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기적 유전자) 사자가 사슴 무리에 다가올 때 이를 가장 먼저 눈치챈 녀석이 풀쩍풀쩍 뛴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이를 보고 사자가 왔음을 알게 되어 무리 전체가 도망간다고 한다. 이때 풀쩍 뛴 녀석의 행동에 대해 먼저 도망갈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는다고 하여 동물들에게 이타적 행동이 있음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에 대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유명한 도킨스는 바로 그 유명한 책에서, 풀쩍 뛰는 행동이 오히려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하였다. 도킨스의 설명에 따르면 먼저 사자의 접근을 눈치챈 사슴은 힘있게 풀쩍풀쩍 뜀으로써 사자에게 자신은 건강하고 날렵하니 나를 잡아먹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2.(신호발송게임)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거래가 잘 성립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정보를 많이 가진 측의 일부가 다른 이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신호(signal)를 발송함으로써 정보의 비대칭성을 깨고 정보를 공개하여 정보가 없는 측과의 거래를 시도한다. 이러한 경제학의 원리를 약간 변형하면 사자와 사슴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써먹을 수 있다. 사자는 누가 날렵한 놈인지 하는 정보가 없는 측이고 사슴은 각자 자신이 얼마정도 날렵한지 아는 정보가 많은 측이다. 그리고 풀쩍풀쩍 뛰는 놈은 신호를 발송하는 것이다.

 

3.(신호로서의 교육) 일부 경제학자들은 대학졸업장을 얻으려는 교육경쟁을 신호를 발송하려는 노력으로 해석한다. 애초에 이미 유능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구분되어 있는데 문제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누가 유능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가리기 위해 입사시험을 치루고 다양한 방식의 면접을 하는데 구직자 입장에서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학을 나왔다 또는 어느어느 유명대학을 나왔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신호 시장의 소멸)  비대칭적 정보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나타나는 신호의 가치는 남들이 흉내내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만약 다른 이들이 흉내내기 쉬운 신호일 경우에는 정보로서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럴 경우 시장은 다시 비대칭적 정보가 존재하는 시장으로 되돌아간다. 대학졸업장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그리고 인사담당자들이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더이상 대학졸업장은 능력과 관련된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부모의 재력과 관련된 신호일 뿐이다. 그렇다면 기업입장에서는 대학졸업장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5.(기여입학제) 대학졸업장 문제는 기여입학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논점을 보여준다. 기여입학제를 원하는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들어가는 학교가 상당수 학생을 기여입학제로 뽑거나 자신의 자녀가 기여입학제 출신임이 졸업장에 명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명문대의 신호를 사고파는 행위는 명문대의 존재를 전제하는데 신호를 사고파는 행위가 만연하면 명문대라는 신호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신호를 둘러싼 시장은 항상 적당한 - 비교적 적은 - 규모여야만 유지가능하지 신호가 돈으로 거래되는 시장만 존재할 경우에는 시장 자체가 없어진다.

 

6.(의학박사학위 시장) 최근 불거진 의학박사학위의 매매사건(아래 뉴스 참고)도 마찬가지다. 환자들은 어느 의사가 실력있는 의사인지 알기 어렵다. 이에 비해 의사들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신호 발송을 위한 경쟁을 한다. 하나의 신호가 의학박사학위다. 환자들은 의학박사학위의 존재 여부를 통해 그의 실력을 사전에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의사들 사이에서는 의학박사가 돈으로 사고 판다는 것이 잘 알려진 사실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돈을 내는 환자들 사이에서의 인식이 문제의 핵심이다. 의학박사학위의 매매사건을 통해 환자들이 학위가 매매된다고 알게 되면 더이상 신호를 사고파는 시장은 성립할 수 없다. 가치가 없는 신호는 매매될 수 없기 때문이다.

 

7.(의료시장에서 학위 신호 이외의 다른 대안) 환자들은 신호에 목말라있다. 그래도 믿을 것은 전통적인 신호인 명문대냐 아니냐라는 신호라고 생각하는 환자들도 있을 것이고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 속에서 좋은 의사를 찾아헤매기도 하고 잡지나 방송에 출연했는지 여부가 신호라고 생각하는 환자도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의사들도 광고를 하도록 하면 많은 정보가 공개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일부는 정부와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 객관적인 척도로 병원이나 의원의 정보를 공개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후자와 같은 아이디어는 정책으로 구체화되는데 매번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의사들 전체가 원하지 않고 이를 막기 때문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8.(고백) 얘기를 마무리 짓기 전에 고백할 것이다. 도킨스가 사슴의 행동을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것으로 해석한 사례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끌어다 붙인 측면이 있다. 사슴이 풀쩍풀쩍 뛴 것이 과연 자신이 건강한 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스럽다. 신호는 원래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것을 해야 신호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인데 처음 본 녀석이 풀쩍 뛰는 것은 남들보다 사자를 먼저 봤기에 먼저 풀쩍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일뿐 별다른 정보가 사자에게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사자도 왠만큼 이력이 나서 풀쩍거리는 모습을 척 보면 저놈이 팔팔한 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사자는 웬만하면 어린 놈만 공격하므로 풀쩍거리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정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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