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의 사병과 관군

최충헌의 장기 집권 시스템은 권력은 강화했지만 국방력은 약화했다. 최충헌은 권력 유지를 위해 국방력은 오히려 약화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최충헌은 도방을 강화하기 위해 관군을 약화했다. 자신의 문객 중 관군이 되겠다는 사람은 즉시 귀양을 보냈다. 체격 좋고 힘 좋은 젊은이들을 도방의 병사로 뽑아 우대했다. 최충헌 가문의 사병이 열병하면 그 길이가 2, 3리에 달했다 한다. 그에 반해 관군은 용맹하고 쓸 만한 사람이 없었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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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군이 개경에 육박해 들어오자 최충헌은 군인 수만 명으로 하여금 자신을 지키게 했고 성 밖의 민가를 헐어서 참호를 팠다. 자신의 안위만이 문제였다. 개경에 육박해 들어오던 거란군을 조충과 김취려 장군이 힘들게 물리쳤다. 1219년(고종 6) 3월 공을 세운 서북면원수 조충과 김취려 등이 개경으로 개선해오자 최충헌은 그들이 세력을 가질까 두려워 개선 의식인 영아례迎迓禮를 중단시키고 장수들에게 사사로운
잔치를 열어주었다. 그 예산도 국가 예산이 아닌 백관들에게 은을 추렴해 충당했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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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은 거란과의 전쟁 중에는 무관 인사 청탁을 하는 이들이 없어 뇌물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정기 무관 인사인 도목정都目政을 시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인사 요청자가 많아지자 그제야 도목정을 시행했다. 그런데 군공을 세운 이는 승진시키지 않고 뇌물을 바친 자만 승진시켰다. 군사들의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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