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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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에피쿠로스 (지음) |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펴냄)

어떤 욕망에도 흔들림 없이 살게 하는 '아타락시아'를 누리는 길

-<에피쿠로스 쾌락> 앞 표지글 중에서

'쾌락'이라는 단어를 마주했을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무분별, 무절제, 반이성적인 욕망을 한껏 머금은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쾌락주의'하면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하면 '쾌락주의'로 직결되는 이 둘의 조합은 자칫 에피쿠로스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기 쉽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했던 쾌락은 이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고통의 반대말일 뿐으로 오히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요즘 현대인들의 가치관인 무소유나 미니멀리즘, 내려놓음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에피쿠로스가 활동했던 시기가 기원전임을 생각해보면 시대를 앞서가도 가히 혁명적으로 앞서갔다고 할 수 있다. 도시국가로서 안정된 번영기를 누리던 아테네가 쇠퇴하고 혼란기에 접어들면서 실존주의적인 철학이 필요했던 시기와 에피쿠로스의 활동기가 맞물린것도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겠다.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자연철학을 토대로 한 유물론자였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과 신도 물질적인 존재로 보았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 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인간들이 종교에 의지하고 신을 숭배하는 모습은 식상하리만치 흔하다)

p109.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죽음은 우리에게 오지 않고,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잡히는 삶이 아닌 오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자는 사고방식과도 통한다. 오늘의 행복이 쌓이면 어제의 내일이었던 오늘이 계속 행복할 것이니.

에피쿠로스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난 상태를 최고의 쾌락이라 하고, 쾌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고통과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과연 가능할까? '아타락시아'(마음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평정한 상태)와 '아포니아'(몸 고통의 부재)를 위해서는 우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 이것이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마음 비우기와 무소유, 내려놓음에 통한다.

몸의 고통은 현재적이지만 마음은 과거 일과 현재 일과 미래 일에서 고통을 느끼므로 마음의 쾌락이 몸의 쾌락보다 더 크다고 보았던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우리가 요즘 시도때도없이 소망하는 '힐링'과도 유사하다.

읽어볼수록 요즘의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이 아닌가 싶다.

가져도 더 가지려 하는데서 오는 마음의 고통과 그에 따르는 몸의 고통은 만족을 모르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쾌락은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평정심에서 오는 것임을 기원전 철학자 에피쿠로스에게 배우는 뜻깊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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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생리학 인간 생리학
루이 후아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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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생리학

루이 후아르트 (지음) |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펴냄)

산책자는, 그러니까 진정한 소요자는 생각을 많이 하고, 말은 적게 한다.

-<산책자 생리학>본문 201페이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하루가 26시간이었으면, 아니 30시간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테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가며 살아도 할 일은 줄어들지 않고, 시간은 늘어나지 않으니 잠을 줄여가며 버텨내는 일과는 피로만 늘어갈 뿐이다. 그래서일까? '산책'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여유와 휴식'이지만 왠지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로만 느껴진다.

루이 후아르트가 얘기하는 산책과 산책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어쨌거나 루이 후아르트 덕분에 책을 통한 산책을 하고 난 느낌이다. 물리적인 산책은 아니었지만 정서적인 산책을 하고 나니 '여유'란 것에 대한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의 빡빡함의 이유가 사실은 일의 누적과 시간의 부족이 아닌 내 맘의 여유부족이 아니었는가 하고 말이다.

고전문학이나 과거 철학자들의 글들을 읽으며 거의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몇 세기(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라는 시간의 차이가 별 의미없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루이 후아르트의 <산책자 생리학>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산책과 빈둥거림의 차이를 꼬집고, 산책하며 만날 수 있는 여러 인간의 부류와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려내듯 말한다. 지금이라도 거리를 나가보면 루이 후아르트가 <산책자 생리학>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산책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 많은 에피소드와 변수, 주의점 등 지금 귀기울여 들어봐도 유익할 이야기들이 루이 후아르트의 유머가 더해져 지루할 틈이 없다.

사람은 산책할 시간이 없어도 키우는 반려견을 산책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는 사람들,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몰려들던 사람들이 산책을 위해 공원 주위의 숲세권의 거주를 선호하는 일 등이 최근에 생긴 변화라면 변화일 수 있겠다.

진정한 산책은 되도록 혼자하거나 부득이한 경우에만 둘이어야 하고 그 이상이 되면 산책이 아니라는 루이 후아르트의 말에 공감한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살피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으며 걷기만 하는 것 역시 산책이 아니라는 말에도.

"바쁘다 바뻐", "빨리 빨리"를 입버릇 처럼 달고 살면서 정작 그 바쁨이 누구를 위함이었는지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잊을 때가 많다. 언제인가부터 사라져간 산책이 코로나19로 인해 강제로 할 수 없게 되면서 더 소중하고 갈구하는 것이 되었다. 자의로 하지 않는 것과 타의에 의해 멈춰버린 것의 차이는 그 소중함을 느끼는 데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바쁘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멈췄던 밤산책을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인간은 두 발 달린 깃털 없는 자, 그리고 외투 입고 담배 피우며, 산책하는 자(본문 32페이 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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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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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피타고라스가 전하는 고양이의 모든 것~!!
아 궁금하다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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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새 양식 열린책들 세계문학 284
앙드레 지드 지음, 최애영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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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도, 연대기적 순서도 없는 이 독특한 책이 실존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니 안읽어볼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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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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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펴냄)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함락의 현장.

역사를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없는 군중의 외침이 생생히 울려 퍼진다.

-<7월 14일> 뒷표지글 중에서

프랑스 혁명은 남의 나라, 과거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시험에 나오니까 외우고 길고 긴 역사의 무수히 많은 사건들 중의 하나로 그저 먼 타인의 얘기였다. 성인이 되어서 다시보는 역사는 내 나라든 남의 나라든 국경없이 반복되는 아픔이 있었다.

무력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무력은 자신들만의 타당성을 내세우며 손에 쥔 권력과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했다. 소위 있는자들의 우는 소리는 역사도 깊다. 얼마전 읽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에서 합당한 임금 인상과 안전을 위한 처우 개선을 주장하는 광부들에게 죽는 소리를 하는 탄광 소유주들은 더이상 없을 수가 없는 '진짜 없는 자'들의 목숨값으로 자신들의 풍요를 지속시켰다. 과연 소설 속, 과거 역사 속 이야기이기만 할까.

언제인가부터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일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누구는 힘 있는 부모 덕에 얼마 일하지 않은 직장에서 퇴직금으로 50억을 받고, 누구는 등록금을 벌어보겠다고 나간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도 변변한 보상과 위로도 받지 못했다. 이름이 있어도 기억되지 못한채 잊혀지고 지워진 이름들은 얼마나 많을까.

역사는 몇몇의 위대한 위인들의 업적과 활약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전쟁의 명장 뒤에는 그를 따르며 이름없이 죽어간 병사들이 있었고 수많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자신들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 타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은 지금 여기에도 분명히 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혁명과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던 일들이 시위와 촛불이라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응은 반대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2016년 10월에 시작되어 2017년 4월에 이르는 6개월간의 촛불 시위는 촛불 혁명이라 불리며 피 대신 빛으로 쓴 역사가 되었다.

이름 없는 군중의 외침이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

바스티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7월 14일 하루 동안의 이야기. 그 폭발적인 하루의 원인은 오래된 날들의 억울함과 고통의 누적이었을 것이다. 행정가와 실무자들의 핵심은 쏙 뺀 수박 겉 핥는 정책 브리핑은 1789년 그때나 2022년 지금이나 판에 박은 듯 똑같다. 본문을 읽으며 지금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았다.

p44. 추상적 주제를 거만한 태도로 난해한 전문 용어를 써가며 세 시간 동안 이야기해~(중략) 핵심 문제는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다.

p59. 나라는 파산 지경인데 지주들은 불평거리가 없었다.

바스티유를 습격한 시민들을 향한 총알에 쓰러져간 목숨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살기 위해 빵을 달라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총알이었다. 왜 나는 이 대목에서 1980년 5월 18일이 떠오르는가.

소설 <7월 14일>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 이웃의 아무개가 군중을 이루는 한 사람이 되어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 이름없는 군중은 어떤 역사를 써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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