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포병전술

전장에서 사용된 화포는 여전히 많은 한계를 안고 있었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화포의 과도한 무게였다. 야전포로서 포병은 장거리 화력과 기동성을 구비해야만 했으나 사실상 이것은 불가능했다. 화포의 발사준비에 장시간이 소요됨은 물론이고 포 사격술 역시 부정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화포를 이동시키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발사상태로 거치하는 데도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 <서양 무기의 역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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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나폴레옹이 주변 열강들-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영국-과 치른 전쟁을 총칭하여 나폴레옹 전쟁이라고 부른다. - <서양 무기의 역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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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화포제작 기술의 발전이 진정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인물이 필요하였는데, 그가 바로 프랑스군의 그리보발(1715~1789) 장군이었다. 우선 그는 포신 및 구경의 크기를 줄여 화포를 경량화시킴으로써 포병부대의 기동성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화포 이동에 필요한 운반용 포가砲架를 개량하여 그 성능을 높였고, 견인력도 황소가 아닌 두 줄로 끄는 말로 대체하였다. 이외에도 조준장치 및 사격각도를 정확히 반복적으로 변경시킬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고, 포탄 무게도 통일하여 발사속도를 단축하고 효율성을 높였다. 이러한 그의 표준화 작업 덕분에 행군 시 포병부대는 보병과 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되었고, 전장에서 포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로 높아지게 되었다. - <서양 무기의 역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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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발달의 관점에서 볼 때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신형무기가 등장했거나 무기의 위력이 크게 향상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화포가 개인화기보다 우위에 있음을 실전을 통해 입증하였다. 무엇보다도 화포를 집중적으로 운용하여 접전 초기에 적의 대형을 와해시키고 전투력 소모를 꾀해 아군 보병부대 작전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나폴레옹의 포병 운용은 곧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었고, 이제 전투 시 포병 화력의 이용은 기본적인 요건이 되었다. - <서양 무기의 역사>, 이내주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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