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장난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친 장난감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살다보면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뼛속까지 타락해서 악랄한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죠.....(중략)우리는 그러고 난 뒤에야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요.

-<미친 장난감> 본문 262페이지

감수성 말랑말랑한 십대 시절에 문학 작품들을 읽으며 책 속의 주인공들을 동경하고 꿈 같은 책 속의 현실과 자신의 현실을 맞바꾸고 싶은 상상을 해본 경험, 혹시 나만 있으려나?

현실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나쁜 남자와의 사랑이라든지 스릴을 위한 범죄도 가능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어느 현자의 얘기처럼 길을 찾게 된다면 더 좋은 일일테고. 하지만 이런 책으로의 여행과 모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읽는다'는 행위가 우선되어야 한다. 읽다보면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미친 장난감>의 주인공 실비오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소년에게는 허락된 소유가 없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도적 문학을 읽으며 상상이라는 탈출구를 찾고 자신의 모든 행동을 화려한 삶의 '로캉볼'과 연결지으며 동경하던 실비오는 가난이 주는 소유의 박탈감을 도둑질로 가져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엔리케, 루시오와 함께 비밀 조직 한밤의 신사들 클럽을 결성해 도서관에서 책을 훔치지만 그들이 훔친 책의 가치는 그 속에 담긴 것들이 아닌 가격이다.

"실비오, 너도 일해야 하지 않겠니." 열 다섯의 실비오에게 엄마는 말한다. 가에타노의 서점에서 일하게 되지만 그 곳의 책들도 실비오는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이다.

훔친 책들을 뜻대로 처분하지 못한 것, 서점에 불을 지르려 했던 일이 실패한 것,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던 티모테오 소우사와 항공 군사학교의 마르케스 대위의 돌변하는 배신까지 이 가난한 소년 실비오에겐 소유를 위한 길이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다. 몇 푼을 벌기 위해 종이를 팔며 당하는 수모에 그 어떤 고통이라도 참고 이겨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느끼는 실비오. p216. 아무리 속이 끓어올라도 우리는 꾹 참고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그게 인생이니까. 실비오는 과연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실비오가 삶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는 배신이다. 그 배신의 순간에도 실비오는 로캉볼을 떠올린다. 절름발이가 털어놓은 범죄 계획에 실비오가 내린 선택은 배반이었다. 그간 법을 어기면서 이루려했던 소유와 로캉볼의 화려한 인생을 동경하던 그는 로캉볼의 또다른 면인 살인을 상기하며 자신의 소유를 내려놓고 타인의 소유, 비트리의 소유권을 지켜준다. 실비오의 배반이 느닷없이 생겨난 준법정신이나 도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반은 자신안의 범죄다. 그러나 비트리에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삶의 힘', '생명의 힘'을 깨닫게 된다. 절름발이를 밀고했다는 죄책감은 안고 살겠지만 소유로 부터 자유로워진 그는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현실과 문학의 경계에서 삶의 변화를 꿈꿔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아 읽기를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