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1세는 5년 후인 1199년에 사망했고 그의 동생 존이 왕위에 올랐다. 존왕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형 리처드 1세를 더 오래 붙잡아달라고 뇌물을 바치려 했던 인물이다. 그 역시 형의 뒤를 이어 과중한 세금으로 백성을 수탈한 악명 높은 군주였다. 17년의 재위 기간 중 병역면제세를 11차례나 부과했고, 심지어 전쟁이 없던 해에도 거두어 갔다. 형이 부과했던 토지세 위에 새로운 토지세를 부과했고 납부를 거부하면 토지를 몰수했다. 또 다른 십일조를 부과하고 수출입관세도 도입했다. 또한 일종의 상속세를 신설해 영지와 성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귀족들이 내기 벅찰 만큼의 기부금을 요구했다. 왕은 돈을 받고 관직을 팔았으며 이렇게 관직을 산 사람들은 특히 삼림에서 거둬들이는 세금과 벌금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다. 여기서 로빈 후드 이야기가 탄생한다. - <세금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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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와 동부의 귀족들은 왕과의 봉건계약 파기를 선언하고 신군 Army of God을 자칭하며 런던으로 진격해서 점령해버렸다.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븐 랭턴Stephen Langton이 왕과의 평화협상을 중재했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인 러니미드의 템스 강변에서 광범위한 정치 개혁을 담은 협정이 체결되었다. 귀족들의 동의 없이 새로운 세금을 부과할 수 없으며 병역면제세와 다른 세금도 함부로 부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귀족의 불법 감금을 금지하고 신속한 재판을 명시했다. 평민과 교회의 권한도 보장되었다. 귀족들은 런던을 반환하고 군대를 해산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존왕을 믿지 않은 귀족들은 해산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왕은 약속을 깨고 교황에게 호소했고, 교황은 당연히 그 협정이 “수치스럽고 모욕적이며 부당하다”라며 반란 귀족들을 파문했다. - <세금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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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크르의 지시에 따라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세금이 면제되었고 자유인이 되었다.16 개종하지 않더라도 세금만 제대로 내면 심한 취급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투옥되어 노예가 되거나 심지어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자비롭고 동정심 많은 알라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이슬람교를 믿고 구원을 얻으라. 개종이 싫다면 세금을 내고 우리의 보호를 받으라. 그것도 싫다면 당신이 와인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살인을 좋아하는 나의 부하들과 함께 당신을 칠 것이다”17라고 왈리드 장군은 협박했다. 죽음, 세금, 이슬람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 <세금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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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교도의 숫자가 줄어들자 세수도 감소했다. 개종을 이유로 인두세를 면제해주던 제도를 없앴다. 이집트에서는 파견관리가 개종자에 대한 세금을 다시 도입해달라고 요청해서 칼리프의 승낙을 받기도 했다. 교리보다는 세수가 우선이었다 - <세금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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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슬람군은 더 이상 세금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자비하게 세금을 집행하였다. - <세금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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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이 대단한 건 세금을 매긴 방법이 아니라 매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소득에 대한 세금이 없었으며 부자들의 부를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역할을 하는 세금도 없었다. 그 대신 리터지 liturgy라는 자발적 세금이 그 역할을 했다. - <세금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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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권위 있으면서 중요한, 그리고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리터지는 트라이어라키trierarchy로 불리는 군함 건조였다. 이 일을 맡은 사람을 트라이어라크라고 불렀으며 3단노 갤리선trireme의 건조와 운용, 유지를 책임졌다. 이 군함 덕분에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아테네 해군을 건설하여 해적으로부터 해상로를 지킬 수 있었다. 무역 중심지 아테네를 보호하는 데 해군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많은 건축물들은 명예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기부자들에 의해 축조되었다. - <세금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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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건 리터지를 맡지 않으면 시민들의 경멸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에 리터지를 했거나 현재 다른 리터지를 진행 중이면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또한 안티도시스antidosis라는 제도도 있었다.20 리터지를 맡은 사람이 자신 말고 다른 사람(B라고 하자)이 더 부유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B에게는 3개의 선택지가 있는데 대신 리터지를 맡거나, 한 달 이내에 소송을 걸어 누가 더 부자인지 판결을 의뢰하거나, 재산을 교환해서 자신의 부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이는 당사자가 직접 주장하는 것보다 실제 부자를 가리는 데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 <세금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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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인 미국인은 소득의 38퍼센트를 세금으로 납부한다.4 영국은 45퍼센트,5 프랑스는 무려 57퍼센트6다. 세금이 이렇게 높아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우리 생활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대부분 세금으로 충당되는 정부 지출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GDP의 7퍼센트, 영국은 9퍼센트, 프랑스는 13퍼센트였다.7 스웨덴의 1870년 정부 지출이 GDP의 5.7퍼센트로 근대국가 중 가장 낮았다.8 이런 추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끝나 다시는 내려가지 않았다. - <세금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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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 어느 날 우리의 선조 중 누군가가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바로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돌연변이를 일으킨 밑동을 발견한 일대 사건이다. 아주 낮은 확률로 씨앗이 떨어지지 않는 ‘비탈립성’을 지닌 돌연변이가 생겨날 때가 있는데 가물에 콩 날 확률보다 더 낮은 확률로 나타나는 그 돌연변이 밑동을 인류가 운 좋게 발견한 것이다.

씨앗이 여물어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그 식물은 자연계에 자손을 남길 수 없다. 그러므로 탈립성이 없는 특성, 즉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성질은 식물의 치명적 결함이며 번식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물이 가진 이런 심각한 결함과 악재가 오히려 인류에게는 대단히 큰 호재이자 축복으로 작용했다. - <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이나가키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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