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조차 사라져갈 풍경, 장날
흥재 사진, 안도현 글 / 마음의창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도서관 6층에 들어서면서부터 숨이 턱하니 막힌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는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내가 학교를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공기임을 실감한다고 할까. 그나마 4층(인문학자료실)이나 5층(사회과학자료실)에 비해서 학생 수가 적다고 하는 6층(자연과학자료실)도 옛말이 된 듯하다. 이렇게 숨이 턱 막힐 땐 ‘서가산책’이 제일임을 이젠 몸이 먼저 안다. 이리저리 산책(?)하다 사진관련 도서가 있는 서가에서 바닥에 아예 엉덩이 붙이고 앉아 책등을 살피다『추억조차 사라져갈 풍경, 장날』을 만났다.

 

내가 왜 사진집을 집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릴 적부터 만화나 그림으로 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말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기보다 보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랄까.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있는 만화책은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도무지 몰랐다고 할까. 안 그래도 기억력이 나쁘고 끈기가 부족한 내게 만화책은 흥미롭지 않았던 것 같다. 사진집 역시 비슷한 이유라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사진에 대해서 아주 무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기교가 함유(?)된 사진은 늘 내게 고답적이게만 보일 뿐이었다. 
 

『추억조차 사라져갈 풍경, 장날』은 특별히 고답적이거나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깊게 패인 주름의 할아버지, 그 어릴 적 ‘뻥이요!’하며 내 심장을 콩닥거리게 했던 할아버지와 달달한 튀밥을 뱉어내던 튀밥기계,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에서 타고 있는 담배 한 가치, 그 뒤로 보이는 ‘바께스’와 양동이들. 이 모습이 표지에 실려 나를 부르는 듯했다. 장날의 경험이 전혀 없이 살아온 내게 뭔가를 전하려는 듯했다.

 

이 책은 일반 시장의 모습을 담은 게 아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5일장의 아련한 모습을 추억처럼 담고 있다. 아주 멋진 사진(?)을 기대하는 사진에 일가견이 있다는 독자들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장날의 모습과 주인공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사진을 몇 번 찍어 본 사람이라면 찍을 수도 있을 법한 모양새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이 책의 사진작가 분이 아마추어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여기 담긴 사진에는 역동성이 있다. 정지된 사람이나 사물을 찍은 것도 아니고, 움직이는 풍경을 억지로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내려고 하는 무모함도 느낄 수 없다. 사진사진마다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까. 정지된 한 컷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다. 풍경 그 자체가 살아 있다는 느낌 때문에 역동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이 책을 한 번 보고 다시 볼 때는 사진 속 사물이나 사람의 모습이 뭔가 바뀐 듯 한 착각이 든다고나 할까. 특별한 순간을 포착해 가둬놓은 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일상적인 흐름이 주는 다채로움이 잘 배어있는 사진집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나는 호시노 미치오의『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에 실린 사진에서와 비슷한 ‘호흡’을 느꼈다. 대상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여실히 느껴진다. 더군다나 호시노 미치오의 야생동물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 자신의 호흡이랄까, 이 책 역시 작가의 호흡이 대상물과 함께 느껴진다. 다분히 거리만 가까워 느껴지는 호흡이 아니라 스스로 그 풍경에 뛰어 들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면서 전해주는 편안함과 생동감은 나를 무척이나 편안하게 한다. 그로 인해 전해지는 감동은 ‘좋은 작품이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하는 확신처럼 다가온다.

 

이 책은 장날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그 역사 속에는 ‘터’가 있고 자연이 빚어낸 ‘금은보화’가 있으며 거기에 순응하며 살아온 ‘인간’이 있다. 또 이 모든 것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정이 있고 사랑이 있다.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고 다툼이 있는 인간역사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이러한 우리의 살아 있는 역사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이젠 시들어져만 가는 장날의 모습, 그래도 꿋꿋하게 지켜내려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넉넉한 미소 속 감춰진 슬픔에 가슴이 아린다. 사그라져 가는 장날이 갖는 역사성을 보존하고 그 불씨를 되살리려는 작가의 노력은 정말 감동적이다.

 

사진뿐만 아니라 작가의 글 역시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고 잃어버린 듯해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 삶의 어려움 등은 온정이 오가는 ‘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터란 장터이며 그 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벌어지던 퍼포먼스, 즉 장날이 설 자리가 우리네 이 도시에는 없다는 것이다. 도시만을 위한 발전이 낳은 천벌로 지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실감과 고통을 맛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 

장터엔 문이 없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말 그대로 난전.
늘 열려 있으면서도 이젠
세월에 닫혀 버린 장터. 

 

언젠가 우리들 마음속에서도 닫혀 버릴
가련한 운명에 놓인 장터.
열린 ‘터’ 위로 인간의 욕심이
높다라니 세워질 테지. 

 

‡‡‡‡‡‡‡‡‡‡‡‡‡‡‡‡‡‡‡‡‡‡‡‡‡‡‡‡‡‡¨¨주워 담기¨¨‡‡‡‡‡‡‡‡‡‡‡‡‡‡‡‡‡‡‡‡‡‡‡‡‡‡‡‡‡‡

 

오랫동안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우리네에게 5일 만에 서는 장날은 곧 모두의 만남의 장이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소식을 전해주고 전해 받는 삶의 총체적 현장이었다. 인터넷이나 전자 상거래 등 정보와 생활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이루어지는 가상공간이 아니라 실제 구체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 생활의 한 단면이었다.(작가의 말; p5)

저것 좀 보라.

하늘로 오르고 싶은 대형 할인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꾸 치솟으며 세력을 넓혀가지만, 노점상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지 않은가!(p31)

나는 확신한다.
사람들이 장터를 멀리하고, 장터에 가지 않으면서부터, 장터 대신에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으로 향하기 시작한 뒤부터 비로소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도시는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노점상들을 받아들일 공간도 여력도 없다.
물건 구매자들에게 편익과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골몰하는 도시에게 장터는 비효울적이고 비경제적이고 비생산적인 장소일 뿐이다.
세련된 도시는 세련되지 않은 장터를 싫어하는 것이다.
장터는 도시에게 버림받았다.(p47)

아쉽고 부족한 것은 거기 다 있었으며,
넘치고 풍족한 것도 거기 다 있었으며,
반질반질한 것도 투박한 것도,

불쌍하고 가엾은 것도,
잘나고 못난 것도,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는 것을 빼고 있는 것은 거기 다 있었다.(p85)

열세 살이 되던 해, 나는 그 장터를 떠나 도시로 갔다.
그때부터 나는 백화점의 쇼윈도와 마네킹을 들여다보며 그 옛날의 장터를 까맣게 잊어 먹었다.
아니, 잊어 먹었다기보다는 스스로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장터란 도시의 잘 꾸며진 상가에 비해서 불결하고 비위생적이며 예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학교에서 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혐오감을 가져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내가 받은 교육은 낡고 오래된 것들, 시간의 이끼가 덕지덕지 낀 것들, 먼지와 파리똥이 쌓인 것들, 세월이 만든 주름살 같은 것들을 하루바삐 잊어버리기를 강요받는 훈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93)

한때 70년대 초반에 정부는 5일장을 없애거나 축소시키려고 무모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새마을 운동에 저해가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당시 정부가 지적한 5일장의 문제점은 불공정 거래가 성행한다는 것, 지나친 소비를 조장한다는 것, 농민들의 관습적인 시장 이용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그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 농촌에 퇴폐풍조가 조성된다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농촌 정책이었다.
그것은 전국의 들판에 있던 농민들의 휴식처인 ‘모정(茅亭)’을 그저 낮잠만 자는 곳으로 인식하고 막무가내 폐쇄하라고 주문했던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농촌 죽이기는 과거 지우기를 통해 결국은 우리의 유구한 전통마저 지워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시골 장터도 그렇게 스러져 갔다.(p97)

30년이 흘렀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는 시골 어디에도 친구들끼리 주머니를 털어 갈 색싯집 하나 없다.
달이 환한 마찻길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리고 앞으로 또 30년이 흐르면?

마찻길이라는 말을 잊어버렸듯이 그때 가서 우리는 장터라는 말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장터의 모습을 기억해 내기 위해 이 사진집을 열심히 뒤적거리게 될지도 모른다.(p113)

그는 그동안 장터를 찍은 게 아니라 장터 사람들을 사진 속에 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자신의 호흡을 장터 사람들의 호흡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그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내가 본 이흥재」; p126)

그리고 지난번에 강진장에서 대바구니를 팔던, 얼굴 붉은 백발의 노인을 순창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였다.
마침 나는 초등 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을 데리고 갔는데, 그 노인은 아이를 보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어이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다. 한사코 사양을 했는데도 말이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한테서 용돈을 받아 든 아이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린아이에 대한 시골 장터 어른들의 인사법을 아들 녀석이 이해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내가 본 이흥재」;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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