 교훈까지 맛보게 된다.

어쩌면 자연이 주는 오묘함이란 제 본분을 지키면서 상생相生하기 위해 정당하고 이로운 경쟁을 근본으로 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좋은 차 한 잔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제 본분을 다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이치가 그 바탕에 있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북돋울 때야말로 좋은 차 한 잔에 녹아 있는 향과 맛처럼 모든 이들이 이롭게 다투고 서로 존중하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윽한 정취로 가득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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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火候화후; 불의 조절∥
烹茶旨要 火候爲先(팽다지요 화후위선)
爐火通紅 茶瓢始上扇起要輕疾(노화통홍 다표시상선기요경질)
待有聲 稍稍重疾(대유성 초초중질)
斯文武之候也(사문무지후야)
過於文則 水性柔 柔則 爲茶降(과어문즉 수성유 유즉 위다강)
過於武則 火性烈 烈則 茶爲水制(과어무즉 화성열 열즉 다위수제)
皆不足於中和 非烹家要旨也(개부족어중화 비팽가요지야)

차 생활의 첫째는 불을 잘 다루는 일이다.
화로의 불이 활활 피워지면 주전자를 위에 놓고 부채질을 가볍고 빠르게 하고,
끓는 소리가 나면 부채를 더욱 짧게, 빨리빨리 부친다.
이것을 불과 물의 조절이라 한다.
불이 약하여 물이 덜 익으면 차의 맛이 나타나지 않고,
불이 너무 강하면 물이 너무 익어 차의 맛을 제압한다.
불이 약하거나 너무 강한 것은 중화를 잃은 것으로, 차(茶) 우리는 방법이 아니다.(p65~p71)

∥⑨投茶투다; 차 넣기∥
投茶行序 毋失其宜(투다행서 무실기의)
先茶湯後 曰 下投(선다탕후 왈 하투)
湯半下茶 復以湯滿 曰 中投(탕반하다 부이탕만 왈 중투)
先湯後茶 曰 上投(선탕후다 왈 상투)
春秋中投 夏上投 冬下投(춘추중투 하상투 동하투)

차를 우릴 때에는 그 정해진 순서를 잘 따라야 한다.
차를 먼저 넣은 다음 탕을 나중에 부으면 하투(下投)요,
물을 반쯤 붓고 차를 넣은 다음, 다시 물을 붓는 것을 중투(中投)라 하며,
찻물을 먼저 붓고 차를 넣는 것은 상투(上投)라 한다.
봄, 가을에는 중투(물-차-물), 여름에는 상투(물-차), 겨울에는 하투(차-물)로 한다.(p120~p123)

∥⑬味미; 차의 맛∥
味 以甘潤爲上 苦滯爲下(미 이감윤위상 고체위하)
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이 좋으며, 떫고 쓴 맛이 있는 것은 나쁘다.(p143)

∥⑯品泉품천; 물의 품성∥
茶者 水之神 水者 茶之體(다자 수지신 수자 다지체)
차는 물에 색향미(色香味)를 주고, 물은 차의 색향미(色香味), 곧 다신(茶神)을 담는 몸이다.(p155)

眞原無味 眞水無香(진원무미 진수무향)
진수(眞水)는 본디 맛도 향기도 없다.(p167)

∥⑱貯水저수; 물의 저장∥
飮茶惟貴夫 茶鮮 水靈(음다유귀부 다선수령)
茶失其鮮 水失其靈 則 與溝渠何異(다실기선 수실기령 즉 여구거하이)
차 생활에서 소중한 것은 오직, 차가 변하지 않아야 하며, 물의 기운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가 변질되고, 물이 싱그러움을 잃었다면, 이는 곧 도랑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p181)

∥茶衛다위; 다도의 요체∥
造時精(조시정)
藏時燥(장시조)
泡時潔(포시결)
精燥潔 茶道盡矣(정조결 다도진의)

차를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는 건조하게 하며,
달일 때는 청결하게 해야 한다.
정(精) · 조(燥) · 결(潔)이 다도(茶道)의 전부이다.(p194~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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