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과 비공개
- 출사를 목적으로 한 유가 집단은 공자부터.

구재 학당의 학생들은 처음에는 최시중 공도로 불리다 최충이 ‘문헌’이란 시호를 얻자 문헌공도文憲公徒라 불렸다. 문헌공도는 고려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명문대가의 자제부터 시골 선비까지 앞다투어 찾아와 입학하려 했다. 그 결과 개경에는 문헌공도 외에도 11개 사학이 설치되어 이를 12도라 불렀다. 그중 최충의 문헌공도가 가장 융성한 것은 당연했다. 당시 과거를 주관하던 지공거는 합격한 급제자를 문하에 두어 일종의 파벌을 형성했는데, 이 사학 12도의 운영자 대부분이
지공거를 역임한 이들이었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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