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슬픔에 대해 살펴보자. 슬픔은 기쁨과 정반대다. 슬픔은 클수록 타인의 공감을 더 쉽게 얻는다.

보통 우리는 사소한 고민거리로 짜증이 난 사람에게는 쉽게 공감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친절하게도 우리가 잘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만거리를 아예 목록으로 만들어두었다. 요리사의 요리가 형편없다고, 동료가 무례하다고, 여행이 불편했다고, 교외에 갔는데 해가 제대로 뜨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경우 등 지금 봐도 완전히 공감 가는 것들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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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의 설명은 당시 영국 사회의 계급구조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에 기초하고 있다. 지주라고 하지만 과거의 귀족의 연장선에 있고 귀족-지주는 부르조아지의 목표였다. 그래서 실제로 돈을 모은 자본가들은 농토와 농장의 저택을 갖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를 운영하는 귀족-지주 계급에 대한 분석 역시 매우 현실적이다. 불로소득 계급의 무능을 비판하면서도 상인과 제조업자가 국가를 사유화할 것에 대한 비판 역시 매섭다.

스미스의 후예인 현대 경제학자들은 계급을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계급은 완전한 시장사회에서 사라지기 때문인가 아니면 계급 분석 자체를 경제학에서 몰아낸 때문인가?


사회는 지주, 자본가, 노동자세 계급으로 구성된다. 지주는 상류계급이며, 커다란 부와 높은 지위를 가진다. 지주는 노동할 필요가 없으며, 토지를 자본가에게 대여하여 수입을 얻기 때문에 불로계급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지주는 정치적 지배계급임과 동시에, 사회의 다른 계급에게 동경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귀족계급이기도 하다.

자본가는 중류계급으로 지주와 비교하면 부는 많지 않고 지위도높지 않지만 자본을 소유하고 사회의 생산을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자본가는 지주에게 토지를 빌리고 그 대가로 지대를 지불한다. 또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불한다. 생산을 조직함으로써 자본가 자신은 이윤을 획득한다. 이러한 자본가는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이윤을 축적함으로써 더욱 큰 부를 형성하고, 언젠가는 상류계급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갖고 있다. - P169

세 계급 중에서 그들[지주계급은 스스로 노동도 하지 않고, 조심도하지 않고, 마치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처럼 자기의 의도. 계획과는무관하게 자신의 수입을 얻고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그들의 상황은편안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자연히 나태하게 되며, 따라서 그들은 어떤국가 정책의 결과를 예견 · 이해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가질 수 없을뿐 아니라 사용할 수도 없게 된다. (『국부론』 제1편 제11장) - P178

자본가계급이 공공재산의 관리인으로서 적절하느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자본가계급에는 치명적 결점이있다. 그것은 지주계급과 비교해 공공정신이 모자라며, 때로는 자기 이익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희생시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 P178

애덤 스미스는 노동자계급도 공공재산의 관리인으로서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회의 이익을 파악할 수도 없고 자신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 사이의 관계를 인식할 수도 없다. 노동자의 생활 상태는 그것에 필요한 견문을 넓힐 여유를 주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의 교육과 관습은, 그들이 비록 충분한 정보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바르게 판단할 수 없게 한다.
그 까닭에 정부의 정책적 논의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다만 노동자의 이러저러한 불평이 그의 고용주에 의해, 노동자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주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고무 · 선동 지지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경청되지 않으며 별로 존중되지도 않는다."(『국부론』 제1편 제11장)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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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의 아래 구절을 보면 당시 표현의 자유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이나 대신들은 사치금지법이나 외국 사치품 수입 금지에 의해 개인의경제 행위를 감독하거나 개인의 지출을 제한하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건방지고 철면피한 행위였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언제나예외 없이 사회의 최대 낭비자였기 때문이다.( 국부론 제2편 제3장)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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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유일한 대목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 자기 자본을 본국 노동의 유지에 사용하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이끈다면, 각 개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수입이 가능한 한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된다.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공의 이익 (public interest)을 - P159

증진시키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며, 자산이 공공의 이익을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국부론』 제4편 제2장)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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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요청을 받은 프랑스의 총재 정부는 식량을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1만 2,000프랑이라는 상금을 내걸고 모집했다. 당시의 입선자가 맥주 제조업자 출신의 과자 상인인 니콜라 아페르(1750~1841)였다.

1804년, 그는 시행착오 끝에 유리병에 가열한 식품을 넣고 코르크 마개로 밀봉한 후, 100도로 끓는 물에 담가 30분에서 60분 동안 가열하여 살균하는 방식의 병조림을 고안했다. 아페르는 부패의 원인이 공기에 있다고 생각했고, 공기를 빼면 식품을 장기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생각대로 밀봉된 병조림은 해군 함정에 실려 130일간 상하지 않은 채 항해를 마쳤고, 아페르는 상금 1만 2,000프랑을 거머쥘 수 있었다. 당시 신문에는 “아페르 씨가 계절을 보존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는 병 속에 봄과 여름, 가을을 담았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아페르는 이후에도 식품 보존 기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1822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인류의 은인’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사명감에 불타오른 아페르는 상금을 모두 새로운 연구에 쏟아부었을 뿐만 아니라 기술에 대한 특허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가 고안한 고온 살균법은 그의 이름을 따서 아페르티자시옹(appertisation)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식문화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 <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미야자키마사카츠 지음, 한세희 옮김 > 중에서

생우유를 마시려면 우유가 상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부패의 과정이 먼저 밝혀져야 했다. 1861년, 프랑스의 의사이자 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1822~1895)가 S 자로 휘어진 백조목 플라스크를 만들어 고기 국물을 넣고 펄펄 끓인 결과 내용물이 썩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공기 중의 미생물이 부패와 발효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것이다. 아페르가 경험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 결과 식품 보존 기술은 아페르가 썼던 공기를 빼는 진공 방식에서 미생물을 없애는 살균 방식으로 극적으로 변화했다. 통조림 제조 방법도 파스퇴르가 발견한 원리에 따라 다시 만들어졌다.

1880년에 파스퇴르는 아페르의 기술을 응용한 저온 살균법(pasteurize, 파스퇴라이즈)을 개발했다. - <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미야자키마사카츠 지음, 한세희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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