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점만점 1학년 - 공부 잘하고 친구와 잘 지내는 민우는, 동화로 배우는 학교생활 1 백점만점 1학년 시리즈 2
고정욱 지음, 유영주 그림 / 글담어린이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백점만점 1학년』은 ‘입학입문서(?)’라 할 수 있다. 물론 요즘은 아주 어릴 적부터 유치원을 다니는 터라 굳이 이런 책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학교에 대한 괴소문(?)이나 어떤 환상(?)을 곧잘 심어주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가 갖고 있는 일말의 두려움이나 긴장감을 해소해 준다는 차원에서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두려움을 설렘으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준비동작’, 유치원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모습을 한 학교에 대해 간결하게 이야기 해준다.

구체적으로 선생님이 갖는 이미지(예컨대 ‘도깨비 선생님?’ 나 때는 ‘호랑이 선생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편식에 대한 선생님의 기발한 대처(나 때 1학년들은 오전 수업만 있었는데), 매일 해야 하는 숙제에 대해서, 친구와의 사귐에 대해서, 받아쓰기 시험, 스티커 경쟁(나 때는 마분지 뒷장 아래에 번호순대로 적어서 아파트 층수 올리듯 매직으로 표시했었는데) 등등 비교적 세세한 부분까지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 학교라는 환경적인 부분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회화’들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저자는 친숙함과 기발함으로 학교생활을 그리고 있다. 선생님은 이웃에 살고 있기에 ‘도깨비’가 아님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당근과 콩을 가려 편식하는 아이들의 습관을 바로 잡기 위해서 담은 창작동화는 참으로 기발했다. 교우관계에 있어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스티커를 받기 위해 냉혹한(?) 경쟁에 내몰릴지도 모를,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를 아이들을 훈훈함으로 이끈다고 할까. 아무튼 여러 가지로 고민한 흔적들이 담겨 있는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던 날,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분명 엄마랑 함께였던 것 같다. 제일 구석진 곳 병설유치원과 잇닿아 있던 건물 1층. 1학년 2반 교실로 들어가 뒤편에서 두어 줄 앞자리에 앉았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러고 보니 왼쪽 가슴께에 명찰을 달고 있었던 것도 같다. ‘1학년 2반 번호 1번 ragpickEr(?)' 명찰을 달고서 꺼벙한 자태(?)를 뽐내며 멀뚱멀뚱 초조한 모습으로 긴장한 모습으로 첫 날을 보냈던 것 같다.

학교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 입학하기 전부터 학교는 늘 내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철봉도 하고 정글짐에서 술래잡기도 했다. 드넓은 운동장에서 흙먼지 뒤집어쓰면서 공을 쫓고 숨이 꼴깍 넘어갈 만큼 열심히 달리기도 했다. 구름다리를 누가 먼저 건너가는지 시합을 하고 무개지 다리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했다. 그네에서 공중제비(?)를 돌기도 하고 ‘망구(구슬치기의 일종)’와 자치기 등 여러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자연스럽게 학교는 친숙한 놀이터로 인식되었고, 그런 경험들이 학교생활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많이 되지 않았나 싶다.

1학년 생활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운동장과는 사뭇 다른 교실 안의 분위기는 늘 팽팽한 분위기였다고 할까. 내 번호가 1번이라서 뭘 하든 간에 먼저였다. 생활기록부에 올릴 사진촬영을 할 때도, ‘즐거운 생활’의 각종 실기시험을 볼 때도, 당번을 정할 때도 늘 먼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긴장의 습관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요즘도 곧잘 긴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건 늘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거, 좀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거랄까.

선생님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선명하다. 사물함이라는 게 흔하지 않았던 때라 책가방이나 준비물 등을 개인별로 모아두고 보관하기 위해서 플라스틱으로 된 바구니(서로 이가 맞물리게 되어 있어서 층층이 연결할 수 있는, 요즘으로 치자면 욕실에 샴푸나 세안용품을 담아두는 것과 비슷한)를 사용했다.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 아마도 선생님이 그 수를 잘못 헤아리셨던 것 같다. 분홍색 바구니 하나가 더 많았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이런 사안(?)에 민감하지 못한 편이라서 그냥 분홍색 바구니를 쓰겠다고 말씀드렸다.

남자 아이들 중에 홀로 분홍색 바구니를 사용하면서 친구들이 좀 놀렸던 것도 같다. 뭐 워낙 무신경한 타입인지라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 선생님께서 보셨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느 날, 학교를 파하고 선생님과 함께 근처 시장으로 가게 되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다시피 간 곳은 바구니 파는 곳이었다. 파란색 바구니를 사고는 선생님은 학교로, 나는 집으로 향했던 것 같다.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내 바구니가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분홍색 바구니는 선생님 책상 아래에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분홍색 바구니를 사용하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셨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괜찮은데 선생님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자신의 돈으로 바구니를 구입해서까지 내게 뭔가(?)를 잃지 말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바구니 사건(?)’ 만큼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 보니 참 속이 깊으신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주 인자한 모습의 할머니가 되셨겠지, 생각하며 어렴풋하고 풋풋했던(??) 내 1학년 시절에 대한 기억을 조용히 닫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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