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와 이라크 관계쿠웨이트는 원래 오스만 시대부터 이라크의 바스라 주에 속한 이라크 영토였다. 그러나 1932년 이라크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영국은 석유 이권 때문에 쿠웨이트 지역을 계속 통치했으며, 쿠웨이트는 1961년 이라크에 귀속되지 않고 독립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라크는 계속 영유권을 주장해 오던 터였다. 그러나 아랍 국가가 또 다른 아랍 국가를 공격한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사건이었다. 사담 후세인의 패권 확대를 두려워한 일부 걸프 지역 아랍 국가들과 함께 미국 중심의 서구 세계는 유엔 안보리를 통한 이라크 제재에 착수하였고, 드디어 1991년 1월 다국적군을 편성하여 사담 후세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42일 만에 끝난 전쟁으로 이라크는 쿠웨이트에서 철수했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absRYnB7cW3n4hzp6
이란의 모사데크 사건반미 노선을 걷고 있는 이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바로 1954년 모사데크 정권 붕괴 사건이다. 1951년 스위스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민족주의자 모사데크가 이란 수상이 되었다. 당시 막대한 석유를 독점적으로 채굴하고 정유하고 판매하는 영국의 앵글로-이란(Anglo-Iranian) 석유 회사의 횡포에 맞서 모사데크는 석유 산업의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였다. 나아가 1952년 영국과의 국교를 단절하면서 서방과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더라도 독자적인 노선을 주창하며 석유 이익을 이란에게 되돌리려는 정책을 시도하였다. 모사데크는 이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친서구파인 당시 팔레비 이란 왕은 그를 해임하였다. 국민들의 시위와 대립은 유혈 충돌로 치달았고, 결국 미국 정보당국이 개입하여 모사데크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적인 팔레비 왕정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 사건은 미국이 공공연하게 중동 사태에 개입하는 뚜렷한 기점이 되었으며, 동시에 중동-이슬람 세계의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욱 가시화되는 정치적 계기가 되었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PxhLRfcJCPGnSjKk8
3중 협약제1차 세계대전 중에 서구 열강은 아랍 인들에게는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아랍 국가의 독립을, 유대 인들에게는 발포어 선언을 통해 유대 민족 국가의 창설을, 영국과 프랑스 간에는 사이크스-피코 비밀 조약을 통해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를 암암리에 결정함으로써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분쟁의 근원적 불씨를 제공하였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T4qqFGVmoojDNhTv5
우마이야 왕조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가 칼리파가 되자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가 알리에 도전하였다. 이러한 갈등의 와중에 알리가 암살당하자 이슬람 제국은 다시 무아위야에 의해 우마이야 왕조로 통일되었다. 그러자 알리의 추종 세력들이 이탈하여 시아파라는 이슬람의 새로운 이념 아래 결집되었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y4izjHbAj16Kf3fs6우마이야 왕조(Umawiya, 661~750)는 세습적인 군주제를 채택하였다. 먼저 수도를 메디나에서 비잔틴 제국의 동부 수도였던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로 옮겼다. 그리고 정복 전쟁을 본격화하여 파미르 고원을 경계로 중국 당나라와 접경하고, 서쪽으로는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여 두 차례나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도 했다. 한편 711년에는 북아프리카를 거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했다. 이로써 스페인은 15세기 말까지 800년간 이슬람 국가로 유럽에 이슬람 문화를 전파하는 창구 역할을 하였다. 이슬람 군은 여세를 몰아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을 공략하였으나, 732년 카를 마르텔(Charles Martel)의 군대가 저지하면서 유럽 중심부의 이슬람화를 막았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7rFPazKr1EgwBw4L6
일주일의 기원메소포타미아 인들은 천체가 7개의 행성으로 구성되었다고 믿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요일로 표현되었다. 즉 태양(Sun)이 일요일(Sun-day), 달(月, Moon)이 월요일(Mon-day), 토성(土星, Saturn)이 토요일(Satur-day)로 표현되었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x8Py9BSdZ86JrRz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