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과 비공개
- 출사를 목적으로 한 유가 집단은 공자부터.

구재 학당의 학생들은 처음에는 최시중 공도로 불리다 최충이 ‘문헌’이란 시호를 얻자 문헌공도文憲公徒라 불렸다. 문헌공도는 고려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명문대가의 자제부터 시골 선비까지 앞다투어 찾아와 입학하려 했다. 그 결과 개경에는 문헌공도 외에도 11개 사학이 설치되어 이를 12도라 불렀다. 그중 최충의 문헌공도가 가장 융성한 것은 당연했다. 당시 과거를 주관하던 지공거는 합격한 급제자를 문하에 두어 일종의 파벌을 형성했는데, 이 사학 12도의 운영자 대부분이
지공거를 역임한 이들이었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1e7gQ4j39aYsctRC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털 사이트들도 자꾸 알고리즘을 진화시킵니다. 그런 반복은 오히려 마케팅일 가능성이 많으니 피하게 만드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설정하게 되는 것이죠. 알고리즘은 포털 사이트의 최고 비밀이며, 일정한 주기로 바꿔야 하는 아주 중요한 보안 사항입니다. 이 알고리즘이 외부에 노출되면 갖가지 마케팅 툴들이 이에 맞춰서 세팅되기 때문에, 일반 유저들이 검색을 하면 상단에는 마케팅의 부산물들만 노출되는 결과가 나오게 되거든요. 그래서 큐레이션의 알고리즘을 감출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누가, 왜 그렇게 큐레이션했나’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이 포털 사이트들의 ‘음모론’, ‘조작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 <GPT 제너레이션>, 이시한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938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송나라는 1125년 북부에서 남부로 밀려난 후 상업이 본래 활발했던 남부의 영향을 받았고, 이전의 대다수 왕조보다 상업에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전 왕조들은 유교 전통에 따라 상인을 천시했다(〈지도 10.5〉). 북방의 경쟁자였던 만주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충돌하는 비용을 대기 위해 송나라는 상업에서 조세를 거둘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외국 교역자들에게 새로운 항구를 개방하고 화폐 공급량을 늘려 외국과의 교역을 장려했다. 시장 활동이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하자 일부 농민들도 전문화했고, 농법과 관개 기술이 개선되었다.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2인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BsE734PxG2D96EHX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언자 무함마드가 상인이었기에 무슬림 세계는 다른 농경 문명보다 상업에 우호적이었고, 정부는 대개 거래를 지원하고 수익을 얻었다 -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2인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nCbQNtPWfdauVeLD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도양의 교역 체계는 동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대제국이 아니라 주로 대양에 흩어진 작은 도시국가들을 오가는 형태였다. 이 지역에서 상업적 경쟁이 심했다는 의미다. 강력한 통치자가 물품이나 교역로를 독점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 -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2인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xQCj2wpSGak7Au9B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