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가 무너진 것은 가혹한 법치와 토목공사 등이 원인이 아니라, 진나라 정부가 각지에 흩어진 제, 초, 조, 연, 위, 한 등의 왕족 출신 귀족과 대상인, 지주, 호족 등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특권층과 인민을 똑같이 다루고 통치한 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이 앞서 이야기한 동同의 정치 노선인데요, 그 동의 노선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지요.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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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뿐만 아니라 묵자 집단도 투신해서 만든 진나라의 통치체제는 분명 인민이 살기 좋은 민본적 요소가 상당했고, 그것이 통일전쟁 수행에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진나라가 무너지고 한漢나라가 들어선 것은 역사의 반동일 수도 있다고 보고요.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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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 개념 전략

당시 지배층은 군자君子라는 말로 딱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군君의 자子, 말 그대로 군주의 아들이고 친척이지요. 좋은 신분을 타고난 교육과 문화의 수혜자입니다. 이렇게 군자는 원래는 철저히 신분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의미를 좀 바꾸어놓았습니다. 단순히 조상을 잘 둔 사람이 아니라, 항상 수기안인修己安人이라는 과제에 주력하는 이상적인 인간으로 말입니다. 공부와 수양에 주력하고 안인安人을 정치 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는 도덕자라는 개념으로 바꾸었습니다. 어쩌면 개념을 바꾸는 언어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지배자에게 강도 높은 윤리적 압박을 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주문한 것이지요. ‘당신들이 아무리 잘난 조상 두고 현재 잘 먹고 잘살아도 수양하지 않고 인민을 포용할 덕이 없으면 그저 소인일 뿐이요, 그리고 소인처럼 굴다가는 당신이 다스리는 정치 공동체의 앞날은 어둡기만 할 것이오’라고요.

군자라고 목에 힘주고 다녔는데 이제 공자 때문에 잘못하면 소인 소리 듣게 생겼습니다. 군자라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소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이제 좀 달라져야 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느끼고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이게 공자의 전략입니다

(물론 아무도 경각심을 느끼지 않았고, 공자의 주장은 누구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공자의 기대에 불과했지요).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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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8-24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뭐라든 공부와 수양에 초점을 맞추고 싶네요.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지리상의 발견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진출로 인해 오리엔트 지역을 통한 종래의 동서 교역로가 차단되면서 유럽인들이 동방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신항로 탐험은 오스만이 유럽으로 진출하기 훨씬 전에 이미 포르투갈인들이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튀르크인들이 유럽에 진출한 후 동서 교역로는 오히려 더욱 활성화되었다. 사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신항로 탐험에 나선 것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지중해-홍해-인도양 루트’를 이용하는 유럽과 동방 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외된 이베리아반도의 상인들이 지중해와 홍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서양으로 나가는 또 다른 항로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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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 하는 일본 -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
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외교의 파탄으로서의 태평양전쟁

최근의 국제관계사가 주목하고 있는 점은 워싱턴 체제란 결국 대청제국해체와 중국대륙의 분열(1912), 러시아제국 붕괴와 소련 건국의 혼란 (1917),
독일제국의 종언과 약소화(1918) 라는 형태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는 세계 정치 행위자 수가 일시적으로 적어진 상황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사실상 미·영·일의 3개국밖에 없습니다(服部龍二, 『東了沙了國際環境の動ど日本外交』). - P187

그런데 그 이후에 국민당이 북벌에 성공하여 중국이 통일되고, 소련도 중공업화를 달성하고 각국의 승인을 받으면서 강대해졌으며, 독일에서도 히틀러 정권이 성립하여 군사대국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여 선택 사항이 증가하자 누구와 연합하고 누구와 싸우는 것이 득이고 실인지 "쇄국 하의 제약 외교"에 익숙해져 있던 일본인의 머리로는 처리하지 못할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정부 내부에서도 영미, 아시아파, 파쇼파, 소련파 등이 합종연횡을 반복하며 커다란 혼란에 빠지더니 결국 동아시아에 기지조차 가지고 있지 않던 독일·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중국과 미국(마지막으로는 소련도)을 정면으로 적대시하는 최악의 조합을 선택해버린 결과, 대일본제국은 당연하게 파멸하고 말았습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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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 하는 일본 -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
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제국과 제국주의의 차이
- 식민지 흑자 적자 논쟁

 경제학자 슘페터도 구미 열강의 식민지 획득 경쟁은 ‘격세유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하였습니다(木谷), 『帝國主義世界ⓝ一體化). 원래 영토의 확대가 국익에 직결되는 것은 주요 산업이 농업인 경우에 한해서만 분명한 것으로 상공업 중심의 근대사회에 있어 식민지 경영이 흑자를 낼지 적자를 낼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통치비용의 증대 때문에 ‘자기 부담‘ 가능성도 높으며 자국 상품의 시장권까지 포함한다면 차라리영유하지 않는 편이 더 이익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여러 나라가 시대착오적인 식민지 획득에 광분한 것은 로마제국처럼 구시대의 행동양식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슘페터는 보고 있습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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