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의) 더 큰 실수는 지구 둘레의 계산에 9세기 페르시아 천문학자 알파르가니의 연구를 참고했다는 것. 그건 좋은 참고 자료가 아니었다. 일찍이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도 제대로 구해냈고, 그 밖에도 꽤 정확한 추정값이 많이 나와 있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는 따로 있었다.
콜럼버스의 가장 큰 실수는 알파르가니가 언급한 ‘마일’이 당연히 로마 마일(약 1,500미터)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알파르가니가 사용한 단위는 아랍 마일(약 2,000~2,100미터)이었다. 즉, 알파르가니가 언급한 거리들은 콜럼버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길었다.

콜럼버스는 세상의 크기를 실제의 약 4분의 3으로 착각했다. 게다가 일본의 위치를 실제보다 수천 킬로미터 더 가깝다고 착각했으니, 결과적으로 항해 일정을 실제 필요한 일정보다 훨씬 짧게 잡고 그에 맞추어 식량과 물자를 준비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네 세상 크기를 잘못 안 것 같은데” 하며 의문을 표했지만 콜럼버스는 자기 계산을 꿋꿋이 믿었다. 그러니 콜럼버스가 카리브 제도를 덜컥 맞닥뜨린 건 사실 천만다행이었다(아시아까지 가기 전에 웬 다른 대륙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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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는 인도 델리에서 유해 동물 방제 운동의 일환으로 죽은 코브라를 가져오면 포상금을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코브라를 길러 손쉽게 포상금을 타갔다. 그러자 영국은 포상금을 폐지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쓸모없어진 코브라를 방생했다. 결과는 코브라의 창궐.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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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캠페인 중 그는(에콰도르의 부카람은) 항상 밴드를 동반하고 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등 파격적인 유세와 선거 광고로 에콰도르의 노동자 계층에 어필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특권 계층이 밀어붙이고 있는 민영화와 긴축재정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 종말을 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히틀러 콧수염을 기르고 『나의 투쟁』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말하는 등 다른 정치인들 같았으면 정치 인생이 끝날 수도 있었을 언행을 하고서도 별 타격 없이 대권을 손에 넣었다.
그를 찍었던 에콰도르의 가난한 국민들은 그가 취임 후 몇 개월 만에 내놓은 경제 정책의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민영화를 추진하고 긴축재정을 오히려 확대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바로 그가 종식하겠다고 공언했던 것들이었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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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캘리포니아의 수놀이라는 작은 도시에서는 개 한 마리를 시장으로 선출했다. 주인공은 보스코 라모스라는 검은색 래브라도 리트리버 잡종견. 주인 브래드 레버가 어느 날 저녁 동네 술집에서 말싸움 끝에 선거에 출마시켰고, 결국 2명의 인간 후보를 누르고 압승을 거두었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그는 재임 기간 중 단 한 건의 국제적 사건에만 연루되었는데, 천안문 사태 이후에 중국의 「인민일보」가 보스코를 거론하며 서방 민주주의는 ‘인간과 개의 구분이 없다’며 비방한 것이다. 보스코는 결국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영사관 앞에서 중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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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Doge’라 불리던 당시 베네치아의 최고 지도자는 그 선출 방법이 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복잡했다.
도제는 약 100명의 지도자로 이루어진 대평의회에서 선출했고 종신직이었으니, 선거에 부정이 개입될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선거에 개입할 수 없도록 하는 선거제도가 1268년에 마련되었다.
베네치아의 도제 선출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대평의회 의원 중에서 제비뽑기로 30명을 가린다. 이 30명 중에서 다시 제비뽑기로 9명을 정한다. 이 9명이 의원 중 40명을 선출하고, 이 40명 중에서 제비뽑기로 12명만 추려낸다. 이 12명은 25명을 선출하고, 그중에서 제비뽑기로 9명을 다시 추려낸다. 이 9명이 45명을 선출하고, 또 제비뽑기로 11명을 추려낸다. 이 11명이 마지막으로 41명을 선출하면, 마침내 그 41명이 도제를 선출하게 된다.
읽기만 해도 숨차다.
이건 누가 봐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베네치아의 정치 평론가는 선거 결과를 예측하려면 진땀을 뺐을 것이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었던 모양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1797년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할 때까지 500년 이상의 번영기를 보냈고 계속 이 제도를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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