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구판절판


기술의 발달에 따라 새로운 필요가 만들어지고, 거기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빈곤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일리치의 말을 빌리면, '근원적 독점'에서 생기는 빈곤입니다. -87쪽

20세기가 되면서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필요하다고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물건이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물건을 만들게 되었습니다만,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취미라든가 흥미가 변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새로운 제품을 사지 않으면 만족한 생활이 불가능한 그런 사회를 그동안 우리는 만들어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살펴볼까요. 지금까지 존재했던 적이 없는 상품이 처음에는 사치품으로 등장합니다. 살 수 없는 사람은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일로 속이 상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사회가 변하면 그 상품은 어느새 '있으면 좋은 것'에서 '없으면 곤란한 것'으로 변해가며 살 수 없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88쪽

지금 캘리포니아의 거의 모든 거리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는 별개 문제로 자동차가 있다고 하는 것이 거리 구성의 전제가 돼버렸습니다. 이것이 일리치가 말하는 '근원적 독점'이라는 개념의 의미입니다.
자동차 사회는 "자동차를 사면 어떻겠냐?"라고 사람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없으면 가난뱅이다, 그대는 매우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사람을 위협하고, 강제하고 있습니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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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기적 유전자) 사자가 사슴 무리에 다가올 때 이를 가장 먼저 눈치챈 녀석이 풀쩍풀쩍 뛴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이를 보고 사자가 왔음을 알게 되어 무리 전체가 도망간다고 한다. 이때 풀쩍 뛴 녀석의 행동에 대해 먼저 도망갈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는다고 하여 동물들에게 이타적 행동이 있음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에 대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유명한 도킨스는 바로 그 유명한 책에서, 풀쩍 뛰는 행동이 오히려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하였다. 도킨스의 설명에 따르면 먼저 사자의 접근을 눈치챈 사슴은 힘있게 풀쩍풀쩍 뜀으로써 사자에게 자신은 건강하고 날렵하니 나를 잡아먹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2.(신호발송게임)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거래가 잘 성립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정보를 많이 가진 측의 일부가 다른 이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신호(signal)를 발송함으로써 정보의 비대칭성을 깨고 정보를 공개하여 정보가 없는 측과의 거래를 시도한다. 이러한 경제학의 원리를 약간 변형하면 사자와 사슴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써먹을 수 있다. 사자는 누가 날렵한 놈인지 하는 정보가 없는 측이고 사슴은 각자 자신이 얼마정도 날렵한지 아는 정보가 많은 측이다. 그리고 풀쩍풀쩍 뛰는 놈은 신호를 발송하는 것이다.

 

3.(신호로서의 교육) 일부 경제학자들은 대학졸업장을 얻으려는 교육경쟁을 신호를 발송하려는 노력으로 해석한다. 애초에 이미 유능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구분되어 있는데 문제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누가 유능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가리기 위해 입사시험을 치루고 다양한 방식의 면접을 하는데 구직자 입장에서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학을 나왔다 또는 어느어느 유명대학을 나왔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신호 시장의 소멸)  비대칭적 정보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나타나는 신호의 가치는 남들이 흉내내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만약 다른 이들이 흉내내기 쉬운 신호일 경우에는 정보로서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럴 경우 시장은 다시 비대칭적 정보가 존재하는 시장으로 되돌아간다. 대학졸업장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그리고 인사담당자들이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더이상 대학졸업장은 능력과 관련된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부모의 재력과 관련된 신호일 뿐이다. 그렇다면 기업입장에서는 대학졸업장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5.(기여입학제) 대학졸업장 문제는 기여입학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논점을 보여준다. 기여입학제를 원하는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들어가는 학교가 상당수 학생을 기여입학제로 뽑거나 자신의 자녀가 기여입학제 출신임이 졸업장에 명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명문대의 신호를 사고파는 행위는 명문대의 존재를 전제하는데 신호를 사고파는 행위가 만연하면 명문대라는 신호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신호를 둘러싼 시장은 항상 적당한 - 비교적 적은 - 규모여야만 유지가능하지 신호가 돈으로 거래되는 시장만 존재할 경우에는 시장 자체가 없어진다.

 

6.(의학박사학위 시장) 최근 불거진 의학박사학위의 매매사건(아래 뉴스 참고)도 마찬가지다. 환자들은 어느 의사가 실력있는 의사인지 알기 어렵다. 이에 비해 의사들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신호 발송을 위한 경쟁을 한다. 하나의 신호가 의학박사학위다. 환자들은 의학박사학위의 존재 여부를 통해 그의 실력을 사전에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의사들 사이에서는 의학박사가 돈으로 사고 판다는 것이 잘 알려진 사실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돈을 내는 환자들 사이에서의 인식이 문제의 핵심이다. 의학박사학위의 매매사건을 통해 환자들이 학위가 매매된다고 알게 되면 더이상 신호를 사고파는 시장은 성립할 수 없다. 가치가 없는 신호는 매매될 수 없기 때문이다.

 

7.(의료시장에서 학위 신호 이외의 다른 대안) 환자들은 신호에 목말라있다. 그래도 믿을 것은 전통적인 신호인 명문대냐 아니냐라는 신호라고 생각하는 환자들도 있을 것이고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 속에서 좋은 의사를 찾아헤매기도 하고 잡지나 방송에 출연했는지 여부가 신호라고 생각하는 환자도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의사들도 광고를 하도록 하면 많은 정보가 공개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일부는 정부와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 객관적인 척도로 병원이나 의원의 정보를 공개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후자와 같은 아이디어는 정책으로 구체화되는데 매번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의사들 전체가 원하지 않고 이를 막기 때문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8.(고백) 얘기를 마무리 짓기 전에 고백할 것이다. 도킨스가 사슴의 행동을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것으로 해석한 사례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끌어다 붙인 측면이 있다. 사슴이 풀쩍풀쩍 뛴 것이 과연 자신이 건강한 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스럽다. 신호는 원래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것을 해야 신호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인데 처음 본 녀석이 풀쩍 뛰는 것은 남들보다 사자를 먼저 봤기에 먼저 풀쩍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일뿐 별다른 정보가 사자에게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사자도 왠만큼 이력이 나서 풀쩍거리는 모습을 척 보면 저놈이 팔팔한 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사자는 웬만하면 어린 놈만 공격하므로 풀쩍거리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정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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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을 살펴보면 전자의 공공부조보다 후자의 사회보험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것은 사람들이 공공부조의 방식보다 사회보험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공공부조를 받는 경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지만 사회보험의 방식에 대해서는 나도 건강하고 일자리가 있을 때 병든 실업자들을 위해 기여했으므로 내가 지금 병들고 늙고 일자리를 잃어서 받는 사회보험급여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보장은 시민의 기본권이며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할 것이지만, 사회보장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식에 대해서는 섬세한 인간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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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만들어지는 보험은 기본적으로 같은 타입의 사람들의 위험에 대한 대응책이다. 사람의 타입에 따라 위험에 차이가 날 때 이런 다른 타입의 사람들이 섞인 보험은 균형상태에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에 둘 이상의 타입이 가입할 경우 어느 한 타입이 손해를 보게 되고 손해를 보는 타입은 자신들만을 위한 보험에 들지 섞은 보험에 들지 않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영보험은 가능한 한 세분화된 타입들로 나뉜다.


문제는 여러 타입을 섞은 보험을 가입하면 이익을 보는 타입들이 대체로 불쌍한 사람들(레 미제라블)이라는데 있다. 이들 타입은 위험이 높다. 그리고 하나의 종류의 위험만 높은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위험도 높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높은 위험에 상응하는 높은 보험료를 낼 능력이 없다. 따라서 이들은 보험을 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그대로 둘 것인가. 물론 그냥 두자는 냉혹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오늘날의 대세이다. 이들을 돕는 해결책은 두가지다. 하나는 정부가 이렇게 보험을 들 수 없는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정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보험을 들 수 있는 이들로부터 세금을 걷어야 한다. 형편이 나은 이들의 양보가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여러 타입을 섞은 보험을 만들어서 강제로 모두 가입시키고 형편이 좋은 타입의 사람에게 보험료가 좀더 비싸지더라도 참고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형편이 나은 타입에게 양보를 요청하는 것이다. 전자를 공공부조라고 부르고 후자를 사회보험이라고 부른다.

 

앞서 말한대로 사회보험은 다른 타입의 사람들을 강제로 하나의 보험에 가입시켰기 때문에 돈 내는 사람 따로 있고 돈 받는 사람 따로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실업보험(우리나라에서는 고용보험)의 경우 실업할 확률이 높은 타입의 사람들은 덜 내고 더 받고, 실업할 확률이 낮은 타입의 사람들은 더 내고 덜 받는다. 질병보험(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험)의 경우 질병에 잘 걸리는 타입의 사람들은 덜 내고 더 받고, 건강한 타입의 사람들은 더 내고 덜 받는다. 산재보험의 경우 재해율이 높은 사업장의 사람들이 덜 내고 더 받고, 재해율이 낮은 사업장의 사람들은 더 내고 덜 받는다. 노령연금(우리나라에서는 국민연금)의 경우 노후를 준비하기에 경제적 여력이 없는 이들이 덜 내고 더 받으며, 노후를 대비하기에 충분한 재력을 갖춘 이들은 더 내고 덜 받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실업급여를 받지 않는 대신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것 아닌가. 의료급여를 받지 않는 대신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 아닌가. 산재급여를 받지 않는 대신 다치지 않는 것 아닌가. 노령연금을 받지 않는 대신 넉넉한 재산이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재산을 넉넉히 갖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은 좀 더 내고 덜 받는다고 그렇게 열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좀 불공평하지만 양보할만 하지 않은가.

 

* 이 글은 김태성, 김진수(2001), 사회보장론, 청목출판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메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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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얻게된 소중한 정보 중의 하나는 전통중국에서 교육이 갖는 의미였다. 다들 알다시피 중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과거제도를 통해 관료를 선발했고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많이 이들이 평생을 매달렸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과거제도와 이를 위한 교육제도가 나름대로 계층이동을 위한 효과적인 통로로서 기능했다는 것이다.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보자.

"옛 교육제도 아래에서 교육은 비교적 싼 편이었다. 사숙은 일반적으로 촌락에 있었기 때문에 학생은 자신의 집에 거주하며 다닐 수 있었다. 유교경전이나 묵필, 종이 등의 가격은 대부분의 농촌 소년에게도 지불 가능한 액수였다. 게다가 친척이나 종족, 혹은 촌락이 총명하지만 가난한 소년을 지원하기도 했다. 젊은이의 교육을 주로 방해한 것은 금전보다도 오히려 시간이었다. 가난한 농민은 농사일을 도울 자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p. 269)."

이스트만의 주요 논점 중의 하나는 중국이 근대화를 경험한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엽 사이에는 근대교육이 과거제도에 비해 훨씬 비싸고 서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이동경로였다는 점이다. 근대교육은 우선 도시에서 이루어졌으므로 농촌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의 경우 도시에 유학할 수 있는 비용이 필요했다. 또한 근대적 학교의 수업료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었다. 그리고 교재 역시 선배나 선조로부터 물려받을 수 없고 새로 장만해야 하므로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20세기 초엽 중국의 새로운 엘리트는 유학파였다. 상해의 어느 회사의 월급표에 따르면 최고의 연봉을 받는 이는 서구 유학파이다. 중국의 대학 출신은 월급이 80원에 3X1.5 책상을 받았지만 일본의 제국대학의 월급은 150원, 유럽과 미국의 대학은 200원이었다. 하버드나 옥스포드 출신은 250원을 받았고 맞춤책상, 서가, 등나무의자에 크리스탈 잉크스탠드를 받았다.

청조 말엽에 정부는 국비를 들여 학생들을 유학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초기의 유학생들은 가난한 천재들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엘리트 집안의 자제들은 유학을 엘리트코스로 여기지 않았기에 유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학을 통한 성공 가능성이 확연해지자 엘리트 가문이나 부유한 상인 가문에서 자제들을 유학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변화의 시점에 부패한 청조가 신해혁명과 함께 무너지자 국비유학생이 급속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난한 천재들이 유학을 통해 출세할 수 있는 가능성이 격감하였다.

중국 유학파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들이 근대혁명의 지도자로 성장한 것인데, 이런 현상은 러시아의 혁명운동이나 독일 나치 운동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유학파가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국민당계열과 공산당계열은 약간 차이가 난다. 전형적인 공산당 지도자는 지주나 부농의 자제로 농촌 출신이며 소련이나 프랑스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 이에 비해 전형적인 국민당 지도자는 상인이나 도시 전문직 종사자의 자제이며 해안지역 출신이 많았다. 그리고 미국이나 일본에서 공부하였다.

이스트만의 이런 설명은 중국 근대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한국의 근대사에도 비슷한 굴곡이 있을텐데 관련된 연구를 요약한 글을 읽어보고 싶다. 근대조선, 일제강점기에서 근대교육이 전통교육과 비교할 때 민중에게 얼마만큼의 기회로 여겨졌는지가 궁금하며, 근대화운동 및 민족해방운동에서 유학파는 어떤 배경의 인물들이었으며 어떤 역할들로 분화되었는지를 읽을 수 책을 만나기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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