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대학 졸업자의 심각한 실업 문제
- 우골탑


사립대학의 부실과 부패는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대학 진학을 위한 향학열은 쉽사리 식지 않았다. 학기 초마다 총통화량의 4분의 1 또는 5분의 1이 대학 등록금으로 들어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 소동을 비판하며 대학망국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70퍼센트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던 인구 구성으로 볼 때, 교육에 대한 이런 투자는 지나친 현상이었다. 이때부터소와 밭을 팔아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의미로 상아탑에 빗대어 ‘우골탑‘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문제는 1950년대의 빈약한 산업구조에서는대졸자의 취업률도 저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고등 유민이 되어가고 있었다. - P112

고등교육기관의 급격한 양적 확대로 1953년경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자 수가 1만 7,388 명인 데 비해 대학 입학자 수는 1만 8,041명으로 대학 입학정원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립대학과 일부 사립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립대학은 합법적으로 인가받은 정원조차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 P111

1950년대 내내 대학과 대학생 수가 증가했다. 해방 당시 고등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는 학생 수는 8,000명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전쟁 중에 오히려 급격히 증가하면서 1955년에는 8만 명에 육박해 10년 만에 열 배에 달하는 양적 팽창을 보였다. 1954년에는 인구 1,000명당 고등교육 인구가 약 3명으로, 당시 일본의 4분의 1, 미국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했지만 국민학교나 중·고등학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장 큰 비율로 증가한 것이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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