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직동 보림 창작 그림책
한성옥 그림, 김서정 글 / 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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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감기로 앓다가 불현듯 학교 도서관이 그리웠다. 대충 씻고 약 한 봉 입에 털어 넣고는 학교로 걸음을 뗐다. 인도보다 차도가 좀 더 부산한 저녁, 아직 조금 산산한 바람이 내 발길을 막았다 밀었다 한다. 갈피를 못 잡는 듯 한 바람과는 달리 나는 줄곧 앞으로 걸었다.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주변 풍경과 사람들 틈을 지나 도서관에 도착했다. 아주 낯설어 생소하리만치 느껴지는 건, 학생들이 시험이 끝나 죄다 빠져나간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아주 많이 그리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한 서가를 휘젓고 다녔다. 햇귀님이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편집자 분투기』를 찾으려는데, 책이 그 자리에 없다. 안 온 며칠 동안 서가를 정리했나보다. 검색하려다가 그 주변부를 샅샅 훑었다. 그러길 10여 분, 조금 크고 아주 얇은 그림책『나의 사직동』을 만났다. 낯설던 이 공간에 익숙해질 때쯤, 뒤바뀐 서가에서 낯선 책 한 권과 그렇게 만났다.

사진작가 김홍희 씨는『방랑』에서 ‘헤어진 모든 것들은 사랑한 것들이고, 사랑한 모든 것들은 낯선 것들이다. 우리는 낯선 것들과 만나 사랑하고, 낯선 것들과 이별한다.’고 말했다.『나의 사직동』은 그 ‘낯선 것들’에 관한 추억이다. 내가 ‘사랑한 것들’에 대한 기억이고, 그것이 다시금 아주 ‘낯선 것’이 되어 나타나 ‘이별’이라는 시간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누구나가 이러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다 낡아빠진 추억 한 장일지라도, 그것이 지금은 아주 낯선 것일지라도 한때 사랑했던 것임은 부정할 수 없는,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다.

엄마 어릴 때 이사 와 내가 열한 살 될 때까지 우리 가족이 살던 집, 사직동 129번지. 봄이면 라일락이 향기로웠고,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빛났습니다. 주름살처럼 자글자글 벽에 생긴 금은 무성한 담쟁이 잎이 가려 주었습니다.(p7)

어느 날 갑자기 동네에 낯선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도심재개발 사업시행인가득? 재개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말이라고 엄마는 설명했습니다. 우리 동네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리라고요. 아파트 사는 친구가 부러운 적도 있던 터라, 나는 조금 들떴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이제 아파트가 생긴다!(p17)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다세대 연립주택에서 살았다. 그곳은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라일락이 향기로웠고’,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빛나던 곳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주름살처럼 자글자글’한 담벼락이 있었고, 개미굴처럼 골목이 아주 많은 곳이었다. 지금보다는 훨씬 사람 사는 냄새가 짙은 곳이었으며, 골목 어귀마다 동네 꼬마들이 왁자지껄한 곳이었다. 도로 저편으로는 아파트가 있었고, 그곳에 사는 녀석들 중에 내 친구들도 많았다.

때때로 아파트 사는 녀석들이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열망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내부의 깨끗한 시설이 종종 부러웠었고, 공부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공간’이 부러웠을 뿐이다. 나는 골목대장이었고, 아파트 친구와 ‘非아파트친구’ 간에 벌어지는 어떤 대결(?)에서도 우리는 지지 않았다. 야구도, 축구도, 딱지치기도, 구슬치기도, 오락실 게임도, 심지어 공부까지도. 그곳을 떠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금도 내게 그곳은 ‘우리 동네’로 남아있고, 지금도 종종 들르는 ‘우리 동네’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깡그리 사라지지는 않은 채 나를 반기곤 한다.

어느 날, 나는 그러다가 내친김에 골목길로 계속 걸었습니다. 자동차 소리는 잦아드는데 진돌이 컹컹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눈앞에 높은 쇠 담이 나타났습니다. 담은 우리 동네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주춤주춤 걷다 보니 커다란 대문이 끼익 열리며 트럭이 나왔습니다. 얼핏 안을 들여다본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 집도 없고, 백 계단도 없고, 감나무도 없었습니다. 커다랗게 입을 벌린 구덩이 위로 얼기설기 엮인 철근과 높다란 타워크레인만 버티고 있었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굴착기가 쇠갈퀴 손으로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구덩이가 푸욱 파이는 것 같았습니다. 쇠갈퀴가 뱃속을 긁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손으로 배를 꾸욱 눌러야 했습니다.(p29~p31)

추억할 수 있는 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곳이 내가 사랑했던 ‘우리 동네’라면 어떤 기분일까.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지, 라는 입버릇으로는 절대 위안 삼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동네’가 수술대에 올라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둘씩 잘려나가는 추억들과 새로 세워지고 변해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주인공(?)은 ‘쇠갈퀴가 뱃속을 긁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에 구덩이가 푸욱 파이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아픔과 고통, 슬픔을 견디는 연습을 해온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 낯선 세상 속 낯선 것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게 가능하겠는가.

나는 이제 사직동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사직동 129번지가 아니라 모닝팰리스 103동 801호입니다.
단지 안 길은 널찍하고 반듯합니다. 나무에, 꽃에, 분수가 춤추는 작은 공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팽이 돌리고 인형 놀이 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 우리는 이제 가위바위보로 계단 올라가기는 하지 않습니다.(p35~p36)

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여기는 사직동이지만, 나의 사직동은 아닙니다. 나의 사직동은 이제는 없습니다.(p38)


『방랑』에서 김홍희 씨는 ‘방랑 역시 낯선 것들과의 조우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가진 애틋한 추억들은 삶이라는 방랑 속에서 낯선 것들과의 조우를 통해 되살아난다. 추억이 예전 같지 않은 현실을 통해 재현될 때, 우리는 신음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고통스럽고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나 살던 정이 넘치던 곳이 지금은 깡그리 무너져버렸다고 한들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닌 것, 낯선 그 모습 위로 나 가진 애틋한 추억을 그려낼 수 있는 힘, 그래서 낯선 것도 사랑할 수 있는 지혜를 갖는 것,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삶 속에서 낯선 것들과 뒤섞여서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종종 나 보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 그 낯선 것을 거슬러 오르며 사랑하고 이별한 추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무엇과 그리 뜨겁게 사랑했으며 무엇을 그리 애틋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지금은 무엇과 사랑에 빠져 있으며 얼마 전 무엇과 차갑게 이별했는지를 더듬다 보면, 혹시라도 알게 될는지도 모른다. 내가 여태껏 사랑하고 이별한 것들, 앞으로 사랑하고 이별하게 될 그 ‘낯선 것’들이 오래전부터 전혀 낯설지 않았던 바로 그 ‘추억’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라지만, 때론 낯설게 느껴지는 세상이라지만, 더듬다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닐 것 같다는 막연함이 밀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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