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올 때 책을 꽤 짊어지고 왔지만 금새 읽을거리가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처럼 전자책도 없던 시절. 어쩔 수 없이 아이와 함께 영어 그림책을 읽었고, 아이의 읽기 실력이 늘어감에 따라 같이 챕터북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그거 가지고 책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나. 한국 배편으로 책을 보내는 것도 한도가 있지. 도서관에 산더미도 쌓여있는 책이 있는데 책을 못읽고 있다니!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수포자가 아니라 영포자였던 내가, 영어 알레르기 때문에 이과로 갔던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빌렸다. 존 그리샴의 Street Lawyer
한국에 있을때 존 그리샴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었기에 일단 아는 작가를 빌렸던 것인데 이게 신의 한수(까지는 아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으므로) 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존 그리샴은 사람들이 다 아는 쉬운 단어를 이용하여 글을 쓰는데 거기에 문체도 간결하고, 스토리가 흥미진진하여 처음 영어책을 접하는 사람에게 적격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기본적인 법정용어도 하나도 몰라서 처음에는 사전을 찾아봤지만 기본 용어를 알고나니 내 실력에도 대충 읽을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도서관에 있던 존 그리샴의 책은 눈에 띄는대로 빌려왔고(아마 2000년대 초반까지 나온 그의 책은 거의 다 읽었을듯) 그때부터 조금씩 영어소설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존 그리샴은 나에게 있어서는 영어소설에 발을 들여놓게 만든 고마운 작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이후 존 그리샴 책을 별로 읽지 않았네. 은혜를 모르는 나.ㅜㅜ)
존 그리샴의 작품은 우와 끝내줘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체적으로 다 재미있고, 기본이상은 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아도 한글책을 접할 기회가 있으면 읽곤 했는데 이 책도 너무 재미있다 강추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슬슬 읽기에 괜찮았다. 사실 앞부분은 살짝 지루하기도 했었는데 계속 읽다보니 어쩐지 미드 한 시즌을 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큰 사건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고, 각기 다른 사건들이 주인공을 연결고리로 삼아 나오기 때문인듯. 다음번 시즌이 나와도 좋을 거 같다. 존 그리샴의 책이 언제나 그렇듯 정의에 대한 고민, 법 시스템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비리나 모순들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