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지음) |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펴냄)

'헨리 제임스'란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여인의 초상>을 읽었구나. 전혀 다른 작가의 책을 만난 듯 <나사의 회전>과 <여인의 초상>에서 같은 작가의 느낌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일까?

영화,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한 최초의 공포 심리 소설이라는 뒷표지의 글처럼 공포와 심리가 잘 어우러져 마치 블라이의 모두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듯 했다.

"어린아이가 등장해서 섬뜩한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켜 준다면, 아이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긴장감이 두 배로 고조되겠죠!"

-<나사의 회전> 본문 10페이지

동화책에서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할머니의 얘기는 화로불을 앞에 두고 시작된다. 밤이 주는 고즈넉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불이 주는 빛과 따뜻함처럼 공포와 흥미라는 대조적인 느낌이 무서운 이야기에 더 끌리도록 하는지 모르겠다. 더글러스와 일행들이 밤이 되자 난롯가에 모여앉아 고인이 남겼다는 원고를 읽게 된 것처럼 말이다.

더글러스가 원고를 읽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화자는 원고를 작성했다는 가정교사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영화와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탄생할 만한 부분이 많다. 삽화 하나 없이도 마치 블라이에서 그들의 공포를 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머리속에 그려진다. 영화 <디 아더스> 외 많은 공포영화에도 영감을 준 원작이라고 하니 읽는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결론 지을 수 있는 열린 결말이 그 공포에 힘을 보태는 것 같다.

아이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서 긴장감이 두 배로 고조된다는 얘기를 초반에 던져 주었지만 이 아이들의 존재가 사악함인지 순진한 피해자인지는 알 수 없다. 이름조차도 한 번 불려지지 않은 이 아이들의 가정교사의 주장만으로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과 그녀의 짐작만으로 그녀가 느끼는 공포와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믿어야 하겠지만 오로지 그녀의 말 뿐이라 그녀 자체가 공포스럽기도 하다.

순진한 두 아이의 영혼을 노리는 유령이 정말 존재하는걸까, 아니면 순진한 척하는 두 아이의 교활하고도 사악함이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 의식에 사로잡힌 가정교사를 시험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녀는 정신분열증의 증세로 환각을 보는 것일까?

마일스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이유도 끝내 밝혀지지 않고 플로라가 가정교사인 그녀를 잘 따르다가 두려워하며 거부하는 일, 그로스 부인이 처음에는 가정교사의 말에 동조하며 수긍하다가 그녀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놓는 일까지 상황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우왕좌왕 하게 만든다.

유령을 처음 목격했던 일은 사실이라 쳐도 유령들이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가정교사인 그녀의 짐작 뿐이다.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고 했지만 플로라는 오히려 그녀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녀의 품 안에서 마일스의 심장이 멈췄다.

결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상황과 복선이 열려있다. 읽는 이에 따라 어떻게 결론을 내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완벽한 공포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제르미날 1~2 - 전2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에밀 졸라 지음, 강충권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르미날 1, 2

에밀 졸라 (지음) | 강충권 (옮김) | 민음사 (펴냄)

이제하늘 한가운데에서 찬란히 빛나는 4월의 태양은 분만하는 대지를 따뜻하게 덥히고 있었다. (중략)머지않아 그들이 발아한 싹은 대지를 터뜨릴 것이었다.

-<제르미날 2> 본문 357페이지

3월의 어느 추운 겨울 날 르 보뢰에 도착한 에티엔이 이 곳에서 겪게 되는 일련의 일들은 평범하다고 할 수 없다.

상대적 빈곤이 아닌 절대적 빈곤의 처참함과 그 빈곤의 이유가 나태와 게으름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의 절망감.

당연한 권리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그 권리를 요구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그들과 모든 것을 함께 한 에티엔이 최종적으로 느꼈을 감정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겠다. 다만, 본문 마지막 페이지를 통해 작가 에밀 졸라는 희망을 암시하고 꿈꾸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뿐이다.

몽수에서의 파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은 자들은 슬픔을 오래 누릴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들이 그토록 거부하고 저주하던 갱도의 어둠으로 다시 내려간다. '이렇게는 못살겠다' 울부짖던 그때보다도 더 못한 대우를 받으며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그마저도 다행이라 여기며 목숨을 부지할 길을 찾는다. 과연 그것이 목숨을 부지할 길인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카트린이 샤빌과 에티엔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샤빌에게로 항상 되돌아갔던 것은 벗어날 수 없는 대물림되는 가난과 변화되고 싶은 희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한다. 다른 여자아이들도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라는 반복되는 숙명에 적극적인 대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지만 샤빌과 에티엔의 대결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에티엔의 편에 서서 희망을 가져보고 싶은 마음을 비친다. 카트린은 소녀에서 진정한 여자가 되고 사랑하는 에티엔의 곁에서 눈을 감으며 죽음 이후에야 숙명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이익의 기회로 삼고 정치적 도약의 기회로 삼는 이들은 비단 엔보 사장과 몽수의 일부 광부들의 얘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 남탓을 하며 대립과 싸움을 하던 광산촌의 모두가 광산 매몰이라는 사고를 함께 극복해나가며 하나가 되고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는 모습에서 새롭게 싹틔울 희망을 보았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소름끼치도록 닮은 몽수의 비극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단순한 우화소설이 아니듯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도 단순한 노동 소설은 아니리.

몽수의 비극에 절절히 함께 아픈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밸런트레이 귀공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이미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밸런트레이 귀공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 이미애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알고보면 나쁜 사람 없다" 등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대한 여러 격언이 있다.

티비 공중파를 오르내리는 험악하고 혐오스러운 범죄의 죄인들도 그들의 성장기를 조사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불우하고 학대받은 경험이 존재하고, 가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였던 시절이 있었음을 간혹 보게 된다. 그럴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성경구절의 한 문장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 불우한 시절은 커녕 넘치는 편애와 모든 것을 누린 지체높은 신분의 밸런트레이 귀공자가 있다.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노래실력, 타인의 사랑을 받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연기력까지 모든 것을 가진 그가 딱 하나 가진 것이 없다면 그것은 '선함'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그에 따르는 결과는 오직 신만이 아실 뿐이다. 그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던지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는 또다시 본인의 선택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하였던가? "잘 되면 내 덕이고 안 되면 조상탓이다"라고 하였던가? 순전히 자기의 모험욕을 채우려 아버지와 동생 헨리의 조언과 걱정을 뒤로하고 고집을 피워 나간 전쟁이었음에도 꿈꾸던 화려한 승리 대신 도망자로 살아야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제임스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불운의 모든 탓을 동생 헨리에게 퍼붓는다. 형제 간의 피로 물든 복수는 그렇게 '네 탓'에서 시작되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을 이용할 뿐인 밸런트레이 귀공자 제임스와 대조적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고 견디는 헨리는 아내와 아버지로 부터도 지지와 공감을 얻지 못하고 따돌려지는 듯한 분위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매켈러라는 충직한 하인이 없었다면 헨리가 그 긴 시간 외로움과 오명에 버틸 힘이 있었을까. 형을 죽였다는 자책으로 불안정해진 정신은 형의 생존을 알게 되며 기뻐하기 보다는 더욱 더 불안해지고 만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조여드는 형 제임스의 집요한 괴롭힘은 헨리의 재정적 파탄과 가족 내의 불화, 안전의 위협까지 그를 놓아줄 의사가 전혀 없으니 말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거듭되는 복수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모든 매력을 가진 밸런트레이 귀공자가 선함까지 갖추었더라면 듀리스디어 가문은 다시없을 번영을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을 돌리고도 남을 만큼 연기력도 출중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복수심이라는 목적으로만 움직이는 밸런트레이 귀공자는 일종의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한다. 형 제임스를 상대하는 헨리의 태도는 순응에서 대립으로 점차 변해가지만 한번도 형의 그늘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형을 대신한 책임감을 보일때도, 형을 상대하며 똑같이 복수심에 불타오를 때에도.

복수심은 양날의 검이다. 상대를 베려는 난도질에 결국 자신도 상처입는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매컬러가 힘들어했던 이유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존경하고 사랑했던 주인 헨리가 점차 무너지며 제임스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니 말이다.

복수 후에 남는 것은 파멸. 그 복수가 승리이든 패배이든 양날의 검을 쥐었던 자신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고 마는 파멸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르미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7
에밀 졸라 지음, 강충권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르미날 2

에밀 졸라 (지음) | 강충권 (옮김) | 민음사 (펴냄)

연일 화물연대의 파업에 관한 뉴스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월드컵의 열기로 이 파업에 관한 주요 쟁점이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사태에 정부가 빼든 칼은 업무 개시 명령이다.

언제부터 정부가 개인사업자들에게 업무 개시 명령을 할 수 있었나? 제르미날 2권에서 광부들의 파업이 절정에 다다르자 화물연대의 파업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갱도의 버팀목에 안전을 의지해야 하는 광부들의 현실과 화물자동차의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을 요구하는 것에서 묘하게 닮은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나 뿐일까?

과로, 과적, 과속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의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과적을 한 덤프트럭이 과속하며 고속도로에서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에는 공포스러워 하면서 왜 이들의 파업 이유에는 귀 기울여 줄 의지가 없는가.

최소한의 안전과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주장하는 광부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해고와 군인들의 무력제압이었다. 광부들과 광산 주인들 간의 대화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광부들 내에서도 주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뜻은 모아지지 않는다. 체념 속에 살아온 인생이 더 나은 삶으로 가기 위함이더라도 한치도 물러날 곳 없는 낭떠러지 같은 현실에서 또 내어주고 물러서야 한다는 생각에 변화를 주저했는지 모른다. 의견의 대립은 노동자와 노동자의 대립이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파업에 동참했던 이들과 먹고 살기 위해 다시 갱도 아래로 향하는 이들 모두 노동자이다. 화물연대 노조도 노동자이고 그들의 파업을 비난하는 이들 또한 노동자이다. 약자와 약자가 하는 싸움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하아...이런 아이러니라니.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빵을 달라 외치는 몽수의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집단 이기주의라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아내를 사랑하는 엔보 사장을 대하는 아내의 태도와 샤빌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매번 그에게로 돌아가는 카트린의 행동도 대조적이다. 엔보 사장의 부인은 남편의 조카와도 불륜을 저지르며 남편을 배신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카트린은 분노한 사람들에게서 샤빌을 지켜낸다. 제르미날에서 대조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세실의 죽음과 마외의 딸들인 알지르와 카트린의 죽음도 비교된다. 굶주림으로 죽어간 마외의 딸들과 달리 세실은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소풍에서 덧없이 죽음을 맞았다.

서로를 향한 비난과 책임 전가가 난무하는 가운데 갱도의 사고는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탄광촌의 동료애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훨씬 더 돈독하고 끈적인다는 강원도 광산 매몰 광부의 인터뷰도 떠올랐다.

결국 르 보뢰는 많은 생명을 삼키고 사망한다. 수바린에 의해 일어난 사고였으나 언젠가는 일어나고야 말 사고가 앞당겨졌을 뿐이다.

답답한 현실의 문제들과 오버랩되며 긴장과 한숨이 범벅이 된 독서였다. 손꼽히는 명작인 이유가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친 장난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친 장난감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살다보면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뼛속까지 타락해서 악랄한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죠.....(중략)우리는 그러고 난 뒤에야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요.

-<미친 장난감> 본문 262페이지

감수성 말랑말랑한 십대 시절에 문학 작품들을 읽으며 책 속의 주인공들을 동경하고 꿈 같은 책 속의 현실과 자신의 현실을 맞바꾸고 싶은 상상을 해본 경험, 혹시 나만 있으려나?

현실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나쁜 남자와의 사랑이라든지 스릴을 위한 범죄도 가능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어느 현자의 얘기처럼 길을 찾게 된다면 더 좋은 일일테고. 하지만 이런 책으로의 여행과 모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읽는다'는 행위가 우선되어야 한다. 읽다보면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미친 장난감>의 주인공 실비오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소년에게는 허락된 소유가 없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도적 문학을 읽으며 상상이라는 탈출구를 찾고 자신의 모든 행동을 화려한 삶의 '로캉볼'과 연결지으며 동경하던 실비오는 가난이 주는 소유의 박탈감을 도둑질로 가져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엔리케, 루시오와 함께 비밀 조직 한밤의 신사들 클럽을 결성해 도서관에서 책을 훔치지만 그들이 훔친 책의 가치는 그 속에 담긴 것들이 아닌 가격이다.

"실비오, 너도 일해야 하지 않겠니." 열 다섯의 실비오에게 엄마는 말한다. 가에타노의 서점에서 일하게 되지만 그 곳의 책들도 실비오는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이다.

훔친 책들을 뜻대로 처분하지 못한 것, 서점에 불을 지르려 했던 일이 실패한 것,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던 티모테오 소우사와 항공 군사학교의 마르케스 대위의 돌변하는 배신까지 이 가난한 소년 실비오에겐 소유를 위한 길이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다. 몇 푼을 벌기 위해 종이를 팔며 당하는 수모에 그 어떤 고통이라도 참고 이겨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느끼는 실비오. p216. 아무리 속이 끓어올라도 우리는 꾹 참고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그게 인생이니까. 실비오는 과연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실비오가 삶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는 배신이다. 그 배신의 순간에도 실비오는 로캉볼을 떠올린다. 절름발이가 털어놓은 범죄 계획에 실비오가 내린 선택은 배반이었다. 그간 법을 어기면서 이루려했던 소유와 로캉볼의 화려한 인생을 동경하던 그는 로캉볼의 또다른 면인 살인을 상기하며 자신의 소유를 내려놓고 타인의 소유, 비트리의 소유권을 지켜준다. 실비오의 배반이 느닷없이 생겨난 준법정신이나 도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반은 자신안의 범죄다. 그러나 비트리에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삶의 힘', '생명의 힘'을 깨닫게 된다. 절름발이를 밀고했다는 죄책감은 안고 살겠지만 소유로 부터 자유로워진 그는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현실과 문학의 경계에서 삶의 변화를 꿈꿔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아 읽기를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