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경제성장
- 새만금 사업의 계속추진 여부에 대한 경제적 기준을 중심으로

OOO 양의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기대했던 환경문제에 대한 강의가 누락된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간락하게나마 새만금 사업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방법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사업에 대해 이것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평가할 때 비용편익분석(또는 편익비용분석 benefit-cost analysis)이라는 것을 합니다. 비용편익분석이란 사업의 총편익에서 총비용을 뺀 순편익(net benefit)을 계산하는 것으로서 만약 순편익이 양의 값을 가지면 사업을 하는 것을 권하고 음의 값을 가지면 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이때 총비용의 개념을 잘 생각해야 하는데 총비용 안에는 단순히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뿐만 아니라 사업을 함으로써 잃게 되는 것도 포함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폭넓게 정의된 비용을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고 부릅니다. 새만금사업의 경우 갯벌과 바다를 매립하는데 드는 비용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갯벌과 바다가 창출하던 가치가 소실되므로 이것의 가치도 비용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만금사업의 편익은 매립으로 창출되는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이며 비용은 (매립비용 +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순편익인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 - (매립비용 +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양의 값을 갖는다면 매립을 하는 것이 낫고 음의 값을 갖는다면 안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매립하지 않는 행동의 가치와 매립하는 행동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매립하지 않는 행동의 가치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이며 매립하는 행동의 가치는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 - 매립비용)입니다. 둘 중에서 어느 것이 크냐에 따라 결정하면 되는데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순편익의 값이 양이냐 음이냐의 기준과 동일합니다.

새만금사업의 문제는 이보다 약간 복잡합니다. 이미 사업은 시작되어 수년간 계속해왔고 그 동안 1조원의 돈이 투입되었습니다. 현재 1조원의 돈이 투입된 상황에서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이 경우도 비용편익분석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업을 중단하는 행위의 가치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이고 사업을 계속하는 것의 가치는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 - (매립비용 - 1조원))이 됩니다. 총매립비용 중에서 1조원이 투입되었고 이로 인해 향후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이 1조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중단의 가치와 계속의 가치를 비교하는 식은 결국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 - (매립비용 - 1조 +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양이냐 음이냐의 문제가 됩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의 기준과 1조원의 차이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가 10조, 총매립비용이 5조,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5조 5천억이라고 합시다.(이 수치는 전적으로 예를 들기 위해 제가 만들어낸 수치입니다) 이런 사업은 순편익이 -5천억이므로 당연히 추진하면 안되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사업이 추진되었고 그동안 1조원의 돈이 지출되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앞으로 4조의 돈을 더 투입하면 매립이 끝난다고 가정합시다. 이 시점에서 국민들이 사업의 재고를 촉구하고 나서서 재평가를 할 때 어떤 기준으로 사업 계속 여부를 판단해야 할까요? 제로베이스에서 계산하여 지금까지 진척된 공사를 무시하고 평가하면 편익은 10조인데 비용은 10조 5천억이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 이미 1조원만큼의 공사가 진척된 상황에서는 향후 예상되는 편익은 10조인데 향후 추가될 비용은 9조 5천억이므로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미 투입하여 회수할 수 없는 금액을 매몰비용(sunk cost)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매몰비용은 의사결정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경제학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또 복권을 구입하는 갑돌이는 지금까지 100만원의 돈을 로또복권 구매에 썼지만 한번도 돈을 번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주에 로또 복권을 구입할까 말까 고민하는 갑돌이에게 지금까지 지출한 돈 액수는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 경제원리에 맞는 행동입니다. 1000원의 구매비용과 예상수익 1000원(1/800만분의 확률로 80억원이 당첨되고 7,999,999 / 8,000,000의 확률로 꽝이 되므로 기대값은 1000원입니다)을 비교해서 행동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쓴 돈이 아까워서 계속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고시공부를 하는 을순이는 지금까지 3년을 고시공부에 매달렸지만 계속 낙방을 했습니다. 다시 시험을 쳐야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할 때 3년 동안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 계속 공부를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3년 전에 공부를 시작할 때 판단기준과 3년 후인 지금의 판단기준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3년을 공부했으므로 시험에 붙을 확률도 더 높아졌고 향후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도 낮아진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 고시공부를 시작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병철이의 상황보다는 을순이가 훨씬 고시공부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고시합격의 편익은 병철이나 을순이 모두 똑같지만 고시공부의 비용은 을순이가 더 낮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고시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이 매몰비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오히려 비난하는 자신이 매몰비용을 잘 이해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또복권의 매몰비용과 고시공부의 매몰비용은 다른 것입니다.

다시 새만금 사업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현재 새만금사업의 계속추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선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5조 5천억이 아니라 6조 5천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립의 편익은 10조이지만 비용은 11조 5천억이었다는 것이고 순편익은 -1조 5천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업은 시작하지 말았어야할 사업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1조를 투입한 상태에서 계산해봐도 매립의 편익은 10조이지만 향후 비용은 10조 5천억이 더 든다는 것이고 따라서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진을 반대하는 이들은 지금 막지 않으면 향후 더 막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만약 정부가 사업을 계속 추진하여 1조를 더 투입하고 3조원의 추가비용만을 남겨둔 상태가 된다면 그때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의 편익은 10조인데 비용은 9조 5천억이 되어 순편익이 양의 값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 사업을 그만두면 전체적으로 손해는 2조인데 비해 계속하면 1조 5천억으로 손해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 기준으로 볼 때 사업을 계속추진하는 것이 더 낫게 됩니다.

일부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사업을 완수했을 때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1조 5천억의 손해를 야기하는 사업이므로 2조를 이미 투입하였다고 해도 계속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선례를 남기고 책임자를 문책하기 위해서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 생각에는 책임자 문책의 문제와 사업 추진 여부의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사업 추진은 경제성 기준에 따라 결정하더라도 여전히 1조 5천억의 손해는 남아 있으므로 책임자는 당연히 문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업의 추진 여부에 대한 경제학적 기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새만금사업의 계속 추진여부에 대한 쟁점은 이러한 “기준의 문제”보다는 갯벌과 바다, 매립된 토지의 “가치에 대한 견해차”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 자신이 이에 대한 가치평가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얘기하기 곤란합니다. 논란에 대해서는 아래의 링크에 있는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jbchbank.co.kr/lecture/sisa/samankm.html


다만 새만금사업단에서 공식적으로 제시한 편익에 대해 몇가지 코멘트를 하고자 합니다. 새만금사업단에서는 쌀 증산, 물부족 해결, 침수방지, 관광지화, 고용창출 다섯가지로 편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쌀 증산의 문제는 WTO 체제 하에서 쌀 값이 계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사업을 시작할 때의 가치평가가 과대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업추진과정에서 고용창출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편익으로 계산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문제가 많은 주장입니다. 사업에 드는 돈을 다른 곳에 투입했을 경우 다른 영역에서 고용창출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라북도 입장에서는 이 지역의 고용창출이 큰 이득이겠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비전북 지역에서 창출될 수 있는 고용을 굳이 전라북도에 집중시켜야 할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침수방지는 새만금사업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관광지화는 해당지역의 문제이지 전국적인 차원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담수호 건설을 통해 물부족 해결의 문제는 담수호의 가능성 여부가 핵심인데 이전 시화호의 사례가 부정적인 예상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도시의 하천들이 맑아지는 사례에서 보듯이 환경기술의 역량을 환경단체에서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성장과 환경의 문제에서 경제학자들은 환경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필수재에 대한 수요가 많이 충족되자 삶의 질이나 환경이 주는 영향에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얻는데 비용을 치룰 용의가 있게 됩니다. 이것은 환경관련 기술의 시장을 크게 만들고 시장이 커지면 연구개발의 성공으로 인한 이득도 커지므로 연구자들의 관심이 모이게 됩니다. 이에 따라 환경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환경도 살리면서 경제도 성장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갖게 됩니다.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이란 환경문제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이루어지는 경제성장을 의미합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경제학 내에서도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관심이 커져 왔습니다. 그런데 환경문제는 시장경제에서 쉽게 해결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특수이익효과(special interest effect)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환경파괴의 이익은 소수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가지만 파괴의 피해는 다수에게 넓게 조금씩 돌아갑니다. 한명이 100억의 이득을 환경파괴로 누리고 1000만명에게 200억의 손해가 돌아간다면 1사람당 2000원의 피해가 돌아가게 됩니다. 환경피해를 막고자 노력하는데 혼자서 노력하는 개인적 비용이 100만원이 든다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막아주면 좋지만 자신이 나서기는 꺼려할 것입니다. 이에 비해 100억의 이득을 누리는 사람은 1억의 추가비용을 들여서라도 자신의 사업을 추진할 것입니다. 시장경제에서 특수이익효과에 의해 손쉽게 환경파괴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10만명이 1100원의 자발적인 기부를 한다면 1억 천만원의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환경파괴 저지에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운동단체의 활동은 이러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 자체는 환경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이므로 ‘정치’가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정치만으로 전지구적 환경파괴를 막기는 또 어렵습니다. 국내 환경단체들이 자국 내의 환경파괴에는 자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타국의 환경파괴를 막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은 현단계에서는 자발성과 헌신성을 필요로하는 윤리적 행위에 의해서 가능한 실정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시장경제가 기술발전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낙관을 갖지만 이들 역시 그 장기가 오기 전에 환경이 어떤 기술로도 회복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면 장기적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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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90년대 중반 이후 디지탈경제와 함께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세계화에 너무 많은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쓰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고 사용되는 맥락도 다르다. 이러다 보니 모든 것이 세계화의 결과로 설명되고 비판되고 찬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에서는 우선 세계화를 간단하게 정의하고 이 정의에 따라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제한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세계화는 국경을 넘어선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력의 이동이 활발해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로 한다. 이것은 무역개방과 자본시장 개방 그리고 노동시장 개방의 정도가 심화되는 것으로 본다.

세계화는 근대세계의 시작과 함께 단선적으로 심화되어 온 것은 아니다. 많은 학자들은 세계화가 19세기에 오히려 지금보다 높은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19세기는 영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체제가 확고하게 성립, 발전한 시기이다. 이 시기 국제무역은 빠르게 증가했고 해외자본투자도 매우 활발했다. 그런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시기에 관세장벽을 쌓는 블록경제의 형성, 국제금본위제의 몰락 등과 함께 세계화의 정도는 대폭 감소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GATT(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협약)를 통해 점진적으로 관세가 인하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결제시스템이 확립되면서 무역량과 해외자본투자는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화는 1945년 이후 점진적으로 무역개방과 자본시장 개방이 진행된 결과이다. 그런데 왜 1990년대 중반 갑자기 세계화가 전세계의 화두가 되어 유행하게 된 것일까?
이것은 무엇보다도 1995년 WTO(국제무역기구)의 발족에 영향받은 결과로 보인다. WTO는 기존의 GATT에 비해 강한 결속력과 강제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산품 이외의 여러 분야 즉, 서비스와 농산물 등의 무역개방을 추진했다. 이것은 해외경쟁으로부터 보호받던 국내 이익집단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세계화가 주목을 받은 또하나의 이유는 이것이 디지탈 혁명과 함께 진행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 텔레비젼이 세계 각국을 안방으로 가져온 혁명적인 역할을 했지만 인터넷은 일방향의 매체가 아닌 쌍방향의 매체로서 일상생활에서 전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미 세계는 상당 수준의 세계화를 달성하고 있었지만 피부에 와닿게 세계화를 보여준 것은 인터넷이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세계화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구도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진행된 동유럽과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변화하면서 더이상 세계를 냉전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냉전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면서 등장한 것이 자본주의국가들 사이의 무한경쟁의 이데올로기이다. 세계화는 자본주의국가들 사이의 무한경쟁의 공간을 잘 표현하는 용어로 채택된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화를 폐쇄경제에서 개방경제로의 이행 또는 개방도의 확대로 이해한다면 세계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무역개방과 자본시장개방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것으로 단순화될 수 있다. 세계화를 전세계적 시스템의 변화로 해석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너무 단순화된 해석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이 정도에서 논의에 그친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무역개방이 국민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경제학에서 이론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역에는 반드시 이득이 있다". 따라서 개방을 하게 되면 국민소득이 상승한다. 개방은 소득수준의 상승 즉, 경제성장을 낳는다.

그런데 무역개방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낳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개방 전과 개방 후를 비교할 때 무역의 이득으로 국민소득은 증가한다. 논란이 되는 것은 개방 후에도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개방하지 않았을 때의 성장속도에 비해서 개방시 성장속도가 더 빠른가라는 문제이다.

이러한 논란은 경제학이 태동하던 초기에 이미 논란이 되고 있었다.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는 영국의 자유무역 요구에 대해 독일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면제품 제조업이나 철강업, 기계산업 등을 육성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농업에만 전념하게 되어 단기적으로 이득을 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후진국에 머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스트는 비록 지금은 비용이 높아서 영국 제품과 경쟁이 되지 않지만 정부가 영국으로부터 수입을 금지하고 일정기간 이 산업을 키운다면 비용이 낮아져서 영국 제품과 경쟁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된 후에 개방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리스트의 주장을 유치산업 보호론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 미국 등 영국에 이어 산업혁명에 성공했던 나라들이 일정기간 보호무역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호무역의 긍정적 역할을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동태적 비교우위의 이론"이라고 부르며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이들의 이론을 "정태적 비교우위의 이론"으로 비판했다. 동태적 비교우위의 이론이란 비교우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업과 공업 중에서 지금 당장 농업이 비교우위가 있다고 해서 농업을 선택하게 되면 성장잠재력이 없는 농업에 영원히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공업을 일정기간 보호하면 공업에 비교우위가 생길 수 있고 성장잠재력이 공업에 많기 때문에 장기적인 이득도 향유할 수 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경제발전을 추구한 저개발국들에게도 널리 퍼졌다. 저개발국들은 중공업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립적인 경제구조를 갖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정책을 수입대체산업화라고 부른다. 수입되는 중공업제품을 자국에서 생산하여 선진국제품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한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은 이후 큰 실패를 경험하였다. 이에 비해 지금 비교우위가 있는 제품을 많이 생산하여 수출하여 외화를 벌자는 수출주도산업화 정책이 한국과 대만, 싱가폴 그리고 홍콩에서 성공하였다. 개방을 한 나라들은 성공하고 폐쇄를 선택한 나라들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수출주도산업화는 유치산업보호론과 전혀 무관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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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자본주의의 비판이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를 강조한 이론으로 유명한데 그의 이론 내에도 경제성장이론이 내재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맑스 자신의 성장이론이라기보다는 현대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맑스의 성장이론을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맑스의 성장이론은 솔로우의 성장이론과 기본 구조에서 비슷하다. 그는 인적자본이나 연구개발보다는 자본축적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저축->투자->자본축적->생산증가->저축증가의 호순환구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맑스의 이론과 솔로우의 기본모형은 다음의 두가지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첫째, 솔로우의 성장이론에서 자본의 한계생산이 체감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비해서 맑스의 성장이론에서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자본의 한계생산이 체감하지 않고 자본량이 증가함에 따라 비례적으로 생산이 증가한다는 가정이 숨어 있다. 맑스의 책 "자본론" 제2권에는 확대재생산 표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논리적으로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다른 변화가 없는 한 호순환이 둔화되지 않고 성장이 무한히 지속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맑스의 성장이론은 인적자본 모형이나 연구개발 모형과 유사하다.

둘째, 솔로우의 성장이론에서는 저축이 소득의 일정비율로 가정되어 있다. 이에 비해 맑스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강조하고 계급구조를 강조했다. 계급구조는 저축과 투자에 강한 영향을 준다. 맑스에 따르면 임금은 노동자가 내일 다시 일할 수 있는 정도로만 주어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저축률은 0이다. 이에 비해 자본가는 넘쳐날 정도로 이윤을 소득으로 얻으므로 이 중에서 얼마를 소비하고 얼마를 저축=투자할 것이냐를 결정한다. 자본가의 저축률이 경제전체의 저축률에 큰 영향을 준다. 실제 경제전체의 저축률은 자본가의 저축률×이윤소득분배비율이 된다.

저축률 = 저축/소득 = 자본가의 저축/(임금+이윤) = (자본가의 저축/이윤)×이윤/(임금+이윤) = 자본가의 저축률×이윤소득분배비율

자본가의 저축률이 일정할 때 저축률을 결정짓는 것은 이윤소득분배비율이며 이윤소득분배비율은 자본가가 얼마나 착취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맑스의 성장이론은 착취를 많이 할수록 성장이 빠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맑스의 이러한 성장이론이 절묘하게 경기변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착취가 커져 이윤소득분배비율이 높아지면 저축률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자본축적이 빨라져 경제성장이 높아진다. 그런데 경제성장이 높아지면 자본가들 사이에서 노동자를 둘러싼 경쟁이 강화되어 실업률이 낮아진다.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률이 노동자의 재생산을 위한 수준 이상으로 상승한다. 이것은 역으로 이윤소득분배비율을 낮추고 착취를 줄이게 된다. 여기서 새로운 반전이 시작된다. 이윤소득분배비율이 낮아져 저축률이 낮아지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실업률이 높아지고 이것은 임금률을 다시 낮추게 된다. 이같은 경제성장과 경기변동을 동시에 설명하는 맑스의 이론은 현대 경제학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맑스의 이론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분배가 희생되어야 하고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함의를 갖는다. 이러한 이론을 이윤압박설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맑스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던 서구 좌파들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서구 좌파들은 분배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구했는데 우파들로부터 성장은 어떡하냐는 비판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이윤압박설로부터 끌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케인즈의 거시경제학을 맑스의 이론에 접목시켜 분배가 성장을 돕고 성장이 분배를 돕는 것이 가능하다는 세련된 좌파적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차후로 미루기로 하자.

맑스의 성장이론이 무한한 성장을 보여준다고 필자가 해석하는 것은 사실 맑스의 자본주의 붕괴론과 모순된다. 맑스는 이윤율이 추세적으로 저하되어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진다고 주장하였다. 맑스의 이윤율 저하설은 제2권의 확대재생산에서 논의하지 않은 기술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맑스는 자본가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발전을 항상 추구하는데 일반적으로 기술발전은 생산량 증가보다 더 빠른 자본량의 증가를 수반하게 된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자본량의 증가는 마치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처럼 이윤율(또는 이자율)의 하락을 가져온다. 솔로우는 기술이 불변일 때 자본량의 증가가 이자율 하락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기술발전은 오히려 이자율 하락을 저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던 것과 반대로 맑스는 기술이 불변일 때 자본량 증가는 이자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자본량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하여 이자율을 하락시킨다고 말했다. 맑스에게 있어서 이윤율의 하락은 기술발전이 존재할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기술변화를 고려한 맑스의 성장모형과 기술변화가 없는 솔로우의 성장모형은 장기적 균제상태에서의 성장 정지라는 측면에서 유사해진다. 사실 자본주의의 성장이 멈춘다는 논리는 고전파라고 불리었던 당시 경제학자들 - 아담 스미스, 리카도 - 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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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솔로우의 모형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성장의 요인분석을 통해 지식과 기술이 경제성장에 중요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면서 지식과 기술이 어떻게 축적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런 관점에서 인적자본을 강조한 이론은 교육비와 훈련비의 지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기술혁신을 강조하는 이론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연구개발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술혁신을 강조하는 이론은 아무리 교육비와 훈련비를 많이 들이더라도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기껏해야 이미 있던 지식과 기술을 잘 보존하고 전달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되고 이것으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인적자본만을 강조하는 이론을 비판한다. 이런 평가에 대해 인적자본 모형을 옹호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 내에도 새로운 지식의 창조가 포함되어 있다며 불평하겠지만 새로운 지식의 창조의 동기나 구조에 대한 설명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통해 창출된다. 그렇다면 기업이나 사람들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지식은 기존 제품의 성능을 높이거나 생산비를 절감시키거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지식의 상업화에 성공하면 기존 지식으로 생산하고 있는 회사의 제품수요를 빼앗아서 자신의 제품수요로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큰 돈을 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만이 새로운 지식을 이용할 수 있을 경우 보다 나은 지식이 등장하기 전까지 일시적이나마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더 나은 지식을 자신이 개발하면 독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지만 이에 실패하면 다른 이가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제약회사 파이저는 비아그라의 개발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누리고 있고 다른 제약회사는 비아그라보다 더 나은 제품의 개발을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다. 이들 경쟁사들 중에 한 회사가 더 나은 제품의 개발에 성공하게 되면 파이저는 더 이상 이윤을 누릴 수 없고 새로운 이윤은 신제품 개발에 성공한 기업에 돌아간다. 이러한 과정은 유명한 경제학자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다름아니다.

창출된 지식은 한번 만들어지면 새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으며 지식의 복제비용은 지식의 창조비용에 비해 매우 낮다. 새로운 지식 이후에 만들어지는 지식은 이미 만들어진 지식의 기초 위에서 이보다 더 나은 것이 만들어진다. 지식은 퇴보하지 않으며 연구개발에 의해 항상 늘어난다. 이에 비해 교육과 훈련은 기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기본목적이므로 교육과 훈련만 계속한다고 해서 지식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연구개발을 강조하는 모형도 솔로우의 기본모형의 논리구조인 저축->투자->자본축적->생산증가->저축증가의 호순환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투자항목이 물적자본투자나 인적자본투자에 한정되지 않고 연구개발투자가 포함된다. 그리고 자본도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에 한정되지 않고 지식자본(knowledge capital)으로 확장된다.

시장의 크기(market size)가 연구개발 모형에서 매우 중시된다. 연구개발비용은 일정량으로 고정적으로 들이지만 연구개발로 얻는 수익의 크기는 시장의 크기에 비례하여 증가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커질수록 연구개발의 유인이 커지고 이에 따라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빠른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시장이 작을 경우 연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인구가 많고 소득이 높은 미국과 같은 큰 나라에서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큰 나라는 작은 나라보다 항상 더 빨리 성장할까? 연구개발을 강조한 모형이 처음 나왔을 때는 이런 식의 결론이 성급히 제안되었다. 하지만 국제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나라의 크기가 시장의 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삼성전자는 한국 시장만을 대상으로 연구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나라의 크기가 성장률의 고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개발 모형은 지식의 소유권이 확립되어 있는지 여부에 대해 강조한다.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지더라도 지식을 만든 사람이 이 수익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면 향후 새로운 지식을 만들 유인이 감소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가 만연되면 소프트웨어의 개발의욕이 떨어진다. 시장의 크기는 지식의 소유권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가, 지적재산권이 얼마나 보장되는지에 의존한다. 선진국에서 특허제도가 확립된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며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지적재산권 보장을 요구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

1990년대 정보기술혁명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신기술, 새로운 지식이 갖는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물결 속에서 연구개발을 강조한 성장모형 역시 급속히 성장하고 확산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미국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연구개발을 강조한 모형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서서히 힘을 얻어갔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창조되더라도 이것이 한순간에 경제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걸쳐 서서히 확산되는 현상이 인식되었다. 지식의 창조는 지식의 확산이라는 보완적 과정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확산과정은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축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왜 지식이 이미 존재하는데도 선진국의 국경을 넘어서 후진국으로 쉽게 확산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연구도 커져갔다. 연구개발 모형은 새로운 지식이 어떤 경제원리에 의해 창출되는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솔로우의 모형이 설명하지 않은 바로 그 문제 - TFP란 무엇인가 - 를 직접 풀고자 했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했지만, 지식의 창조가 곧바로 경제성장은 아니라는 점에서 과도한 해석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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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란 소득과 생산의 증가를 말한다. 성장이 왜 일어났느냐는 원인에 대한 분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접근법은 생산을 가능케 하는 투입요소들을 확인하고 생산증가에 각 투입요소들의 증가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성장회계(growth accounting)는 생산에 필요한 투입요소들이 각각 얼마씩 생산증가에 기여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을 말한다.

경제학은 생산에 영향을 주는 생산요소를 노동과 자본 그리고 노동도 자본도 아닌 무언가로 구분한다. 생산의 증가는 노동의 증가, 자본의 증가 그리고 기타 요소의 증가로 분해된다. 이것은 아래의 식과 같이 쓸 수 있다.

생산의 증가율 = 노동의 증가율 + 자본의 증가율 + 기타 요소의 증가율

이 식은 제대로 된 식일까? 그렇지 않다.
첫째, 위 식에 따르면 자본과 기타 요소의 증가율이 0일 때 노동이 100% 증가하면 생산도 100% 증가하는 것으로 나온다. 과연 그런가? 일반적인 예측으로는 자본과 기타 요소가 불변일 때 노동의 100% 증가는 생산의 100% 미만의 증가로 귀결된다. 낚시대는 10개인데 낚시하는 사람을 10명에서 20명으로 늘린다고 해서 고기잡는 양이 2배로 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위 식에 따르면 기타 요소가 불변일 때 자본이 100%, 노동이 100% 늘면 생산은 200% 늘어난다. 과연 그런가? 일반적인 예측으로는 자본과 노동이 100% 늘면 생산량도 100% 는다.

첫 번째 의문과 두 번째 의문을 동시에 해결하는 식은 다음과 같다.

(식 1) 생산의 증가율 = a×노동의 증가율 + b×자본의 증가율 + c×기타 요소의 증가율
단, a+b=1, 0<a<1, 0<b<1

위 식은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식 2) 생산의 증가율 = (1-b)×노동의 증가율 + b×자본의 증가율 + c×기타 요소의 증가율

예를 들어 a=0.7, b=0.3이고 c=1로 가정해보자. 자본과 기타 요소의 증가율이 0일 때 노동이 100% 증가하면 생산은 70% 증가한다. 그리고 노동과 자본이 100% 증가하면 생산은 100% 증가한다.

성장회계를 실제로 실행하기 앞서 우리는 먼저 생산의 증가율, 노동의 증가율, 자본의 증가율을 계산해 두고 있어야 한다. 국민경제의 경우 생산의 증가율은 GDP증가율로, 노동의 증가율은 경제활동인구조사 등의 결과로부터 그리고 자본의 증가율은 국부통계와 국민계정의 투자항목 등으로부터 계산한다. 기업단위에서는 부가가치 증가율, 고용노동자수 증가율 그리고 유형고정자산 증가율을 계산해 두어야 한다.

다음으로 a와 b 값을 사전에 미리 정한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여 추론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값을 쓰거나 경제이론에 입각하여 구한다. 주로 많이 쓰는 값은 경제이론에 의거하여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의 비율을 a로, 자본소득의 비율을 b로 삼으며 그 값은 a=0.7, b=0.3과 유사하다.

이상의 값들을 알고 있을 경우 다음의 두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기타 요소변화의 기여도를 계산할 수 있다. 앞에서 제시한 식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식 3) 기타 요소의 기여도 = c×기타 요소의 증가율 = 생산의 증가율 - a×노동의 증가율 - b×자본의 증가율

이때 기타 요소를 총요소생산성(TFP : Total Factor Productivity)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을 붙이고 있다. TFP 안에는 기술, 숙련, 제도, 문화, 종교 등 온갖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둘째 노동증가와 자본증가 그리고 TFP의 영향을 %로(기여율로) 알 수 있다. 기여율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식 1)의 양변을 생산의 증가율로 나누고 100을 곱한다.

100% = 100×(생산의 증가율/생산의 증가율)
= 100×a×(노동의 증가율/생산의 증가율) + 100×b×(자본의 증가율/생산의 증가율) + 100×c×(기타요소의 증가율/생산의 증가율)
= 노동의 기여율 + 자본의 기여율 + TFP의 기여율

실제 계산에서 TFP의 기여율을 얻기 위해서 기타요소의 증가율을 계산하지 않고 (식 3)과 같이 잔차로서 구한다.

예를 들어 생산의 증가율이 8%이고 노동의 증가율이 2%, 자본의 증가율이 10%이며 a=0.7, b=0.3이라고 하자. 이 경우 TFP의 기여도는 3.6%이다.

3.6% = 8% - 0.7×2% - 0.3×10%

이에 비해 노동은 경제성장에 1.4% 기여했고 자본은 3% 기여했다.
총 8% 경제성장에 대해 노동은 17.5%, 자본은 37.5%, 그리고 TFP는 45% 기여했다.

100% = (0.7×2%)/8%×100 + (0.3×10%)/8%×100 + 3.6%/8%×100

일인당 생산의 증가율은 생산증가율에서 노동증가율을 뺀 것과 같다. 일인당 자본량의 증가율은 자본증가율에서 노동증가율을 뺀 것과 같다.

일인당 생산의 증가율 = 생산의 증가율 - 노동의 증가율
일인당 자본의 증가율 = 자본의 증가율 - 노동의 증가율

이 정의를 이용해 성장회계식을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일인당 생산의 증가율
= 생산의 증가율 - 노동의 증가율
= -b×노동의 증가율 + b×자본의 증가율 + c×기타 요소의 증가율
= b×일인당 자본의 증가율 + c×기타 요소의 증가율

위의 예를 이용해 설명하면 일인당 생산의 증가율은 6%(=8%-2%)이고 일인당 자본의 증가율은 8%(10%-2%)이며 일인당 자본의 증가가 일인당 생산의 증가에 끼친 기여도는 2.4%(=0.3×8%)이고 TFP의 기여도는 4.6%이다. 이에 따라 일인당 자본의 기여율은 40%이고 TFP의 기여율은 60%이다.

이처럼 성장회계는 성장의 요인을 분해하여 요인별 기여도와 기여율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어렵지 않게 성장을 분해하여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널리 이용되지만 몇가지 약점이 있다.
첫 번째 약점은 무엇보다도 a와 b를 얼마의 값으로 할 것인가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이론이 제시하는 방향이 있긴 하지만 그 방향 역시 몇가지 가정에 기초해서만 성립하므로 그 가정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틀릴 수 있다.
두 번째 약점은 투입요소로 거론한 노동과 자본 이외의 모든 것을 TFP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 안에는 기타 요소와 숙련뿐만 아니라 제도와 문화도 포함될 수 있다. 만약 TFP의 영향이 크다면 그 중에서 무엇의 영향이 중요한 것인지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
세 번째 약점은 투입요소의 증가의 원인이나 투입요소 간의 관계, 나아가 성장이 다시 투입요소에 영향을 주는 피드백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장이 있었던 이유가 자본의 증가 때문이었다고 할 때 왜 자본이 증가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할 생각도 할 능력도 없는 것이 성장회계이다. 따라서 성장회계는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현상에 대한 피상적인 분석에 그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장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 경제성장모형 또는 경제성장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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