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낭송 춘향전 ㅣ 낭송Q 시리즈
길진숙.이기원 풀어 읽음, 고미숙 기획 / 북드라망 / 2014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은 이팔청춘 두 남녀인 이몽룡과 성춘향의 로맨스 고전소설이다.
북드라망 출판사에서 낭송하기 쉽도록 편집하여서, 낭송시리즈 동청룡의 첫번째 책으로 출간했다. 춘향전은 워낙에 많은 판소리 버전, 영화, 민담동화의 형식으로 듣고 보아와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낭송 책을 소리내서 읽다보니 원전을 읽는 맛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알 듯 싶었다.
단오날 광한루 그네타는 데서 만난 두 남녀가 서로에게 반하고, 춘향의 집에 간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약속한 후, 첫날밤을 보내고 알콩달콩 놀이로 서로의 정을 도탑게 쌓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몽룡의 아버지가 한양으로 가게 되는 바람에 둘은 헤어지게 되고, 슬픔의 이별을 한 이후, 그 마을에 부임한 변학도라는 사또의 수청거부로 인해 수절을 지키려던 성춘향은 목에 칼을 차게 되고, 이몽룡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어사로 남원을 순찰하러 내려와서 춘향을 구하고 살려내서 백년해로 한다는 줄거리이다.
줄거리는 단조롭지만 뱉어내는 운율을 탄 노랫조의 말들로 인해 감정과 몸을 같이 하면서 읽어내면, 춘향이의 감정과 몽룡이의 감정이 이입되어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게 된다.
춘향전 대목중 사랑가(2-6장)는 두사람이 사랑으로 노는 걸 그려낸면서 '사랑'을 여러가지에 빗댄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921/pimg_7513961731279923.jpg)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호 칠백리 달 밝은 밤에 무산같이 높은 사랑
아득하고 끝도 없는 바다같이 깊은 사랑
가을날 달 밝은 밤 이 봉우리 저 봉우리 달구경 하던 사랑
어여쁜 여인 춤 배울 제 한 선비 퉁소 불어 신선되기 바라던 사랑
따사로운 봄날 밤에 달빛이 교교할 때 주렴 사이 복숭아꽃 배꽃 비추는 사랑
여리고 고운 초생달 아래 은은한 미소 요염한 자태 어여쁘다 숱한 사랑
월하노인 중매하여 삼생 연분 맺었으니 너와 내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 사랑
꽃비 날리는 저 언덕의 목단화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은하 직녀 금실 짜듯 올올이 이은 사랑
청루 미녀 이불같이 혼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 수양같이 하늘하늘 늘어진 사랑
남창 북창의 노적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장 옥장의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 봄바람에 넘노나니 벌과 나비 꽃을 물고 즐기는 사랑
녹수청강 원앙처럼 마주 둥실 노는 사랑
칠월 칠석 깊은 밤에 견우 직녀 만난 사랑
육관대사 성진이는 팔선녀와 노는 사랑
역발산 초패왕이 우미인 만난 사랑
당나라 현종임금 양귀비와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같이 연연이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이어지는 정타령에서는 두 사람의 정(情)을 노래로 읊어낸다.
'너와 내가 유정하니 어이 아니 다정하리.
일렁이는 장강수 따라 아득히 떠나가는 손님의 정
강가 다리에서 서로 이별 못하는구나, 애닮구나 나무들이 멀리서 머금은 정
님 보내는 남포의 애달픈 정'
그리고 이어서는 궁(宮) 자를 넣어 노래를 부른다.
'좁은 천지 개탁궁
뇌성벽력 풍우 속 상서로운 기운으로 둘러싸인 창합궁
성덕이 넓으시어 술손님 가득하던 은왕의 대정궁
진시황의 아방궁
천하 얻은 한태조의 함양궁
...
너와 나 합궁하니 한평생 무궁이라.
이 궁 저 궁 다 버리고 네 두 다리 사이 수룡궁에 내 힘줄 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에 이보다 진한 표현이 더 있을손가. 더 나아가 벌거벗은 두 남녀는 낮도깨비처럼 되어서 업고 놀기를 하면서 정분을 가득 채우고 말태워주기 놀음으로 세월가는 줄 모른다.
3부에서는 '애고애고, 이별이로다' 제목처럼 두 남녀의 떨어지는 석별의 정나눔이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월매의 탄식과 춘양의 설움으로 인한 신세한탄가이다.
4부에서는 고통스런 곤장을 춘향이가 맞는 장면도 노랫말로 지어내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921/pimg_7513961731279922.jpg)
한대를 때리니 춘향이는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 하려는데 일개 형벌 치옵신들 일 년도 못 되어서 한순간인들 변하리까?'
라면서 운율 맞춰 설움을 쏟아낸다.
둘째 매에는 두 이(二)자를 넣어서,
'이비 절개 본받아서 두 지아비 섬기지 않는 마음
이 매 맞고 영영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세째 매에는 석 삼(三)을 넣어서...
'삼종지례 지엄한 법
삼강오륜 알았으니
삼치형문 유배가도
삼청동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그리고 25대의 매를 다 맞은 이후, 춘향이가 쏟아내는 장탄가는 비통함을 가득 뿜어낸다.
'이내 죄가 무슨 죄냐?
나라 곡식 훔친 죄도 아니거늘 엄한 형벌, 독한 매질 무슨 일이런가.
살인 죄인 아니거늘 항쇄, 족쇄 웬일이며
삼강오륜 어긴 죄인 아니거늘 사지결박 웬인ㄹ이며
간통 죄인 아니거늘 이 형벌이 웬일인고.'
무고한 사람을 난폭하게 자기 욕심 채우지 못한 권력자가 그 권력을 남용한다. 춘향이가 당한 고통은 신분사회에서 벌어진 억울한 일, 원통한 일의 대표격이라고나 할까.
몰래 어사의 신분을 숨기고 거지차림을 한 채 변사또의 잔치에 잠입한 이몽룡은 탐관오리 변사또의 횡포와 잔치를 질책하면서 싯구를 지어보인다. 백성들의 형편을 생각하고 사또의 정체를 생각하면서 지어낸 싯구.
금주미주金樽美酒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 만성고萬性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옥소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논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어라.)
북한 백성들의 눈물과 피를 짜내는 북한 권력자들을 향한 질타로도 적용할 수 있을만한 싯구이다. 아무튼 권선징악의 주제를 나타내는 춘향전은 그 안에 애달픈 두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탕으로 둔다. 오늘날 패스트푸드처럼 냄비같은 사랑과 대비되는 순수한 사랑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래서 세월을 두면서 덧붙여지고 각색되면서 두고두고 회자되어 온 것이다.
아무튼 고전의 맛은 낭송에 있다는 걸, 발견하여 보급하는 저자와 출판사 덕에 이 책을 접했다. 몇구절이라도 외워서 낭송하게 될 날을 꿈꿔본다. 그리고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은 맘이 생겼다. 오랫만의 고전의 향기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